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단식·삭발 나선 피해자들…'가습기 살균제' 조정 막판 거센 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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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단식·삭발 나선 피해자들…'가습기 살균제' 조정 막판 거센 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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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단식·삭발 나선 피해자들…'가습기 살균제' 조정 막판 거센 진통 
중앙일보 2022.3.22
22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박수진씨가 조정안 수정을 요구하며 삭발한 뒤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박수진씨가 조정안 수정을 요구하며 삭발한 뒤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오전 11시, 박수진씨는 서울 광화문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 건물 앞 인도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주변 도움을 받아 은빛 머리카락을 모두 잘랐다. 하얀 머리가 그대로 드러난 그는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돼 (조정안이) 잘 조성될 수 있도록 하는 마음에서 삭발했다"면서 "(조정안 수정은) 엄마의 부탁이자 간절한 소망"이라고 밝혔다. 박씨와 20대 아들 세 명은 모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다.

전날 오전엔 11개 피해자 단체 모임인 '빅팀스'(Victims)가 SK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피해 구제를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심정"이라며 조정안 반대를 외쳤다. 조정위가 전면 수정 요구를 받아들일 때까지 조순미씨가 대표로 단식 농성에 나서기로 했다. 이날 휠체어를 타고 나온 조씨는 산소호흡기가 없으면 오래 숨 쉬기도 어려운 피해자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지 11년 만의 대규모 조정이 원만하게 마무리될 수 있을까. 민간 합의를 위한 조정위의 최종 조정안 발표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참사 피해자들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조정 막바지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조정안 수정뿐 아니라 기업·정부의 책임론을 강조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21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앞에서 조정안에 반발하며 단식 농성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스1

2차 조정안에 피해자 측 "수정 없이 수용 불가"  

일부 피해자들은 지난 11일 구체적 내용이 담긴 2차 조정안이 나온 뒤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이 조정안으로는 10년 넘게 끌어온 사태의 근본적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2차 조정안에 따르면 폐 이식 등이 필요한 초고도(최중증) 피해자 기준으로 11세는 최대 5억2722만원, 84세는 8392만원이 지급된다. 증상이 경미한 환자는 2685만원(84세)~1억3만원(11세)까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 측에선 최대 금액 받을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 낮은 구간에 해당한다고 강조한다. 향후 증세가 악화했을 때 들어갈 치료비에 대한 보장 등도 부족하다고 본다. 박수진씨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결코 최고 금액을 받을 수도 없고, (조정액 기준) 아래에 깔려 있다"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지 10년을 맞기 하루 전날인 지난해 8월 30일 피해자 구제 및 배보상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1

"최종안 발표 보류 나설 것"…정부에도 큰 불만 

2억~4억원 수준인 사망자 유족 지원금도 생전 겪은 고통이나 고도 등급(초고도 아래 단계) 피해자에 비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부인을 잃은 김태윤씨는 "사망자는 가습기 살균제 사용 후 온갖 질병을 얻고 사망에 이른다. 고도 장애 피해자의 지원금을 밑도는 금액을 받는 건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미래 치료비 전액 보장, 미성년자 치료비 상향 조정, 피해 인정 연령 기준 변경, 전체 피해자 대상 공청회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들도 지원금 분담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본다. 빅팀스 측은 "전향적 수정 검토가 없다면 최종안을 아예 받아보지도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어떻게든 최종안 도출을 막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조순미씨는 "만약 조정위가 발표해도 최종안의 일시 중지를 요구하고, 다른 단체들과 협력해 법적 효력 없이 보류되는 쪽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21~22일 행동에 나선 피해자들은 조정위 구성에 참여하지 않은 단체 중심이라 실제로 조정안 발표에 관여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 단체 관계자는 "조정에 참여한 단체 10곳은 조정위에 공문을 보내 수정 요청했다. 2차 조정안에 문제가 있지만 이들 중에서 반발하며 이탈한 곳은 없고, 최종안을 확인한 뒤에 결론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조정 어떻게...

조정위 막바지 고심…내달 초로 발표 늦춰질 듯 

민간 부문에 합의를 넘긴 정부에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주무 부처인 환경부 등도 책임이 명확한데 한발 빠져 있다는 것이다. 조씨는 "정부는 민간 조정이라고 강조하지만 모든 가해 기업이 모든 피해자 대상으로 조정한다는 건 결코 사적인 조정이 될 수 없다. 정부가 제도적으로 피해자 도울 추가 방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이 일도 그냥 묻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만큼 조정위는 최종안 발표를 앞두고 고심을 이어가고 있다. 피해자·기업 측 최종 수정 요청을 받는 한편, 조정위 안팎의 의견 수렴도 거치는 중이다. 3자 협의 과정이 길어지면서 최종안 발표 시기는 당초 2월 말에서 3월 말로 한 달가량 연기됐다. 하지만 정부 협의, 기업 주총 등의 일정 여파로 다음 달 초 이후로 다시 발표가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정위 관계자는 "결과·일정은 대통령직인수위 등 정치적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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