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 첫 단추는 ‘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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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 첫 단추는 ‘특별법’

최예용 0 4173

[기고]‘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 첫 단추는 ‘특별법’

 

경향신문 2017년 1월6일자 

 

박동욱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환경보건학과

 

2013년부터 접수가 시작된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자 수는 작년 말까지 5341명이었다. 피해 신고자를 보면 성별과 연령을 가리지 않는다. 정부는 피해자 일부에게 치료비, 장례비 등 최소한의 비용을 먼저 지급한 다음 구상권 법적 쟁송을 통해 원인 기업에서 보상액을 회수할 계획이다. 보상 대상 피해자는 엄격한 의학적, 과학적 연관성에 따라 구분하고 있다. 

 

피해 질환에 대한 기업 책임을 증명해야 하는 법적 다툼도 어렵다. 피해자는 정부 보상과는 상관없이 다시 기업을 상대로 배상, 보상 등 힘겨운 법적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원인 기업의 보상을 피해자 자신이 받아내도록 거의 방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해야 하는 등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다시 개인화되고, 끊임없는 법적·사회적 논쟁이 반복된다. 

 

피해 신고자가 사용한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만든 기업은 총 20여곳이다.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한 기업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이 대부분이다. 같은 피해를 입어도 사용한 제품에 따라 보상 금액이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피해를 입었는데 기업에 따라 책임 인정 여부와 보상 수준이 다르다면, 이를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가습기살균제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판정된 동일 질환은 동일 수준으로 보상하는 것이 상식이다. 

독일의 탈리도마이드(1959년), 일본의 수은(1959년), 영국의 DES(1971년), 우리나라의 이황화탄소(1986년) 등 화학물질 중독으로 대규모 건강 피해 참사를 일으킨 기업은 모두 1개씩이었다. 책임을 물을 대상이 그나마 단순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해결 과정은 복잡하고 세대를 걸쳐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럴진대 하나의 피해자에 대해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초래한 원인 제공 기업이 다수인 경우, 피해자가 기업들과 어떻게 소송 등으로 해결할 수 있겠는가? 

병원에서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되어 폐 손상으로 사망해 책임을 물을 기업을 지목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가습기살균제 노출로 인한 특이적인 폐 손상으로 인정되었지만, 병원은 제품을 사용한 적이 없다고 한 사례다. 이 경우 정부도 구상권을 청구할 기업을 지목할 수 없다. 산후조리원, 회사, 학교 등에서 피해를 입은 사례도 마찬가지다. 여러 제품을 함께 사용한 경우, 피해에 대한 구상권 청구 및 보상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 질환은 다양하다. 연관이 확실하게 밝혀진 폐 손상은 물론 유산, 조산, 사산, 천식, 비염, 다른 장기 손상 등도 의심되고 있다. 피해자는 물론 가족의 정신적 피해도 있다. 또한 가습기살균제 노출로 기존 질환이 악화된 경우도 분명한 피해다. 지금은 증상이 없지만 나중에 피해 질환으로 판명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화학물질 중독에 의한 피해 질환의 종류, 발생, 범위는 현재 과학으로 예측할 수 없다. 새로운 피해 질환 사례가 계속 발견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집단 화학물질 중독에 의한 피해 사례는 대부분 세대를 넘어서도 발견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보상, 지원 등도 계속되어야 한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이 참사의 종결은 과학으로 예측할 수 없을 지경이다. 화학물질 중독에 의한 집단 건강 피해는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가 없는 그야말로 무서운 것인 만큼, 지속적인 보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현재 구상권으로는 절대 해결하지 못한다. 

발암물질인 석면에 노출되어 각종 질환에 걸린 피해자들을 지원한 ‘석면피해구제법’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원인자 부담 원칙에 따라 석면 사용으로 이익을 취한 산업계가 비용의 90%를 부담하고 발암물질인 석면에 대해 법적 안전 관리에 소홀한 정부가 나머지 10%를 부담하도록 한 법적·사회적 합의였다. 가습기살균제의 경우 정부 부담이 더 커야 할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피해자도 아니고 시민단체도 아니며 전문가도 아니다. 바로 정부이다. 정부의 화학물질 관리 소홀로 이런 유례없는 건강 피해 참사가 일어났다면 정부는 신속한 수습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 일의 시작은 가습기살균제 특별법 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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