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잠재적 위험 알리고 미세먼지처럼 선제적 대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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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잠재적 위험 알리고 미세먼지처럼 선제적 대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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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과학&환경 / 기고 / 입력 : 2019.11.2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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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자통신 기술은 경제성장과 생활편리를 이끄는 핵심기반이며 그 발전속도는 가히 폭발적이다. 5세대(G), 사물인터넷(IoT), 무인자동차 등 관련 산업의 성장 잠재력도 무한하다. 그러나 우리는 기술 발전이 주는 성과와 편리함에는 열광하면서도 여기서 생기는 위험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전자파가 건강에 끼치는 위험이다.


전자파 중 우리에게 큰 위험을 줄 수 있는 것은 라디오파, 저주파, 극저주파다. 라디오파는 휴대폰, 와이파이, 블루투스, 이동통신 기지국 등에서 주로 발생한다. 극저주파는 전기가 생산, 운반, 사용되는 모든 시설, 장비, 제품에서 생긴다. 이러한 전자파는 가정, 사무실, 공장, 도로, 교통수단, 공공장소 등 모든 곳에서 공기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전자파 발생을 볼 수 없고 노출을 느끼지 못해서 전자파가 갖고 있는 건강위험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전자파를 ‘암 발생 가능성이 있는 그룹’으로 분류했다. 라디오파는 뇌암, 극저주파는 소아백혈병(18세 미만)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된다. 다만 WHO는 전자파의 암 위험에 대한 연구 결과들 간에 일관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전자파는 아직 상당하거나(probable) 확실한(definite) 위험 그룹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12월 미국 국립독성프로그램(NTP)은 동물실험을 통해 2G, 3G 휴대폰에서 발생하는 라디오파가 뇌암, 심장 주변 조직의 암 위험과 유의한 연관이 있다고 발표했다. 또한 역학조사를 종합한 연구에서 소아 백혈병 위험이 0.3~0.4μT(마이크로테슬라) 이상 극저주파에 만성 노출되었을 때 유의하게 높았다고 보고했다. 유럽 소아 백혈병 환자의 1.5~2%가 극저주파 노출 때문이라고 추정한 연구도 있다. 전자파가 암 외에도 신경 퇴행성 질병인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루게릭병, 치매 등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보고한 논문들도 많다. 뿐만 아니라 전자파 과민 증상(만성 두통, 스트레스, 어지럼증, 기억력 감퇴, 집중력 저하, 수면장애, 우울증 등)의 유병률이 스웨덴 2%, 스위스 5%, 독일 8%, 미국 캘리포니아주 3.2% 그리고 대만에서는 13%에 달한다고 보고된 바 있다. 이외에도 전자파로 인한 심혈관계질환, 생식독성(남성, 자연유산, 기형 등), 유전독성 등의 위험을 주장한 논문도 있다.


인체의 수많은 세포, 조직 간 생명유지 소통체계는 화학적 메신저와 미세한 전기적 신호에 의해 조절된다. 전자파의 건강위험을 주장하는 논문들의 논지는 전자파가 인체의 미세한 화학적, 전기적 신호 체계를 깨뜨려 각종 가역적, 비가역적 건강영향을 일으킨다는 가설에 기초한다. 특히 전자파는 종양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멜라토닌 생성을 떨어뜨린다는 연구가 많다. 즉 전자파는 암세포의 성장을 촉진하고 진행시키는 기여인자로 알려져 있다.


WHO는 논란이 되고 있는 잠재적 위험인자에 대한 사용과 노출을 차단하고 최소화하는 원칙을 건강보호정책에 반영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른바 ‘사전주의 원칙’이다. 이는 질병 위험이 확실하게 드러날 때까지 예방조치를 미루지 않고 위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할 때 사전조치를 취하는 방식이다. 사전 조치에 소요되는 비용이 경제적 성장이나 편리함을 포기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더 많지 않다면 당연히 취해야 하는 정책이다. 이 원칙은 전자파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스위스, 미국 등은 사전주의 원칙을 전자파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학교, 유치원, 병원, 주거지역 주변에는 고압 송전탑, 기지국 등 전자파 발생시설의 설치조건을 두어 위험을 사전에 차단한다. 또한 라디오파를 발생시키는 휴대폰 기지국 개수와 위치 등이 모두 공개돼 있다.


국내 환경보건법 역시 사전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환경유해인자와 질병 위험과의 과학적 상관성이 명확히 증명되지 않았더라도 경제적·기술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 잠재적 건강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환경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련 부처 중 전자파의 잠재적 건강위험에 대한 사전주의적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곳은 없다. 이로 인해 고압송전선이 마을, 학교, 병원 주변을 통과하고, 기지국이 주거지역에 설치되어 있는 경우도 흔하다. 또 정부는 극저주파로 인한 급성영향을 예방하기 위한 상한치 기준(83.3μT)을 만성질환에 대한 인체보호 기준으로 왜곡하고 있다. 이 기준은 망막에서 섬광이 일어나고 중추신경계 자극을 일으키는 등의 극단적 급성 영향을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매우 높은 수치다. 짧은 순간이라도 노출되지 말아야 할 최고치다. 하지만 정부는 이 기준을 적용해 건강위험을 일으킬 만한 시설, 제품 등이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유해인자 민감 그룹인 어린이, 임산부, 환자들도 보호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인 것처럼 왜곡하는 것이다. 이는 고속도로 자동차 제한속도를 골목길에 적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암 등의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전자파 노출수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많지만 정부가 전자파의 잠재적 건강위험을 알려 개인과 기업이 위험을 통제하고, 최소화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펼치기 위한 근거는 충분하다. 따라서 정부는 전자파에 대한 과다한 노출과 반복적 만성 노출을 막도록 조치해야 한다. 예를 들어 휴대폰 장시간 직접 통화, 머리에 바짝 붙여서 헤어드라이어 사용하는 것, 작동 중인 전자레인지와 에어프라이어 바로 앞에서 대기하는 것, 머리맡에 휴대폰 두고 잠자는 것 등 높은 수치의 전자파에 노출되는 광경은 매우 흔하다. 정부는 생활 속에서 전자파 노출의 위험성을 적극적으로 알림으로써 건강한 성인은 물론 어린이, 임산부 등 민감 그룹이 불필요하게 전자파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또 학교, 병원, 거주지역 근처의 송전탑, 기지국 등에서 발생하는 전자파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최소한의 사전주의 정책이며 미세먼지, 화학물질 관리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조치다.


정부는 과학기술의 성장을 지원하는 것과 동시에 건강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방정책을 펼쳐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 원칙을 전자파 위험 관리에도 적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자제품의 전자파 발생 인증, 전자파 발생시설 잠재적 위험관리, 정보제공 등 시민들의 전자파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종합적인 관리대책이 필요하다. 더불어 개인도 전자파의 잠재적 위험을 인지하고, 불필요한 노출을 피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함은 물론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1272140001&code=610100#csidx164c9ed625f6e3bac038b5fb974ec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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