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약속에 5년 희망고문 당했다" 가습기 참사 피해자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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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약속에 5년 희망고문 당했다" 가습기 참사 피해자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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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약속에 5년 희망고문 당했다" 가습기 참사 피해자의 분노


중앙일보 2022.4.12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8월 청와대 인왕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8월 청와대 인왕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더 이상 안전 때문에 억울하게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하겠다."  

2017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와 그 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취임 직후였던 문 대통령은 “그동안 정부가 피해를 예방하지 못했고, 피해가 발생한 후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며 이전 정부를 비판했다. “피해자들과 제조 기업 간의 개인적 법리 관계라는 이유로 피해자 구제에 미흡했다”면서 사과의 말도 전했다. 그러면서 “정부도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할 수 있는 지원을 충실히 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대통령의 약속이 '공염불'이 될 우려가 커졌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조정안을 옥시·애경이 거부하면서 사실상 조정이 무산돼서다. 기업 뿐 아니라 정부 책임론도 거세지고 있다. 피해자들은 "정부가 희망고문만 했다"며 실망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이 지난달 28일 서울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앞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참사' 옥시 책임 촉구 기자회견에서 가습기살균제를 들어 보이고 있다. 뉴스1

치료비 받기도 어렵다…"서류 준비 고통, 지급도 늦어" 

3년 넘게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피해자 안은주(54)씨는 매주 위독해졌다가 약간 호전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오랫동안 입원한데다 약과 의료 장치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누적 치료비도 엄청나다. 언니 안희주씨를 비롯한 가족들에겐 그 사이 10억원 넘는 빚만 쌓였다.

피해자들은 특별법상 규정된 피해 구제 급여를 받는 것조차 쉽지 않다. 행정 처리가 늦어져서다. 담당 기관인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관련 서류를 내도 수개월 이상 기다려야 치료비를 받을 수 있다.

더군다나 각종 비용을 청구하기 위한 방대한 서류 준비부터 쉽지 않다. 지급일보다 늦게 나오거나 아예 한달치를 빼먹고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안희주씨는 "간병인에겐 적어도 하루 13만~15만원은 줘야 하는데 정부가 지급하는 간병비는 최저임금에 준한 6만원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올해 분은 지난 1월 신청한 게 3월 말에야 나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요양생활수당도 한달 넘겨 주거나 정해진 날짜보다 늦어지는 게 다반사"라면서 "업무 담당자 통화도 어려워서 직접 사무실을 찾아가야 할 정도"라고 전했다.

미성년 피해자 박준석(15)군도 비슷하다. 몸 속 장기가 망가지면서 거의 매주 병원에서 주사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앞으로도 계속 병원에 가야 하지만, 비용 처리가 또 하나의 벽이다. 약값 영수증 하나 받으려고 대학병원 약국 앞에 2~3시간 기다리는 게 일상이 됐다.

어머니 추준영씨는 "치료비가 많은 사람들은 1000만~2000만원은 우습게 나간다. 우리도 봉급 생활자라서 병원비 낼 때마다 많이 힘들다"라면서 "아이 약값이 많이 나오는데 그 처리도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천식약과 함께 쓰는 위장약은 직접적 관련성이 없다고 치료비에서 빼버린다. 그럴수록 자체 부담하는 비용이 커지는 식"이라고 했다.

가습기살균제합의를위한피해자단체 소속 회원들이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 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가습기 살균제 참사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올 연말까지 3000여명 피해 인정 '미지수' 

피해자로 인정받기도 쉽지 않다. 정부의 피해자 인정이나 피해 등급 판정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3000여명에 달한다. 김이수 조정위원장은 "피해자들이 (조정) 지원금을 받으려면 판정이 끝나야 한다. 환경부에 관련 절차를 서둘러달라고 계속 요구했고, 정부도 올해 말까지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올 연말까지 작업이 마무리될 지 미지수다. 올해 들어 피해구제위원회가 피해자로 인정하거나 피해 등급을 판정한 인원은 56명에 그쳤다. 지난해에도 5차례 회의에서 243명만 인정됐다. 이번달 열리는 위원회에서도 100명을 넘기긴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각종 지원이 늦어지거나 줄어드는 피해자들은 힘겨워 한다. 길게는 몇년씩 기다리기도 한다. 피해자 김종제씨는 형이 지난해 폐암으로 숨졌지만 1년 넘게 피해자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돌아가신 형이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건 맞다고 하는데, 정확한 피해 여부는 아직도 심사 중"이라면서 "적어도 사망자는 빨리 결정을 내는 게 도리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김이수 위원장이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뒤로 빠진 정부…"지원보다 간섭" 

기업·피해자 간 협의로 진행된 피해 구제 조정에서도 '잡음'이 나온다. 사적 조정에만 맡겨놓고 정부는 뒤로 빠져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원활한 조정을 위한 지원 업무에 충실하겠다고 했지만, 책임 없이 간섭만 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그러는 사이 옥시·애경 두 기업이 최종 조정안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6개월간 진행된 조정이 빈손에 그칠 위기에 놓였다.

조정 상황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조정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부 역할과 책임이 필요 없는 곳이 없다. 하지만 정부가 지원보다는 자잘하게 간섭하는 일이 많고, 막상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면 한 발 빼는 식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조정위가 정부 측에 요청했던 향후 신규 피해자에 대한 전담 지원도 확정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와 환경부, 보건복지부 등 범 부처 협의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조정위의 황정화 조정위원은 "앞으로 들어온 추가 피해 신청에 대해선 정부가 예산을 편성하면 된다고 본다. 정부가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준다면 충분히 (처리) 가능한 문제"라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범단체 '빅팀스(victims)' 회원들이 7일 서울 SK서린빌딩 앞에서 피해 보상을 위한 기업과 조정위원회의 책임을 촉구하며 상여 행진을 하고 있다. 뉴스1

피해자의 분노 "문 대통령 5년간 허송세월"  

하지만 정부는 조정에 개입하기 어렵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피해자와 기업, 두 당사자 간 합의가 중요한 사안이라 정부는 조정 동향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지원이 미비하단 지적에는 “올 초 피해조사기관을 10곳에서 13곳으로 확대했지만 피해자 판정엔 시간이 여전히 오래 걸리고 있다. 다만 지난해부터 소화질환, 정신 피해 등을 포함해 피해 인정 범위는 넓어졌다”고 해명했다.

참사 해결은 사실상 윤석열 정부로 공이 넘어갔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한 피해자는 “피해자 단체들이 대통령직인수위에 적극적인 문제 해결을 요청했다는데 아무 답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라고 했다. 추준영씨는 “문재인 대통령 사과 후 5년은 사실 아주 긴 시간인데 이를 허송세월했다. 피해 아동 부모들에게 ‘곧 될거야’라는 희망고문만 남기고, 퇴임을 앞두고 있다”라면서 “정부는 아이들 꿈을 밟았는데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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