"아저씨는 궁둥이 같아요"

"아저씨는 궁둥이 같아요"

최예용 0 3917

"아저씨 돼지 같아요."

살다 보면 가끔 특별한 사람을 만난다. 다섯 명의 지인들이 유년시절 스웨덴으로 입양됐다가 모국을 방문한 분을 만났다. 그날 특별한 사람은 그분의 딸, 6세 된 꼬마 소녀였다. 파란 눈을 가졌지만, 갈색 머리에 얼굴 생김생김이 유전자의 절반이 한국인 핏줄이라는 게 뚜렷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 소녀가 뜬금없이 뚱뚱한 지인 한 명을 가리키며 '돼지'같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코멘트에 우리는 실소를 터뜨렸다. 옆에 있던 친구가 분위기도 전환시킬 겸, 호기심이 발동해 "난 뭐 같이 생겼어?"라고 물었다. 그 소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고양이'같다고 했다. 그러자 그 옆에 앉아 있던 친구가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소녀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아저씨는 양말 같아요."

'돼지''고양이'가 나왔으니 당연히 동물이 나올 거라고 기대했는데 '양말'이라니, 우리는 홍소를 터뜨렸다. 이때쯤 우리는 스웨덴에서 온 꼬마 소녀의 놀음에 푹 빠졌다. 그 옆에 앉았던 친구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재촉하자, 그 친구는 '초콜릿'같다고 했다. 소녀의 엉뚱한 대답에 우리는 또다시 탄성을 질렀다. 마지막으로 남은 난 과연 어떤 대답이 나올까. 호기심이 바짝 당겼다. 그런데 소녀는 엄마의 귀에다 대고 소곤거렸다. 우리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궁금해하자, 엄마는 웃으며 망설였다. "아저씨는 궁둥이 같대요."

우리는 모두 나자빠졌다. 돼지, 고양이, 그리고 양말, 초콜릿, 궁둥이. 난 소녀의 자유로운 발상에 감탄했다. 유아 교육에서부터 우리의 모든 교육은 아직도 주입식이다. 대학입시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대답할까. 그 소녀처럼 마음껏 상상력을 펼칠 수 있을까. 창의력은 자유로운 발상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이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그들이 자유롭고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교수법 개선이 필요한 게 아닐까.

2013년 2월21일 조선일보 [일사일언]에 실린 드라마작가 최순식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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