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3신- ‘Asbestos’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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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3신- ‘Asbestos’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

최예용 0 6688

, 팔자에 없는 줄 알았던 BMW를 몰았다. 매년 25만톤씩 20여년간 무려 500만톤의 석면을 생산하여 전량 아시아로 수출할 계획인 캐나다 퀘벡(Quebec)의 제프리석면광산(Jeffery Mine)을 찾아가는 길. 외진 곳이라 매주 금요일과 일요일에만 버스편이 있단다. 내일 아침이면 밴쿠버로 떠나야 하기 때문에 할 수없이 차를 빌리기로 했다. 아침에 예약한 차를 찾으러 갔더니 같은 비용에 준다며 BMW를 내줬다. 동승한 캐슬린이 이러다가 광산지역사람들한테 환경운동가란 놈들이 돈질하러 왔다고 놀리는 거 아니냐며 웃는다. 차가 잘 나간다는 느낌이 있긴 했지만, 외형이나 내부는 소나타보다 결코 낫지 않았다. 비용도 원래 차 대여료는 5만원정도 밖에 안되는데 이것저것 붙어서 12만원정도 했다. 어떻게 된 렌터카 회사가 지도도 한 장 안 줘서 물어물어 가다가 결국 길을 잘못 들어 캐나다 퀘벡 교외의 시골구경 실컷 했다.

 

날은 쾌청했지만 바람이 많이 불었다. 차창 밖으로 언뜻언뜻 벌써 나무 색깔이 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퀘벡의 초가을이었다. 한달 정도만 있으면 캐나다 국기에 그려져 있는 빨간 단풍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나는 마을마다 이층집을 훌쩍 넘기는 키 큰 나무의 흔들리는 잎들이 햇빛에 반짝였다. 운전대를 잡은 나는 눈으로는 퀘벡의 가을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귀로는 실컷 구경했다. 옆자리의 캐슬린 할머니가 지르는 감탄사가 하루종일 이어진 것이다. ‘야 멋있다고 한마디 하고는 눈으로 속으로 감상하는 우리네와 달리 캐슬린 여사는 어메이징’, ‘원더풀’, ‘아이러브댓’, ‘지저스’, ‘러블리이러면서 순 입으로 감상하는 거였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퀘벡가을을 즐기고 있었다. 칠십년을 넘게 보아왔을 경치일텐데 그녀는 나무를 흔드는 그 바람이 너무나 좋다고 했다. 세계에서 가장 험악한 곳인 퀘벡의 제프리석면광산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일 한국인 석면피해가 많은 일본의 오사카 지역에 석면마을 Asbestos Village’라고 불리는 센난시가 있는데 어디까지나 별칭이다. 그런데 퀘벡의 제프리광산은 정식 명칭이 ‘Asbestos’라는 마을에 있다. 현재 거주 인구가 7천명으로 시(city)는 아니고 조금 작은 타운(town)이다. 원래는 다른 이름이었는데 광산 때문에 이름을 바꾼 것이냐고 캐슬린에게 물었더니 처음부터 아스베스토스 asbestos 였단다. 지금부터 130년전 이곳에서 석면이 발견된 이후 주욱, , 심플하게 석면타운으로 불린 거다. 하기사 조금 생각해보면 지금은 석면이란 말이 으스스한 1급 발암물질로 인식되지만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말로 석면은 한자로 石綿면과 같은 돌또는 돌에서 섬유가 나온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말이고, 영어로 asbestosa sbestos가 합쳐진 건데 a not ‘아니다이고 sbestos quenchable ‘끌 수 있는또는 멸할수 있는뜻이 합쳐서 불멸의’, ‘꺼지지 않는라는 뜻을 가졌다. 한글과 한자어는 생긴 모양을 표현했고, 영어는 기능을 표현한 셈이다. 석면이 사용되기 시작한 게 고대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석면의 위험성을 처음 알게 된 게 100년이 채 안된다. 그리고 석면이 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진 게 1970년대니까 불과 40여년 전이다. 그러니 130년전 퀘벡 사람들이 이 지역이름을 asbestos라고 부른 건 당시로선 이상한 일이 전혀 아닌게 된다.     

 

놀랍게도, 캐나다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퀘벡석면광산 문제해결에 가장 앞장서는 인물로 유명한 캐슬린 여사도 제프리광산은 처음 가본단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나라라는 캐나다에서 환경운동을 한다는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녀가 사는 곳이 비행기로 4시간 거리의 동부지역이고 원래 인권운동을 하던 언론인출신의 캐슬린이 석면문제로 환경운동에 뛰어든 게 4-5년전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다. 그녀는 석면문제를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닌 인권문제로 본다. 그러니까 암을 일으키고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함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사용하라고 하고, 다른 나라에 팔아먹으며 조심해서 사용하면 괜찮다고 하는 건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행위라는 관점이다.

 

조심해서 사용하면 괜찮다라는 게 바로 ‘controlled use’인데 이게 어처구니없게도 수많은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와 기업 심지어 언론들을 매수한 용어, 아니 국제 석면산업계가 고안해 낸 마케팅 비법이다. 이 웃기는 용어의 본뜻은 위험한 건 사실이지만 조심만 하면 괜찮을 수 있다이다. 헌데 정말 웃기는 건 이런 주장을 하면서 캐나다와 퀘벡사람들은 석면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거다. 지들은 사용하지 않으면서 조심만 하면 괜찮다며 1급 발암물질을 팔아먹는 게 캐나다요 퀘벡이다. 지랄 맞은 사실은 이런 걸 다 알면서도 아시아 대부분의 정부들이 석면수입을 허가하고 기업들이 사다가 사용한다는 거다. 환경분야에서 일하면서 드물지 않게 환경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하는 경우를 종종본다. 수은, 비소, , 크롬 등 이 유해중금속이라고 벌벌하면서 정작 그 물질들이 들어 있는 쓰다버린 전자제품을 재활용이란 명목으로 이웃나라로 가져가게 하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선진국이라는 용어가 상대적이어서 한국에게는 캐나다가 선진국이고, 인도네시아에게는 한국이 선진국이다. 결국 양심적인 자본’,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것이 실상 그렇고 그런 것이다.

 

여기서 잠깐 영어공부를 쫌 해보자. 아래 두 문장만 보면 되는데, 이게 지난주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의 멤버인 필리핀과 인도의 환경단체에 날아든 캐나다대사관의 편지다. 직역하면 캐나다 정부는 백석면은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견지합니다. 이는 산업적으로 중요하지만 위험성이 있는 다른 모든 광물질과 그 생산물에 대해 같은 입장입니다. 우리는 백석면이 건강에 유해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위험은 안전관리조건하에서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습니다.”가 된다. 그럴 듯 한가?   

the Government of Canada supports the controlled use of chrysotile nationally and internationally in the same way it supports the use of all other hazardous but industrially important minerals and products. Although we recognize the fact that chrysotile can be hazardous to health, the risks associated with its use can be managed under controlled conditions.

 

캐나다 대사관이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열불이 났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그냥 보고 넘겼을지 모르지만 이 문제 때문에 이역만리 졸라 먼 캐나다 몬트리올에 와있지 않은가. 해서 당장 다음과 같은 메일을 써서 A-BAN에 돌렸다.

 

What the fucking idiot, the Canadian government is! How come the top class carcinogen can be used under controlled in Asia even they do not use it in they own places? I’m sure next Tuesday Quebec election can change the idiotic Canadian government’s wrong position.

 

이런 쌍놈의 젠장할 캐나다 정부 같으니라구. 지들은 사용하지도 않는 1급 발암물질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며 아시아에 팔아먹는 단 말이냐. 담주 화요일에 나오는 퀘벡의 지방선거에서 (석면수출에 반대하는 입장을 공식표명했고 현재 여론조사 1위인) 야당이 승리하기만 해봐라, 저 말도 안되는 캐나다 중앙정부의 주장에 엿을 먹일 수 있을 거다.” 뭐 그런 식의 뉘앙스다. 역시 영어보다 한글로 하니 훨 직설적이고 생생하네. ㅋㅋ

 

석면타운은 조용했다. 아니 고요했다. 90년대 초반 탄광들이 문을 닫은 강원도 태백지역이 이랬을까? 다른 지역에서는 여기저기 붙어 있는 선거포스터도 이곳에서는 거의 안보였다. 사람들의 왕래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캐슬린 여사가 긴장했다. “여기서는 사람들 보는 데서 내 이름을 부르지마. 엊그제 여론조사 1위로 차기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큰 야당이 제프리석면광산의 재정지원 결정을 취소하겠다고 발표해서 분위기 엄청 살벌할 것 같아. 잘못걸리면 생매장될라제프리석면광산을 반대하는 유명한 인사인 캐슬린이 이곳에서는 당연 웬수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니 여기 처음 온다면서 뭐 그런 걱정을 다 하고 그러셔라고 퉁쳤더니 니도 조심해야돼. 2년전에 퀘벡시 대학에서 토론이 벌어졌을 때 여기 사람들이 여럿 왔었잖아. 그때 너도 눈에 띄었을 거야그러는 거 아닌가. 아뿔사, 그런 일이 있었지. 나도 여기선 웬수겠구나. 잘못 걸리면 죽음이다. 그곳에 머무는 2시간 여동안 우리는 입을 꼭 다물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식당에 들러서도 말없이 밥만 먹었다.

 

단일석면광산으로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제프리석면광산은 진짜 엄청나게 컸다. 폭이 2km, 깊이가 거의370m인 오픈마인, 노천광이다. 일반인의 길이 감각을 돕기 위해 안내판은 광산의 깊이 표시를 324m인 에펠탑 그림을 그려두었다. 지금은 에펠탑크기의 두배에 해당하는 650m 깊이에서 노천광이 아닌 closed mine형태로 석면을 캐내고 있다고 그림판은 설명하고 있었다.    

 

1974년에 이 광산발견 100주년 기념행사를 했단다. 그러니까 1874년에 WH Jeffery라는 사람이 이 지역에 석면이 묻혀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1880년부터 생산을 시작했다. 20여년간 1897년까지 WH Jeffery라는 이름의 광산이 운영되었고, 이후 다시 20년간 1817년까지는 Asbestos-Asbestic 이란 이름의 광산회사가 되었다. 그리고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석면회사 Johns-Manville Corporation 66년간 1983년까지 운영했다. 이후 현재까지 Mine Jeffery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제프리광산 130년의 역사는 현대사의 흐름이 그대로 녹아 있다고 제시카라는 젊은 학자가 정리한 글에 나와있다.

 

프리광산이 세계적으로 유명해 진 건 아이러니하게도 1차 세계대전이다. 석면은 군함제조 등 필수불가결한 군수용품, 전쟁물자였기 때문이다. 미국회사인 존스맨빌의 인수로 제프리광산은 호황을 맞게 된다. 전후의 일었던 도시개발붐으로 석면은 더욱 중요한 건축자재가 되었다. 토마스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후 전기사용에 따른 화재가 많아졌고 이 때문에 세계주요 도시들은 앞다투어 석면을 필요하게 되었다. 제프리광산은 24시간 돌아갔고 더욱 많은 광산노동자들을 필요로 했다. 1925년까지 제프리광산은 세계석면생산의 75%를 차지했다. 노천광산의 특성상 차츰 주변지역을 잠식해가면서 광산이 커져갔다. 하지만 호황은 계속되지 않았다. 1930년 대공황으로 제프리광산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곳이 됐다. 그러나 곧 이어 발발한 2차 세계대전은 다시 제프리광산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석면을 원료한 방직기술로 석면실, 석면포 등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광산은 크게 확장되었다.

1949년에는 광산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지만 정부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철저히 진압되고 말았다. 석면광산 노동자들의 노동권쟁취를 파업과 투쟁은 현재 퀘벡지역의 노동운동의 중요한 역사를 차지한다고 한다. 때문에 이후 석면이 암을 일으키고 더이상 생산되어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크게 일었어도 퀘벡지역의 노동운동이 이 문제를 적극 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실제 노동자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석면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정작 퀘벡지역내애서 이러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어온 것이다. 때문에 퀘벡지역 노동조합과 단체들은 나라밖으로부터 많은 질타와 비판을 받아왔다.

이후 10년이상 광산의 호황이 이어졌다. 1970년에 불기 시작한 환경운동은 제프리광산에도 불어닥쳤다. 특히 어머니들이 석면의 위험성을 알리는데 앞장섰다. 그리고 미환경청이 적극적으로 석면의 위험성을 제기하여 그동안 쌓아온 기적의 광물이란 공든탑이 무너져 내렸다. 불에 타지 않고 전기를 통하지 않게 하는 특징으로 각광받아온 석면은 그러나 노출되면 치명적인 질환을 유발한다는 사실 때문에 제프리광산의 쇠락이 시작됐다. 앞다투어 제기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연이어 패소한 존스맨빌사는 결국 파산하여 제프리광산을 떠나고 말았다. 이후 줄어든 광산노동자들의 임금도 주지 못할 정도로 운영이 어렵게 된 제프리광산은 2010년 이후 석면생산이 중단된 상태다.  

      

광산입구는 황량했다. 커다란 주차장에 차가 달랑 2대 주차되어 있었고, 생산된 물량을 실어내는 창고들은 1개만 열려있고 모두 문이 닫힌 상태였다. 광산입구에서 200여미터 떨어진 곳에 광산의 전경을 볼 수 있는 view point가 있었다. 엄청난 크기의 포크레인 삽이 놓여있고, 갖가지 형태의 석면광맥을 함유한 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바람이 엄청 불어 서있기 힘들었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주거지역이 광산에서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어떤 집의 마당에는 아이들 미끄럼틀과 그네도 있었다. , 이를 어떡해? 이사람들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는 걸까?

 

야호~ 어제 95일 선거에서 제1야당인 퀘벡당(Pati Quebecore)이 이겼다. 비록 과반을 차지하지 못해 minority government라서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공약대로 제프리광산에 지원키로 한 재정지원은 취소된다고 파티퀘벡쿠아 당수가 재자 확인했다. 그리고 의회에서 그 비용으로 이지역의 경제발전을 위한 공청회가 열린다. 어떤 방식의 지역개발계획이 제시될지 궁금했다. 무슨 첨단산업이 들어오거나 우리네처럼 카지노가 들어올 만한 곳은 안되는 것 같고 세계최대의 노천광산의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을 가두어 인공호수에서 무슨 돈벌이를 한다든가,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곳으로 만든다든가그때는 마을 이름부터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타운 제프리뭐 그런 걸로 말이다. 글을 맺기전에 캐나다 퀘벡의 석면광산문제가 왜 우리에게 중요한지 분명히 해두자. 다음 표를 보면 알수 있듯 그동안 한국이 수입한 석면의 절반넘는 59%가 바로 캐나다 산이다. 퀘벡에는 제프리광산 말고 LAB Chrysotile이라는 석면광산이 하나 더 있는데 지금 한국에서 석면피해자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주요 원인제공을 제프리석면과 LAB석면 이 두 캐나다 퀘벡산 석면이 했다고 보면 된다.   

 

얼쑤어제 브라질에서 들어온 또하나의 기쁜 소식. 브라질은 세계5대 석면생산국중 하나인데 상파울루시 등 자치단체들이 석면사용금지조치를 내리자 석면산업계가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했었다. 브라질 대법원의 청문회에서 검찰측이 논거에서 석면산업계를 강하게 비난하면서 상파울루시 등이 취한 석면사용금지 조치가 합당하고 당연하다고 변호했다는 것이다. 또, 석면이 1급 발암물질이라는 점은 WHO, ILO 등 국제기구들이 수차례 확인하여 이론의 여지가 없고 브라질의 석면산업계는 석면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데 전혀 기여를 하지 않는 등 파렴치하다는 등의 거의 석면추방운동가 수준의 비판을 했다고 한다. 재판부가 좋은 결론을 내릴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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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석면광산, 세계에서 가장 큰 노천석면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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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석면추방투사 캐슬린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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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전경을 둘러볼 수 있는 관망대 입구의 거대한 포크레인 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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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캐나다가 세계 석면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 도표들과 관련 사진들이다. 몬트리올 세계암회의 석면세션에서 발표한 자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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