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가습기 살균제 참사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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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가습기 살균제 참사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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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참사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공론화 10년

부산일보 2021.9.1 
 
지난달 31일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사망자 유품들을 두고 공론화 10년 기자회견을 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사망자 유품들을 두고 공론화 10년 기자회견을 했다. 연합뉴스

구두, 찻주전자, 안경, 라켓, 예수조각상, 안전모, 야구공, 글러브, 줄넘기, 색연필, 연필깎이, 도라에몽 인형과 인형, 인형, 인형….


지난달 3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유품은 비를 맞고 있었다. 이 날로 정부 발표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공론화된 지 꼭 10년이 됐다. 정부 공식 피해 신고자 중 사망자만 1687명. 기일은 하루도 빠짐없이 돌아온다.


1994년 출시돼 980만 개 이상 판매

건강 피해자 95만 명으로 추산

신고자는 0.8%인 7535명에 그쳐

정부 소극적 대응에 피해 구제도 지연

전성분 공개·호흡독성안전 확인 의무화

국가중독센터 등 적극적 대응 필요


참사는 끝나지 않았다


김 모(63) 씨는 2018년에야 동사무소 포스터를 보고 가족을 파괴한 것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걸 알았다. 2010년 원인 불명의 폐질환으로 아내를 보내고 6개월 뒤 자신도 심각한 심장질환 진단을 받았다. 앞서 2000년 심장질환, 2005년 폐암으로 장모와 장인 초상을 치른 뒤였다. 자녀 셋은 모두 비중격 만곡증과 각종 피부·면역 질환으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수출 실적을 올리던 사업은 파산했다.


아내가 숨지기 전에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 아닐까’라고 했을 때도 김 씨는 전국에서 판매된 유명회사 제품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가족은 1997년께부터 2010년까지 아파트 방마다 가습기를 두고 살균제를 썼다. 심지어 아내가 투병한 병실에서도 썼다. 서울지사를 오가면서 경기도 교외의 처가에 살균제를 사다준 것도 그였다. ‘내가 가족을 죽였다’는 생각이 그를 오래 괴롭혔다.


그는 아이들 간병에 자신의 수술비와 간병비까지 감당할 수 없어 약과 재활치료로만 버티고 있다. 한동안 몸이 마비돼 거동이 힘들다가 겨우 혼자 버스를 타고 잠시 외출을 할 정도가 됐다. 그는 나라를 믿었던 자신을 후회한다. 약속만 무성할 뿐 현실은 피해 인정도, 보상도 감감무소식이다. “남은 사람들이 건강하기라도 하면 거리 집회라도 나설텐데….” 국민의 관심이 자꾸 줄어드는 건 또다른 고통이다.


부산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김 모 씨(왼쪽)와 권오열 씨. 두 사람 모두 아직 피해 인정과 보상을 받지 못했다. 부산환경운동연합 제공·최혜규 기자 

부산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김 모 씨(왼쪽)와 권오열 씨. 두 사람 모두 아직 피해 인정과 보상을 받지 못했다. 부산환경운동연합 제공·최혜규 기자

권오열(67) 씨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사무실과 집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썼다. 2005년 비염을 시작으로 피부염, 불면증, 안구와 성대 질환 등이 잇따라 찾아왔다. 2016년 언론 보도를 보고 신고했지만 아직 답변은 없다. 그는 지난달 31일 이마트 연제점 앞에서 공론화 10년을 맞아 진행된 전국 동시다발 1인 시위에 참가했다. 대형마트 3사는 가습기 살균제 PB 제품을 판매한 당사자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는 지난달 20일 기준으로 7535명이 접수돼 이 중 지금까지 4120명이 피해자로 인정됐다. 실제 지원이 이뤄진 숫자는 더 적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공론화 10년 입장문에서 “피해 신고자 7535명 가운데 6200여 명(미판정·불인정 3400여 명, 피해등급 미판정 2800여 명)이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한 채 피해 판정만을 기다리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정부에 신속하고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제품 판매(공식 확인 기준)

1994~2011년 48종 출시 980만 개 판매

피해 구제(8월 20일 기준)

신고 7535명(사망 1687명) 중 4120명(사망 1016명) 구제 인정

피해 추산(사참위 조사 보완)

사용자 894만 명, 건강 피해자 95만 명, 사망자 2만 명

17년, 5년, 23년, 27년


‘미생물 번식과 물때 발생을 예방할 목적으로 가습기 내의 물에 첨가하여 사용하는 제제 또는 물질.’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부터 2011년까지 48종 제품이 출시돼 확인된 것만 980만 개 넘게 판매됐다. 제품 안전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일부는 KC 마크까지 받았다. 그동안 피해를 막거나 줄일 수 있었던 골든타임이 여러 차례 있었다.


2011년 8월 31일, 정부가 서울아산병원이 의뢰한 산모 폐손상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생산과 사용중단 조치는 11월에야 됐다. 첫 제품 출시 17년 만이었다.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수면 아래로 잠기는듯 했던 문제는 5년 뒤 서울대 교수가 돈을 받고 옥시레킷벤키저에 유리한 안전성 보고서를 써준 혐의로 구속되면서 국민적 공분을 얻는다. 1차 수사 결과 검찰은 21명의 기업 임직원과 교수 등을 기소하는데, 무죄 2명, 최고형은 6년에 그쳤다. 그해 국회 국정조사와 청문회가 실시되지만 옥시의 전직 외국인임원 등은 불참했다. 2019년 시작된 2차 기업 수사 결과로 13명이 기소됐지만 올 1월 1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관련 학술단체들은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판결을 일제히 비판했다.


권오열 씨는 “기업이나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원망스럽지만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에 가장 화가 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14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공식 사과하고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제품 출시 23년 만에 이뤄진 국정 책임자의 사과에 대한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27년 동안 정부기관 누구도 책임지거나 처벌받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달 31일 정부는 피해자 단체들과 일부 관련 기업이 피해 해결을 위한 조정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참사의 교훈은 아직도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가습기 살균제 해결 과제 중 첫 번째로 피해자 찾기를 든다. 사참위의 전국 5000가구 조사 결과를 보완해 지난해 9월 한국환경보건학회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전국의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는 894만 명, 건강 피해자는 95만 명, 사망자는 2만 명으로 추산된다. 피해 신고자(7535명)는 추산 규모의 0.8%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어린이 피해와 사망자는 더욱 적극적인 발굴이 필요하다. 센터가 피해 인정자 4120명의 연령대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전체의 25%(1016명)가 사망했는데, 9세 이하는 242명 중 187명(77.3%)이 사망해 사망률이 가장 높았다. 이 연령대 생존자가 55명인 것도 2011년 제품사용중단 권고 이후에도 피해가 발생했다는 의미다.


부산환경운동연합 노주형 활동가는 “2008년부터 4년 동안 396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것으로 조사된 광혜병원 이용자들을 비롯해 부산의 피해자도 신고된 386명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되지만 아직도 내용 자체를 잘 모르거나 피해 입증을 지레 포기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면서 “더 많은 시민들이 신고하고 나서준다면 기업의 처벌과 배보상, 정부 대응을 촉구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환경참사의 재발을 막으려면 부처 간 칸막이를 넘는 국가중독센터를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화학물질 등 독성물질 노출로 인한 중독사고 대응을 위해 중독센터 도입을 권고했고, 2019년 기준 91개국에서 312개 센터가 도입됐다.


참사 이후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등 규제가 강화됐지만 아직도 생활화학제품의 전성분 공개와 호흡독성안전 확인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수백, 수천 개의 스프레이 제품들은 호흡독성이 전혀 확인되지 않은 채 판매되고 있다”면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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