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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용 0 11492

일본 따라 여론 몰매 맞나-‘과학 포경’ 선언의 전말과 배경

조홍섭 2012. 07. 06
조회수 3738 추천수 0

'배를 갈라야 안다'는 과학포경 논리…위성추적, 배설물 조사, 피부 샘플 조사 등으로 충분 반박

반구대 선사시대부터 포경 문화 주장…일제 때 본격화, 밍크고래 솎아내기 상업화 이어질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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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밍크고래 어미와 새끼를 잡아 싣고 있는 일본의 과학 포경선 니신 마루호를 오스트레일리아 관세청이 점검하고 있다. 사진=오스트레일리아 관세청, 위키미디어 코먼스

지난 4일 오후(현지 시각) 파나마시티에서 열리고 있던 국제포경위원회(IWC)에 참가 중인 한국의 강준석 수석대표가 개막연설을 시작했다. 국제회의에서 핵심 당사국 이외 국가의 개막연설은 취재기자들에게 관심 밖이다. 포경 옹호로 국제적인 따돌림의 대상인 일본도 아니고 고래 보전을 소리높여 외치는 유럽이나 호주도 아닌 한국의 연설을 귀담아듣는 기자는 거의 없었다.
 

상투적인 인사말에 이어 강 대표는 선사시대부터 한국은 적극적인 포경을 해 온 역사가 있다며 포경 재개 ‘커밍 아웃’의 운을 뗐다.

북태평양 밍크고래의 개체수는 포경금지 이전의 수준을 회복했습니다. 그 결과 고래가 그물에 걸리고 점점 늘어나는 고래가 사람이 먹어야 할 수산자원을 다량으로 먹어치우는 바람에 어민들은 제한적인 포경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 어민의 요구를 충족하고 (고래를 죽이지 않는) 관측 조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이 협약 8조에 따른 과학적 연구를 위한 포경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발칵 뒤집혔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만이 ‘과학 포경’을 주장했는데 이제 한국이 일본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는 것은 포경 금지 협약의 한 귀퉁이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얘기여서 특히 서구에서는 큰 뉴스다. 영국의 <비비시> 인터넷판 등이 이 소식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최근 한국 과학 교과서가 진화론을 부정하는 창조과학 단체의 요구에 굴복했다는 <네이처>의 뉴스에 이어 또다시 한국과 관련한 ‘안 좋은’ 소식이 세계에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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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과학 포경 발표를 전하는 지난 4일치 <비비시> 인터넷 판 기사.


고래 관광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호주는 특히 일본이 남극해에서 벌이는 ‘과학 포경’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한국이 일본의 뒤를 따르겠다는 소식에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가 즉각 반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줄리아 길라드 오스트레일리아 총리는 5일 한국의 갑작스런 포경 재개 움직임에 매우 실망했다며 주한 대사에게 한국의 최고위층에게 항의 표시를 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과학 포경은 변명거리가 안 된다”고 말했다.
 

시드니를 방문 중인 존 키 뉴질랜드 수상도 “한국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미국 국무부도 이날 “한국이 과학연구용 포경을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한 데 대해 우려한다”고 밝혀 한국의 결정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환경단체들은 좀 더 강경하다. 웬디 엘리엇 세계자연보호기금(WWF) 의장은 “한국은 결국 일본처럼 남극해에서 상업적 포경을 하려는 빤히 보이는 위장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단체는 누리집에서 한국 과학자들이 꼭 고래를 죽여야 과학적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죽이지 않고도 자료를 얻는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한국 과학자를 초청하겠다는 호주 정부의 견해를 소개하기도 했다. 한 누리꾼은 “한국의 수의사들은 애완동물을 알기 위해 꼭 죽여 봐야 아나”라고 조롱하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한국의 폭탄선언은 일본, 노르웨이, 아이슬란드를 중심으로 한 포경 세력과 유럽, 미국, 호주, 남아메리카 등의 반 포경 세력이 팽팽한 대결을 벌이는 국제포경위원회에 큰 충격파를 몰고 왔다. 예외적으로 고래잡이를 허용하는 출구인 과학적 포경과 토착민 포경 문제도 다시금 도마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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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위로 뛰어나온 혹등고래. 1970년대까지 많은 종의 고래가 멸종위기에 몰렸다. 사진=코르넬리아 외데코벤, 위키미디어 코먼스

국제포경위원회(IWC)는 고래의 보존과 포경산업의 질서 있는 발전을 위해 1946년 설립된 국제기구이다. 남획으로 전 세계의 고래가 거의 절멸 위기에 놓이자 이 위원회는 1982년 제34차 총회에서 12종의 고래에 대한 상업포경을 1986년부터 중지하기로 결정한다. 우리나라는 이때부터 아예 돌고래를 포함한 모든 고래류의 상업 포경을 중지시켰다.
 

그런데 이 모라토리엄에는 애초 구멍이 있었다. 일본, 노르웨이, 페루, 소련은 처음부터 포경 중단에 반대했다. 일본은 미국의 압력을 받아 나중에 이를 받아들였다. 노르웨이는 끝까지 포경 금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포경을 계속했다. 아이슬란드는 탈퇴했다가 포경금지를 받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다시 들어와 포경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은 금지협약이 허용하고 있는 ‘과학 포경’을 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이다. 오랜 포경 전통이 있는 러시아와 미국의 이누이트 등 원주민의 생계형 포경도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주로 남극해에서 해마다 수백 마리의 밍크고래와 보리고래 등을 “과학적 연구를 위해” 포획해 포경 반대 국과 환경단체로부터 집중적인 비난과 견제를 받고 있다. 일본의 주장은 남극해에 밍크고래가 “바다의 바퀴벌레”처럼 많다는 것과 연안에서는 어민들이 잡을 생선을 가로채 피해가 크다는 점, 그리고 고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포획이 꼭 필요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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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포경 실적. 1985~2010년 동안은 '과학 포경'이다. 주요 포획 대상은 밍크고래이다. 그림=위키미디어 코먼스

우리나라가 이번에 내세운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농림수산식품부가 6일 누리집에 올린 설명자료를 보면, 먼저 과학조사가 국제포경협약 제8조에서 정한 각 정부의 주권적 권리에 해당한다는 점, 모라토리엄 이후 국내 고래자원이 급격하게 증가해 어업 피해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고래를 직접 잡아 ‘배를 갈라 봐야만’ 고래와 어업의 마찰, 먹이사슬 관계 등을 제대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 포경의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포경 반대국가와 환경론자들은 말한다. 먼저 협약이 과학적 연구를 위한 포경을 허용한 것은 여기서 한 마리 저기서 한 마리 잡아 진짜 연구를 위해 쓴다는 것이지 일본처럼 대형 포경선을 이용해 연간 수백 마리씩 잡아올리는 것을 허용하자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연구에 활용한 고래의 주검을 고래고기 시장에 유통시키고 있어 사실상 상업용 포경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고래를 죽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연구할 수 있다고 과학계는 본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과학을 위해 고래를 죽일 필요는 전혀 없다”며 비살상 고래 연구 방법으로 시각이나 음파 조사, 위성 추적, 피부나 지방을 일부 떼어내 유전자 등 조사, 배설물 수거해 먹이 조사, 통계 모델링 기법 활용 등을 제시했다.
 

고래가 물고기를 너무 먹어치워 어민이 피해를 본다는 주장은 아직 과학적으로 근거가 제시된 적이 없다. 오히려 고래가 먹는 양은 사람의 어획량에 비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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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크고래의 모습. 그림=국립수산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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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연안의 밍크고래. '제이 집단'에 속한다. 사진=국립수산과학원

정부는 과학 포경을 하겠다면서 동시에 고래 자원이 금지 이전 수준으로 회복해 한국 연안의 밍크고래가 1만 6000두에 이르러 “솎음 포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단순히 연구 목적이 아니라 일본처럼 실질적인 포경을 하겠다고 정부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 과학 포경의 주 표적이 밍크고래인 것처럼 우리나라도 밍크고래를 노리는 것처럼 보인다. 밍크고래는 무게 9200㎏, 길이 10m까지 자라지만 수염고래류 가운데는 가장 작다. ‘밍크’란 이름은 육상동물 밍크와 관계가 없다. 미국해양대기국(NOAA)의 누리집을 보면, 노르웨이 포경선에서 일하던 초보 관측선원의 이름 ‘마인케’에서 유래했는데, 그는 수염고래 중 가장 작은 밍크 고래를 지상 최대의 고래인 왕고래로 착각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밍크고래는 세계에서 가장 개체수가 많은 수염고래이지만, 유독 한반도 근처에 사는 두 무리만 위협에 놓여 있다고 국제포경위원회는 보고 있다. 동중국해와 황해, 동해에 서식하는 밍크고래는 ‘제이 집단’(J-Stock)이라 불리고 일본 동쪽의 태평양과 오호츠크해에 사는 무리를 ‘오 집단’(O-Stock)이라 부른다.
 

한국이 이번에 밝힌 대로 과학 포경을 한다면 바로 ‘제이-집단’을 잡겠다는 건데, 이 집단이 생물학적으로 특이한 소수집단이어서 보호가 필요한지 아니면 다른 집단과 유사해 특별한 보호가 필요 없는지를 두고 국제포경위원회 과학위원회가 몇 년째 논란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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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반구대 암각화. 각종 고래의 특징과 포경 방법 등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사진=한겨레 사진 디비

일본이 주로 남극에서의 ‘과학 포경’으로 눈총을 받고 있다면 우리나라는 한국 해안에서 ‘과학 포경’을 하겠다는 차이가 있다. ‘과학 포경’과 함께 이누이트처럼 ‘토착 포경’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일본도 태평양 쪽 4개 마을에서 연안포경을 하겠다는 계획을 과학위원회에 몇 년 전부터 올려놓고 있다.
 

이 문제는 약간 미묘하다. 국제포경위원회는 5일 자국령 그린란드 원주민의 포경 연장 안을 부결시켰다. 내년부터 201 8년까지 혹등고래 등 10326두를 잡도록 해 달라는 요구였지만 그린란드 현지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고래고기를 판매하는 등 생존형 포획의 범위를 넘었다는 반대 의견이 우세했다. 이에 앞서 위원회는 2일 미국 알래스카, 러시아, 카리브 해 국가인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원주민의 포경 연장 안은 승인했다.
 

고래잡이가 전통문화이고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금지협약이 예외 조항을 둔 것이다. 하지만 원주민들은 이제 나무배와 창이 아니라 모터보트와 총으로 고래를 잡는다. 게다가 어디까지가 전통인지도 애매하다.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의 고래잡이는 미국 포경선원한테 130년 전 배운 것이다. 한국은 8000~9000년 전의 반구대 암각화를 언급하면서 오랜 포경 전통이 있음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과연 울산은 암각화에 그려진 선사시대부터 포경 전통을 이어받았나? 김장근 국립수산과학원 박사에 따르면 아쉽게도 반구대 암각화와 같은 직접적인 포경 유적은 역사 시대에 들어와서는 없다. 조선시대 실학자인 서유구의 <임원십육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고래가 죽어서 해안에 떠밀려 올라오는 것이 있으면 관에서 반드시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칼과 도끼로 수염과 내피를 베어낸다. 말에 싣고 사람이 날라 수일이 걸려도 다하지 않는다. 한 마리의 큰 고래를 얻으면 그 값이 무려 천금이다. 그러나 이익이 모두 관에 돌아가고 어민들은 얻는 것이 없으므로 고래 잡는 법을 배우려 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고래를 쫓아 포획하는 활동이 시작된 것은 러시아 포경선이 방어진에 들어온 19세기 말이고 일제 강점기에 본격화됐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토착적인 포경문화를 운운하기엔 짧은 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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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돌고래 학살을 그린 영화 아카데미상 수상작 <더 코브>의 루이 시호요스 감독 등이 2010년 방한해 일본대사관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종수 기자


고래를 고기를 제공하는 자원이 아니라 지적인 생물 또는 관광 자원으로 보는 시각은 일부 선진국과 환경단체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번 총회에서 남아메리카 국가들이 강력한 반 포경 입장을 밝힌 것도 그런 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포경 반대 여론이 지배적이다.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이 2009년 실시한 여론조사(오차 범위 ±3.7%)에서 ‘고래잡이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67.9%인 반면 포경 찬성 의견은 15.4%에 그쳤다. 서울대공원의 돌고래쇼를 폐지하고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이란 슬로건을 내건 여수 엑스포에 수백만 명이 구경가고 있는 마당이다.
 

최예용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번 발표는 고래고기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일부 수산업계의 요구에 굴복한 수산당국이 연안 포경을 추진하는 일본에 자원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추진한 일”이라며 “국제적으로 손가락질 받는 일본의 포경행위를 따라해 비난 여론을 자초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포경 재개 준비는 오래전에 시작됐다. 2006년부터 고래 자원조사를 시작한 것을 시작으로 국제포경위원회 회의에서도 일본에 동조하는 견해를 종종 발표했다. 2009년 로마 총회 때는 일본의 연안 포경 허용안을 지지했다. 농림수산식품부의 회의 보고서를 보면 이 회의에서 “향후 우리나라의 포경 가능성에 대비한 입장 반영을 위해 노력했다”고 밝히고 있다.
 

어쩌면 포경 재개 방침의 발표는 어업정책을 다루는 농수산식품부가 고래 정책을 다룬 자연적인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가 5일 낸 성명서가 지적한 대로 “고래를 생선으로 여기는 농수산식품부에게 고래 보호 정책을 맡긴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다. 그래서 고래에 관한 정책부서를 환경부로 이관하고, 2000년대 들어 4722마리가 ‘우연히’ 그물에 걸려 잡힌 혼획 고래의 판매를 금지하고 대신 그물에 걸린 고래를 풀어주는 어민을 포상하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우리나라의 과학 포경이 당장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내년 국제포경위원회 총회에 앞서 열리는 과학위원회에 정부의 과학조사 계획을 정식으로 내,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과학조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현재의 팽팽한 포경-반포경 구도로 볼 때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승인 결정은 불투명하다. 분명한 건 당장 올해부터 과학 포경을 비판하는 손가락질이 일본과 함께 한국을 향하게 됐다는 것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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