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구제법 흔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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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구제법 흔들기

최예용 0 6531

- 법안통과 임박하자 정부 대책내며 생색
- 진정성 있는 대책과 적극 지원 아쉬워

국회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 결의안을 수용하지 않던 정부가 국회의원들이 공동 발의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법률안’ 통과가 가시화되자 뒤늦게 피해자 지원에 나서는 시늉을 보였다. 최근 현오석 부총리 주재 경제 관계 장관회의에서는 소송 장기화 등으로 치료비 부담을 겪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가습기 살균제 물질을 ‘환경유해인자’로 인정하고, 환경보건법에 따라 우선 지원한 후 소송 결과에 따라 구상권을 행사하겠다는 게 골자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전향적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다소 고무적이긴 하지만 시점이 문제가 된다. 법적 근거가 없다며 손 놓고 있는 정부를 보다 못한 국회의원들이 직접 피해구제법을 발의해 환경노동위원회 차원의 입법공청회도 거쳤고, 법안 심사를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정부 대책이기 때문이다. 국민 여론에 의해 9월 정기국회에서 피해구제법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구제법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결의안을 근거로 대책을 내놓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사고 있다.

실제 원인을 알 수 없던 폐질환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란 사실이 2011년 8월 밝혀지면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들은 폐 손상을 환경성질환으로 지정하고, 환경보건법에 근거해 피해자를 구제할 것을 요구해왔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환경부 환경보건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해 환경성질환으로 지정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지만, 환경부는 환경성질환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피해자 구제를 거부해왔다. 심지어 지난 4월 추경예산심의에서 민주당은 환경보건법 20조를 근거로 피해 구제를 위한 예산 200억원을 증액할 것을 요구했지만 기획재정부 등은 ‘환경보건법 20조가 피해구제 예산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며 예산 증액을 한사코 반대했다. 결국 추경예산에서 피해구제 예산 증액은 무산됐다.

정부가 내놓은 지원책이 피해구제법에 담긴 구제 방안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것을 두고 정부가 물 타기를 시도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당초 법안에 담겨 있는 생계수당 지원이 빠졌고, 사망한 유족에 대한 지원 대책도 묘연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물질을 ‘환경유해인자’로 인정해도 환경성질환의 최종 판단은 ‘환경보건위원회’가 하게 된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산업계와 관련 분야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환경보건위원회의 다수 위원들은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피해는 환경성질환이 아니라고 결정한 바 있다. 환경보건위원회가 부결하면 정부의 피해구제 계획은 법적 근거가 소멸돼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

가습기 살균제 관련 논란을 종식하고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 대책이 피해구제법의 구제 방안을 충분히 반영하는 쪽으로 보완되거나, 몇 년간 논의 끝에 마련된 피해구제법이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돼야 할 것이다. 정부가 또 무슨 장난을 치려는지 계속 주시할 일이다.

2013년 8월16일자 환경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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