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와 가습기살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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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와 가습기살균제

최예용 0 5826

{에너지경제신문] 2015년 6월5일자

 

중동호흡기증후군이 한국사회를 감염시켰다. 메르스라는 돌발악재가 국내 증시를 흔들고 손세정제와 마스크가 동이 나는가 하면,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을 피해 온라인쇼핑몰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여기에 경기도권 초등학교 휴교령까지 발표돼 그야말로 날벼락 맞은 꼴이다.  
 
여행업계는 또 어떤가. 언론이 중계방송 하듯 쏟아내는 환자수 ‘속보’ 경쟁에 불안감을 느낀 외국인 관광객은 타지로 등을 돌렸다.

‘중동’이라는 단어에 ‘할랄’을 끼워 맞춰 미래 먹거리로 칭송하던 때가 불과 한달 전이다. 이제 ‘중동’하면 ‘메르스’가 가장 먼저 떠오르니 대통령의 외교성과도 그가 귀국 후 앓은 감기처럼 쿨쩍이는 모습이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허약했단 말인가. 인수공동전염병은 과거에도 있어왔고, 내일도 계속 될 것이다. 사실 인플루엔자를 보유하지 않은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플루엔자는 생명체의 구성요소 중 하나라고 보는 쪽이 옳을 것이다. 메르스 역시 수천년 전 부터 낙타가 몸에 지니고 살아온 병원균이다. 메르스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인지는 균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면역력 차이에서 비롯된다. 감염 이후에도 증상 없이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발생하는 이유도 면역력의 유무다.

이 면역력은 개인이 키우는 것일 수 있겠지만 사회가 제공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제도화된 관리체계에 영향을 받고 사회와 분리될 수 없는 개인이기에 이 면역력은 사회적 용어라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사회는 면역력이 약한 사회이다. 메르스를 거대한 공포로 몰아가는 다양한 시도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때를 맞춰 메르스 퇴치와 관련 노력조차 없었던 제약기업이 백신 연구와 관련됐다는 소문만으로 상한가를 기록하는 불건전이 만연하는 사회다. 국민들로 하여금 손세정제를 사게하고, 마스크를 쓰게하는 병약한 사회다.

아리러니하게도 이 과정 중 가장 이득을 본 기업 중 하나가 가습기 살균제 사고로 물의를 빚은 기업 옥시 레킷벤키저가 있다. 이 기업이 생산하는 세정제 데톨은 현재 소비자들 사이에 ‘금톨’이라 불릴 만큼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불과 일주일 전 만해도 한국의 가습기살균제 소비자들이 영국 본사로 찾아가 항의 시위를 벌였다는 언론보도를 접했다. 이후 건강한 사회라면 이 기업은 당연히 어려움에 처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이 기업에 유례없는 호황기를 안겼다. 이것이 한국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충분히 예상가능한 과정과 결과로 채워지는 상식적인 사회가 국민이 원하는 사회이다. 사회적 물의를 빚고, 비판가운데 있는 그 대상이 반사이익을 누리는 일은 사회적 병원체인 메르스에 감염된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원론적인 입장에서 의료계 전문가들은 메르스는 일반 폐렴과 유사한 것으로 피해범위를 한정하고 있다.  

대한감염학회는 국내 메르스 환자의 치사율은 외국의 자료와 달리 10% 정도로 예상되고 이는 메르스가 나타나기 전 지역사회 폐렴의 사망률보다 크게 높은 수치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4일 오전 기준 국내 메르스 확진 환자 수 35명 중 사망자는 2명 발생했으며 환자 3명 정도가 불안정한 상태라는 점을 고려해도 국내 치사율은 전 세계 평균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외국 사례에서도 사망자 대부분은 고령, 당뇨병, 만선신부전증, 만성폐질환, 면역억제 환자 등 기저질환을 앓았으며, 국내 환자도 고령이거나 신장암 치료 병력, 천식, 스테로이드 장기 복용 등 기저 질환이 있는 자들이다. 결국 질병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가 합병증을 유발해 사망으로 이어진 경우다. 

감염학회는 일부 학교의 휴교 조치와 SNS의 루머 등과 관련해서도 현 상황을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는 너무나 감성적인 조치와 소문으로, 현재 메르스 사태를 수습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메르스 환자와 접촉력이 없는 일반 국민이 메르스에 감염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과도한 불안과 공포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학회 회원들은 성명 말미에 국민들에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촉구했다. 메르스는 현재 우리 사회의 모든 담론을 잠식하고 있다. 병든 사회가 보이는 감염 증세가 이것이 아닐까. 다행히 의료계에서는 ‘메르스 바로알기’를 국민을 안심시키고 나섰다. 메르스를 키운 것이 정부의 부실대응이라는 성토 역시 후대책 단계에서 점검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는 공포로 몰고간 메르스에 대해 냉정하게 사회와 분리시킬 필요가 있다. 휴교령으로 학교에서 학생은 분리할 수 있지만 학원은 종일 학생들로 북적이고 있다. 어느 맞벌이 부부는 초등학생 자녀를 맞길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보습학원에 등록시켰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현재의 처방은 대책도 뭐도 아닌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한국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가 메르스를 타고 전해지는 이 씁쓸함을 어떻게 표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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