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

오피니언
홈 > 정보마당 > 오피니언
오피니언

"밀양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

최예용 0 8716

탈핵 희망 버스를 타고 밀양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24일 금요일 밤 8시에 서울에서 출발하여, 자정이 넘어서야 밀양에 도착했습니다. 2대의 버스가 밀양 시청에서 다른 차들과 합류했고 밤늦은 시간 밀양 시청 앞마당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밀양에 계시는 김준한 신부님께 현지 사정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계삼 '밀양 765킬로볼트 반대 대책위원회' 사무국장님께서도 오셔서 고맙다는 말씀해 주셨습니다. 뿔뿔이 흩어져 마을회관과 노인정 등으로 잠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무리를 그분들께서 안내해 주셨습니다.

가 보니 벌써 부산과 경상남도 등 각 지역에서 오신 분들이 미리 와 있었고 다음 날에는 대전과 다른 지방에서 오신 분들이 합류하셨습니다. 전국에서 몰려 온 분들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혼부부는 물론 가족 단위로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분들도 있었으며 친구끼리, 대학 동아리 회원들끼리 온 분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성미산에 있는 대안 중·고등학교의 학생들도 왔습니다.


1.jpg
 
▲ 경상남도 밀양 지역 766킬로볼트 송전탑 공사가 일주일을 넘긴 가운데, 27일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송전탑 85번 공사 현장에서 굴착기에 쇠사슬을 묶고 공사 반대 시위를 벌이던 한 주민이 한국전력 직원들에게 제압돼 구조용 들것에 실려 공사장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연합뉴스

 


저는 나이가 너무 많더군요. 가는 길에도 그렇고 도착해서도 새벽 3시에 산에 올라가야 한다기에 빨리 드러누워 눈을 붙이기에 바빴지만, 젊은 사람들의 눈망울은 또렷하기만 하였습니다. 그저 해야 할 일에 집중하여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저의 모습보다, 모든 가능성에 마음을 열고 밤을 새우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더 지속 가능하게 보였습니다. '아, 이래서 사회의 물갈이가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 4시 정도에 일어나 김밥으로 아침을 때우고 산에 있는 농성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배정된 길목에는 할머니 두 분이 주무시는 간이 움막집 이외에 경운기들과 밧줄들이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산 위의 송전탑 예정지로 중장비가 올라가지 못하도록 막아내는 지점이었습니다. 비록 나무는 벨 수 있어도, 중장비가 없다면 공사를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약 30명이 길목에 자리 잡고 앉아서 어떠한 세력이 쳐들어오더라도 막아낼 마음의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두 분이 주신 커피를 받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해가 중천에 뜨도록 공사하러 오는 세력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희망 버스에 놀라서 토요일은 작업하지 않기로 하였다는 인터넷 뉴스만 전달되었습니다.

이렇게 환경 파괴 과정(?)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지역에 가보면 찬성 측 주민들과 반대 측 주민들로 나뉜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얼굴에 곱게 화장한 채 욕을 해대는 아주머니와 양복이라도 걸쳤지만 배가 나온 아저씨 등은, 어떻게 해서라도 개발에 따른 떡고물을 만지려는 찬성 측 주민인 것을 보곤 합니다. 또 쭈그러진 얼굴에 허리가 굽은 할머니와 남루한 옷을 입고 햇볕에 그을린 모습을 한 할아버지들은 자신들이 하던 일과 땅을 차마 버리지 못하는 반대 측 주민들인 것을 보곤 합니다.

'돈의 논리로 살 수 없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 분들의 지혜를 우리가 어떻게 이어받고 또 같이 나눌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오후 4시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2013년 5월27일

 

백도명 (환경보건시민센터 공동대표, 서울대 교수)

 

 


이 글은 프레시안에도 실렸습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30527184445

0 Comments
시민환경보건센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