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와 ‘깨진 유리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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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환경부와 ‘깨진 유리창’

최예용 0 3848

<사설> 환경부와 ‘깨진 유리창’

- ‘화평법으로 수조원 손실’ 매도하는 경제계 한심
- 환경, 인명 무시하고 과거회귀 절대로 안될 일

환경일보 2016 3 11
편집부 | iskimbest@hkbs.co.kr | 2016.03.11 10:48  translate.gif     
19대 국회에서 발의한 법률 중 7개 법안으로 인해 연간 22조원 이상 국가적 손실이 우려된다는 연구결과를 모 민간경제연구원이 내놓았다.

특히 ’15년부터 시행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신규화학물질 등록대상 범위를 강화해 산업계 부담을 가중시켜 손실액이 2조 704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도 화학사고시 사업장 매출의 5%까지 부과토록 하는 과징금등을 근거로 손실액을 1조 7,904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환경부는 확정되지 않은 자료를 언론에 제공해 기사화하는 것은 책임 있는 연구기관의 자세가 아니라면서 관련 자료 제공을 요청하고, 비용 분석의 적정성 등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애써 해명했다.

모든 정책과 제도는 비용과 편익을 동시에 발생시킨다. 그런데 이번 연구라는 것은 법 시행 후 화학사고를 예방해 얻는 사회적 편익이나 기업의 손해배상 비용 감소효과가 포함되지 않아 균형 잡힌 분석으로 볼 수 없다.

화평법 시행전인 ‘11년 유해성 미확인 화학물질로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사고는 확인된 피해자만 221명(95명 사망)에 이르고 현재도 피해보상 소송이 진행되는 등 사회 전체의 피해가 아직도 남아 있다.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12년 발생한 구미 불산사고의 경우 근로자 5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했으며, 주변으로 확산된 불산 가스로 인해 12,243명이 건강검진을 받고 농작물 고사(212ha), 가축 피해(3,943두) 등 피해 복구에 총554억원의 정부예산이 책정됐다.

화평법 및 화관법을 바르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산업계가 주장하는 비용뿐만 아니라, 화학사고 예방에 따른 편익도 함께 분석해야 마땅하다. 이런 상식적인 내용을 모를 리 없는 연구기관에서 왜 터무니없는 주장을 했을까.

1969년 미국 스탠포드대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치안이 좋지 않은 지역에서 유리창이 깨진 차량과 온전한 차량을 각각 거리에 1주일간 세워둔 후 변화를 관찰했다.

차이라면 깨진 유리창 하나였지만, 유리창이 온전했던 차량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반면 유리창이 깨진 차량은 배터리와 타이어가 도난당하는 등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 깨진 유리창이 주인의 무관심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범죄 성향 때문이었다.

어려운 경제를 고려해 백번 천번 양보해서 만든 화학물질기준을 갖고 경제피해가 수조원에 달한다느니 과장하며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작태는 유치하다.

적법한 과정과 오랜 산고 끝에 탄생한 법이 생각 없는 사람들에 의해 매도돼서는 안된다. 소신 없이 이곳저곳 갈등을 부추기며 떡고물 떨어지길 바라는 행태야말로 포퓰리즘이 아닐까.

환경부의 대처방식도 답답하다. 앞으로도 많은 도전장이 날아 올텐데 뭘 가지고 버틸는지, 한번 중심을 잃고 나서 의욕을 상실한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이러다 경제 살리자며 ‘환경부 폐지론’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사회적 책임감 없는 경제계 연구원, 분별력 없이 보도하는 언론사, 자신감 없는 환경부 모두에게 자정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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