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4신-매일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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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4신-매일기록

최예용 0 7140

8월6일부터 9월4일까지의 캐나다 석면문제 출장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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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6일 일요일

캐나다 몬트리올 오는 길. 2년 전에도 이렇게 먼길을 온 적이 있다. 그때는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는 석면암 중피종환자 이정림선생과 같이 였다. 경북 김천에 사는 그녀의 경우 나보다 더 먼 여행을 해야 했다. 새벽에 출발하는 인천공항행 리무진버스는 1시간이 넘는 거리인 대전으로 남편이 데려다줬다고 했다. 대전에서 3시간가까이 달려서 인천에 도착했고 인천에서 캐나다 밴쿠버까지 10시간, 공항에서 서너시간 대기, 몬트리올까지 국내선으로 다시 4시간여, 그렇게 새벽에 출발한 여행은 지구의 자전방향을 거꾸로 도는 시간을 거스르는 여행이었다. 태평양상공에서 날짜 변경선을 지나 하루를 벌고 그렇게 하여 30여시간만에 몬트리올 숙소에 도착 일본, 홍콩, 인도, 인도네시아 등에서 온 다른 일행과 만날 수 있었다. 캐나다 동부 퀘벡주는 많이 추웠다. 우리가 도착한 날 눈이 내렸는데 2010 12월초로 첫눈이라고 했던 것 같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눈이 수북이 쌓일 정도로 내리고 있었다. 생전 눈 구경을 하지 못하는 열대국가 인도네시아에서 온 다리스만(Darisman)은 길거리 눈위에 누워서 발버둥을 치며 신기해하고 좋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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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초 캐나다석면문제 아시아항의단, 왼쪽부터 홍콩의 오마나, 인도네시아 다리스만, 일본 가즈미(아버지가 석면암 중피종으로 사망한 유족), 몬트리올에 도착한 날 첫눈을 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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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퀘벡주 의회에서의 기자회견, 가운데 이정림씨가 발언하고 있다, 퀘벡주 의원이 같이 했다. (이정림씨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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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일 월요일

새벽3시가 조금 넘은 시간, 프랑스 밖에서 프랑스어를 쓰는 가장 큰 지역인 캐나다 퀘벡주의 주도인 몬트리올시의 한 호텔에서 이 글을 쓴다. 한국에서는 역대 5위권의 강력 태풍이 할퀴고 갔다고 한다. 이어 비 많은 태풍이 또 지난다는데 뜨거웠던 여름을 그냥 보내지 않겠다는 뭐 그런 신호인가 보다. 얏튼 태풍지나가면 완연한 가을이 오지 않을 까 싶다. 여기도 구름이 많이 끼는데, 낮에 걷히니 거의 가을 하늘 수준으로 맑고 쨍한 햇빛이다. 엊 저녁에는 약간 쌀쌀한 듯한 시원한 가을 바람이 불었다.

2년전에 가봤던 몬트리올 바실리카 노틀담 성당(Basilique Notre-Dame)에 가봤다. 그 성당에 붙어 있는 작은 전시장에서 'Life before Death' 라는 제목의 사진전을 봤는데 독일 사진가가 병원에서 사망을 앞둔 사람을 사망전후로 사진찍어서 비교전시해 놓은 것인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런 말이 있는지 모르지만 사람이 죽어서 편안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한다면 그 사람의 생은 행복하고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싶다. 사망 직후에 찍은 핏기가 사라진 얼굴과 사망전에 찍은 한 장의 얼굴사진. 대부분 암에 걸린 말기 환자의 모습이다. 어린아이도 있고 젊은 사람도 있다. 한장의 얼굴사진에 그 사람의 인생이 모두 표현된다 싶을 정도로 여러가지가 표현되어 있다. 나의 삶은 어떠할까? 사진전시장을 둘러보는 내내 작년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장례식장에서 염을 하는데 핏기가 가셔서 거의 하얗고 광대뼈가 돌출되기 시작한 얼굴이었다. 영혼이 빠져나갔다고 하는 표현이 과장되지 않았다.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또 무엇인가? 열심히 사는 것, 치열하게 사는 것, 더불어 여유롭게 사는 것, 아웅다웅 하지 않으며 사는 것, 절제하는 삶, 어울리는 삶, 평범하지만 나름의 주관을 잃지 않는 삶. 서로 모순되는 듯한 여러가지 표현들. 이런 생각을 할 때만 잠시 생각하고 실제 삶에서는 다 잊고 자기 성격대로 상황 주어지는 대로 사는 것이 실제 삶이다. 멀리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삶과 죽음을 한곳에 담아놓은 사진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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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노틀담성당 전시관의 사진전시회, 왼쪽사진이 살아생전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사망직후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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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일 금요일

목요일 제프리석면광산 다녀오는 것을 끝으로 몬트리올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국제암회의를 조직한 국제암단체연맹(UICC)가 대회결의문에 캐나다 석면광산재개에 반대하는 내용을 넣도록 캐슬린여사가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그렇게만 된다면 몬트리올 활동이 나름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

1)먼저, 석면세션에서 발표하는 것이 기본적인 임무인데 무난하게 진행되었고, 2)다음, 회의장안밖에서의 석면추방캠페인도 배너홍보는 못했지만 대신 하얀리본캠페인을 진행했다.

3)WCC 대회결의문에 석면추방의 문구를 넣어 세계에서 가장 큰 암관련 조직이 이 문제에 대해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 120국가 400여개의 회원단체에 이 메시지가 전달되도록 하는 일,

4)당초 계획했던대로 제프리석면광산 답사도 다녀왔다.

5)기대하지 않았던(캐슬린은 캐나다현지에서 이 문제를 계속 다뤄와서 기대하고 있었다고 한다)퀘벡 제1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제프리석면광산 지원계획을 철회하겠다는 천군만마와도 같은 소식이 있었다.

6) 마지막으로 그린피스 퀘벡사무실을 방문하여 그린피스의 젊은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석면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가졌다. 2년전 아시아대표단 방문했을 때 그린피스의 Eric이 적극 지원했는데 이번에 또 만났다. 에릭은 자신이 그린피스 국제본부 소속으로 되어있다며 아시아석면문제 해결에 그린피스가 관심을 갖도록 해보자고 적극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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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당의 석면광산지원계획 철회 공약을 1면에 대서특필한 프랑스어 현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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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 퀘벡사무실에서 활동가 및 자원봉사자들에게 캐나다의 석면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캐슬린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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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93일에 알게된 내용이다) 캐슬린여사의 집이 있는 스미서스에 와서 몬트리올에서 세계암회의를 조직한 UICC가 폐막선언문에 석면사용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UICC의 홈페이지에는 이러한 내용의 선언문에 올라있지 않다. 캐슬린의 설명에 의하면 보수적인 UICC가 폐막선언문을 채택하긴 했지만 내용이 부담스러워서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는 것 같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실망스런 일이다.

이상과 같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아침 일찍 몬트리올을 떠나 밴쿠버로 이동했다. 밴쿠버에서는 목적지인 북부지역 스미서스(Smithers)행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데 비행기시간이 오후 6시라 약 4시간여 시내를 구경했다. 아주 멋진 해안도시였다. 태평양에 접해있는 반도에 자리잡은 밴쿠버는 해양성기후때문에 비가 많이 온다는데 오늘은 너무나 맑고 화창했다. 그래서인지 금요일인데도 오후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인접한 공원에서 화창한 날씨를 만끽하고 있었다.

이번에 캐나다 퀘벡을 가게되면 혹시 고래관광을 하게 될지 하는 약간의 기대를 했었다. 2010년년 왔을 때 퀘벡의 호텔에서 관광전단에 고래관광을 한다는 걸 봤었다. 하지만 몬트리올과 퀘벡을 방문했을 때 전혀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그런데 밴쿠버 해안도로를 걷다가 고래관광을 한다는 안내원을 만났다. 815분에 탑승준비하여 아침9시 출발해서 저녁730분에 돌아오는 하루종일 코스로 4월부터 9월까지 고래를 불 수 있단다. 배의 이름은 Prince of Whales 배 바닥은 FPR 스피드 보트형태고 둘레는 고무보트형태로 되어 있어 속도를 내면서도 안전성을 갖춘 조디악이라 불리는 배인데 큰 조디악을 타고 이동하다가 덮개가 없는 작은 조디악으로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 고래구경을 한다고 한다. 고래종류는 오르카라 불리는 범고래(killer whale, Orca), 귀신고래(grey whale) 그리고 혹등고래(humpback whale)을 볼 수 있단다. 아마 시기별로 볼 수 있는 고래의 종류가 다를 것으로 생각되었다. 비용은 성인 308달러 약 32만원 정도로 비싼편이다. 하지만 하루종일 코스이고 고래뿐 아니라 물개, 바다사자 구경도 포함되어 있고, 중간에 섬에 내려서 섬구경도 하고 돌아올 때 석양을 구경하는 등 나름 프로그램이 괜찮아서 돈값을 충분히 하겠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어린이는 반값을 한다고 해도 가족단위로 참가하면 상당한 부담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밴쿠버는 1971년 그린피스라는 모임의 이름을 처음으로 달고 핵실험반대 해양캠페인 선박이 출항한 지역으로 서구 환경운동의 상징인 고래보호운동에도 가장 앞장서는 항구도시로 알려져 있어서 고래관광 프로그램도 매우 훌륭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한국에도 하루빨리 고래관광이 도입되어 사람들이 수족관에서 하는 돌고래쇼가 아니라 바다에서 직업 고래를 보고 즐기게 되길 바란다. 고래관광이 사업적으로 성공하려면 갖추어야 할 조건이 많다. 일단, 고래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제주도 일대와 포항과 울산의 약간 먼바다 정도다. 그외 지역은 등지느러미가 없는 상괭이 고래가 많이 있지만 보일 듯 말 듯 수면으로 나타났다 사라지기 때문에 고래관광의 대상으로 적절하지 않다. 또 고래를 바다의 로또로 여기는 풍조가 바뀌어야 한다. 여기게 그물에 걸려 죽은 고래를 신고하면 가질 수 있고 팔 수 있는 제도가 바뀌어 그물에서 풀어주면 포상을 하고 죽더라도 가질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고래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일정지역 바다에 고기잡는 그물을 설치하지 않도록 하는 고래보호구역을 설정하는 일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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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항구에서의 고래관광 홍보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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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을 하면서 외국출장을 가끔 다니는데, 느낀 것들 중 환경선진국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게 나름대로 3가지 정도 있다.

첫번째는 풍력발전소다. 독일과 네델란드 영국의 해안가는 물론이고 내륙에서도 곧발 보이는데 원전을 넘어 친환경에너지원의 상징이다. 2000년 영국에 머물때는 12일로 영국에서 처음 생긴 뉴캐슬의 바다위에 세워진 해상풍력발전소(offshore wind farm)를 보러간 적 있다. 한국에서도 얼마전부터 제주를 필두로, 대관령, 경북 영덕 등지에 풍력발전소가 세워졌다. 한국도 환경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두번째는 자전거다. 도로에 자전거들이 많이 다니면 환경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집집마다 식구들 숫자대로 자전거가 있고 10분만 타고나가면 자전거도로 따라 교외로 빠져나갈 수 있는 그런 시스템, 부러웠다. 최근 한국도 자전거길이 많이 확대되었다. 서울 동부지역 교외, 팔당호 옆으로 난 자전거길은 자전거터널까지 생겼다. 확신컨데 세계에서 유일한 자전거터널일 것이다. 단선인 중앙선 철로를 복선의 직선화하면서 생겨난 철로를 자전거길로 만들었다4대강 사업과 관련만 안시켰더라면 이 자전거길은 나라도 나서서 동네방네 자랑해주었을 텐데, 아쉽다.

세번째는 고래관광(whale watching)이다.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가족단위로 고래를 보러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는 건 어느정도 경제적, 정신적, 환경적 수준이 되지 않으면 쉽지 않다. 한국의 경우 고래를 바다의 로또로 여기는 풍토 때문에 고래관광이 쉽게 추진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최근 돌고래쇼를 중단하고 바다로 돌려보내자는 운동이 추진되고 있어 의외로 빠른 변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오후6시 밴쿠버 국내선 공항을 이륙한 프로펠러형 50인승 작은 비행기는 록키산맥 지역인 북아메리카 서부산악지역 상공을 날아 올랐다. 아까 밴쿠버 시내로 들어가는 전철에서도 보았는데 비행기에서도 밴쿠버 항구 곳곳에 벌목나무들을 바다와 강어귀에 띄워 놓은 것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B.C.)는 대규모 벌목으로 악명높은 곳이 아니었던가? 수십 헥타에 달하는 산악지역을 깡그리 밀어버린 소위 클리어컷(clear cut) 벌목사진이 실린 신문과 환경잡지를 종종 보았었다. 캐나다 서부지역은 광할한 산림지역으로 유명한데 동시에 마구잡이식 클리어컷 벌목자행에 환경운동가들이 이에 항의하고 반대하는 활동을 오랫동안 벌인 곳이기도 하다. 나무를 끌어안거나 나무 위에 올라가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는 방법 등 평화적으로 나무보호 운동을 하던 환경운동가들은 무자비한 벌목회사들의 행태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공격적인 방식이 도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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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는 상당히 위험한(?) 방법들도 있었다. 벌목대상인 나무에 길다란 대못을 여기저기 박아 놓는 방법이다. 그렇게 되면 벌목공의 전기톱이 못에 걸려 부서질 수 있고 그러면 큰 불상사가 날 수 있어 벌목공들이 사전에 일일이 점검을 해야 하고 시간을 벌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기름을 넣어 사용하는 벌목장비와 차량의 기름통에 모래를 잔뜩 집어 넣어 못쓰게 만들어 버리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들은 적지 않은 손해배상과 형사적 처벌이 뒤따르기 때문에 개인이나 전투적으로 활동하는 지구우선 Earth First’와 같은 전위적 환경단체들이 사용한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이쯤되면 운동을 넘어 글자그대로 투쟁이요 전쟁이다. 하여 보수적인 언론들은 이러한 전위적 환경운동가들을 에코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대중적 지지와 후원을 바탕으로 사회운동을 해야 하는 것이 올바르지만 오죽하면 그런 방법을 동원했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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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러시아 시베리아 스베뜰라야 한대림지역에서의 벌목반대 산림보호 캠페인현장, 사진 왼쪽이 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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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린여사 설명에 의하면 지금도 벌목이 이루어지긴 하지만 과거같이 막무가내로는 못한다고 한다. 1994년 그린피스와 함께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위쪽의 지역인 시베리아 스빼뜰라야(Svetlaya)에서 현대그룹의 벌목문제에 대해 현장조사와 항의캠페인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퇴역한 캠페인 선박인 MV그린피스호가 한국에서 반핵투어를 마치고 동해를 관통하여 북으로 올라갔고, 그린피스의 산림보호담당활동가들과 더불어 환경운동연합에서 나와 지금은 중국에 가 있는 양장일씨가 현지로 직접 합류했었다. 현장답사를 한 이튿날 우리는 리바트가구로 알려진 현대자원개발이라는 현대그룹의 계열사가 진행하는 벌목현장에서 벌목기계 앞에 드러누워 작업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섰다. 2시간여 시베리아 벌판에 그렇게 누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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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알게 된 용어가 클리어컷팅(clear cutting)과 셀렉티브컷팅(selective cutting) 즉, 완전벌목과 선택벌목이다. 완전벌목은 큰나무 작은 나무 할 것없이 대상지역을 몽창 밀어버리는 방식으로 경제성과 효율때문에 벌목회사들이 선호한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벌목기계(logging machine)가 나무 밑둥을 잡자마자 베어 쓰러뜨리면 자동으로 두두둑 가지를 순식간에 쳐낸다. 이렇게 하여 기계한대가 한시간에 수십그루의 나무를 베어낸다. 이런 방식은 시베리아와 같은 한대림지역에서는 생태계회복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으로 만들어 버린다. 반면 선택벌목은 대상지역 군데군데에 선정한 나무 만을 벌목공이 잘라서 하나하나 길가로 끌어내는 전통적인 방식이다. 선택벌목은 생태계에 미치는 충격을 줄이고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목재회사들이 기피한다. 80년대와 90년대 환경운동의 주요 이슈였던 벌목반대운동은 대규모 목재회사와 가구회사들로 하여금 선택벌목을 하고, 절대보호지역을 손대지 않도록 하는 약속을 받아냈다. 물론 지구촌 곳곳에 엄청난 생채기를 낸 후의 일이다. 하지만 지금도 브라질이나 인도네시아 러시아와 같은 개발도상국 열대우림 및 한대림 지역에서는 마구잡이식 완전벌목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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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의 강위에 띄워있는 벌목 나무들>

91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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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은 300여미터 거리의 농장 서너개가 전부인 캐나다 산림지역 한복판. 캐슬린 여사의 집이다. 사방이 나무들로 둘러싸인 산림지역. 부엌 발코니 창문너머로 이 지역의 상징인 허드슨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집들이 모두 소와 양을 기르는 농장형태라서 집 주변 일정공간은 나무가 없이 풀만자란다. 6000피트 그러니까 2000미터 높이로 이 지역에서 가장 높아 상징적인 허드슨산은 계곡마다 군데군데 눈이 덮여있다. 만년설이다. 캐슬린 여사의 부엌창문으로 펼쳐지는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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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에서 이곳 스미서스로 오는 비행기 창문너머로 군데군데 눈덮힌 산맥이 90분동안 이어졌었다. 어떤 곳은 만년설이 아니라 아예 빙하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컸다.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만년설은 eternal snowfield or icecap이고 빙하는 glacier인데 빙하라하면 남극이나 아이슬랜드와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엄청나게 큰 얼음덩어리를 말하는 것 같지만, 만년설 자체가 빙하다. 캐슬린은 멀리서 보니까 눈이 조금 덮여 있는처럼 보이지만 직접 현장에 가보면 엄청 크고 두꺼운 얼음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위도상으로 50도 가까운 높은 곳이니까 그럴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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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에서 북쪽의 스미서스로 1시간30분여 이동하는 동안 비행기 아래 펼쳐진 대형 빙하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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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파랗고 높았고 바람은 시원했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내는 소리로 귀가 가득했다. 캐슬린은 우리가 정말 운이 좋다고 연신 말했다. 늘 이렇게 좋은 날씨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아침 6시 조금 넘에 눈이 떠졌다. 강한 아침 햇빛이 나무와 풀들의 진한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발코니에 나섰는데 비온 것처럼 시멘트 바닥에 이슬이 흥건해 양말을 적셨다. 밤에 많이 추었다는 이야기다. 부엌 싱크대에 붙은 창문 밖에 걸려있는 수은주는 0도를 가리키고 있다. , 0도의 기온이라, 서울은 지금도 낮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린다는데. 하기사 한국도 강원도 산간지역의 기온도 새벽에는 추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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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사진찍기 좋은 타이밍은 아침에 해 뜰때와 저녁에 해질 무렵이다. 파장이 긴 붉은 햇빛이 깊숙이 비치는 시간인데, 빛이 대상을 선명하게 비쳐주고 진한 그림자를 만들어 준다. 빛의 량이 너무 많아 생각한 것보다 좋은 사진을 얻기 쉽지 않고 해를 바라보고 찍을 경우 역광때문에 촬영이 쉽지 않다. 하지만 나뭇잎과 풀잎에 붙어 있는 서리와 물방울이 햇빛에 반짝여 사진찍는 맛을 제대로 안겨준다. 이렇게 카메라 뷰파인더는 풀잎의 그림자를 좇다가 푸른 하늘을 보다가 다시 작은 꽃잎의 물방물을 정신없이 겨냥했고 그 사이 두 시간이 금방 흘렀다. 목이 뻐근 했지만 행복했다. 해가 중천에 뜬 대낮에는 결코 맛 볼 없는 아침사진촬영의 꿀맛을 캐나다 산림지역 한복판에서 오랜만에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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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아침을 먹고 시내로 나갔다. 오늘은 일주일에 한번 열리는 농부시장(farmer’s market)이 열리는 날이다. 11시경 도착했는데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다. 30여곳 정도의 텐트가 처져있고 농부들은 자신들이 기른 상추 등 갖가지 야채를 판다. 손으로 만든 목걸이 등 장신구를 파는 곳, 이 지역의 경치와 동물을 찍은 사진엽서를 파는 곳, 실로 뜬 모자와 머리띠를 파는 곳도 눈에 띈다. 사진엽서 파는 곳에서 곰가족 사진과 가을풍경 사진엽서를 샀다. 아직은 가을초입이라 나무들이 푸른색이어서 캐나다를 상징하는 빨간 단풍잎은 사진엽서로 볼 수 밖에. 우리네 5일장과 같은 개념인 듯 한데 규모가 작지만 한가운데에는 5명으로 구성된 악단이 분위기를 돋구었다. 필요한 농산물을 사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사람들과 만나 소식을 주고받고 차마시고 노래구경하는 교류의 공간이었다. 한켠에서는 칸막이를 쳐 놓고 아이들이 토끼랑 놀고 있었고 조랑말에 올라탄 아이들이 신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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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시장에서의 쇼핑이 끝나갈 무렵 농부시장이 열린 장터 옆의 교회처럼 생긴 소방서에서 갑자기 꽤 큰 싸이렌 소리가 울렸다. 웁스, 어디 불났나? 했더니 점심시간인 정오에 울려주는 ‘noon siren’이란다. 아하~ 우리네도 그런게 있었다. 국민학생시절 시골인 전북 김제 만경에서 여러 차례 들어봤었다. ‘오포 午砲라고 불렀다. ‘낮에 울리는 포소리뭐 그런 뜻이다. 싸이렌이 없던 때는 포를 쏴서 울려주었던 가 보다. 손목시계가 없던 시절 농부들은 논에서 밭에서 일을 하다 끼니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해서 정오에 읍내에서 커다란 소리로 싸이렌을 울려준다. ‘점심시간이니 일손을 멈추고 식사들 하세요~’ 그런 메시지다. 우리네는 그런게 완전 사라져 버렸는데 여기서는 계속 울려준다. 당연 손목시계가 없어서 울려주는 것은 아닐 것이고 일하다 때를 놓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터다. ‘, 이 사람들아 배꼽시계 안 울려? 굶지 말고 일하시오 들!’   

산 물건들을 차에 실어놓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 재활용센터에 들르자고 제안했다. 여기라면 품질좋은 셔츠와 바지를 싼 가격에 몇 개 구입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재활용센터의 가게이름은 ‘New to You’였다. ‘당신에게는 새 물건그런 말로 흔히 부르는 용어인 Secondhand Shop보다 훨씬 재미있게 느껴지고 비록 남이 쓰던 물건이지만 당신에게는 새물건이니 어서 와보라고 하는 듯하다. 가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옷들은 여성과 아이들 것이었다. 남성물건은 한쪽 두줄 밖에 없었다. 왜 크기별로 구분해 놓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처음에는 그렇게 해 놓았는데 사람들이 섞어 버렸단다. 꼼꼼히 뒤져서 겨울용 바지1, 티셔츠 2, 털로 짠 윗도리 2장 등 모두 5장을 골랐다. 모두 합해서 13달러. 조금전 찻집에서 사먹은 조각케익과 카푸치노 가격보다 쌌다.

 

현재 내가 갖고 있는 겨울옷의 1/3 정도는 다른 사람이 준 것이다. 조금 체격이 큰 편이라 남이 준다고 해도 잘 맞지 않는데 환경운동연합에서 수년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친해진 미국인 짐월시가 미국 중서부 투싼의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옷과 그릇들을 주었는데 그걸 다시 내가 10년 넘게 입고 있다. 한국 티셔츠보다 전체적으로 겨드랑이 부분에 여유가 많아 편안하고 통풍이 잘돼 선호한다. 누군가 오랫동안 입었던 물건을 내가 다시 수년간 입어 목부분에 닳아서 헤졌다. 세탁소에서 뒤집어 달라고 했더니 말짱하다. 앞으로 3-4년은 족히 더 입을 것이다. 남이 준 옷들은 대개 겨울용인데 여름용은 얇아서 쉽게 떨어져 남이 준 옷을 입기 힘들다.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못한다. 일년에 한두번은 옷선물이 들어와 생각한 것처럼 잘 지켜지지 않긴 하지만 앞으로 옷을 더 사지 않고 살자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40대 후반의 내 나이쯤 되면 앞으로 죽을때까지 굳이 새 옷을 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철마다 다른 옷을 제법 많이 갖게 된다. 안입고 철을 보내는 옷이 한번이라도 입는 옷보다 많다.

 

나이들면 오래된 옷을 입지말고 새옷 유행하는 옷을 입어야 늙은 티를 내지 않고 추레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그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옷을 깔끔하게만 입는 다면 굳이 새옷이 필요하지 않다는게 지금의 생각이다 나중에 생각이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오늘 ‘New to You’ 재활용 매장에서 산 헌옷 5장은 모두 내게는 ‘New to Me’였다. 이제 내 겨울옷의 절반정도가 secondhand shop에서 구입하거나 남에게 얻은 옷들이 되었다. 가게문을 나서는데 캐슬린이 그런다. 이 재활용센터의 수입은 모두 병원에 기증되고 운영자들도 모두 자원봉사하는 거라고.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앗싸아~ 맘에 드는 옷을 싼값에 구해고 그것마저 좋은 일에 쓰인단다아~           

 

도서관에 들러 공짜인터넷으로 집과 신문사에 글을 보내고 아직도 자고있을 원아가 볼 영화비디오 서너개를 골라 돌아오는 길. 이웃집 농장에 들러 계란 두판을 샀다. 당연 유기농 계란이다.  오늘 아침 에그스크램블을 해봤는데 아주 크고 실하다. 그리고 고요한 오후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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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린여사네 이웃집 농장에 계란사러 갔다가 너무 멋진 광경이 펼쳐져 얼른 사진에 담았다>

 

5시경 산책에 나섰다. 곧장 동쪽으로 난 길언덕을 넘어 가니 엄청 넓은 평지가 나온다. 원래 산림지역인데 목장하기 좋으니까 상당부분을 밀어내고 농장지로 사용한단다. 그러고 보니 이 지역은 길이 300-500미터 단위로 농장들이 이어진다. 각 농장은 소나 말을 기르는 목초지가 조성되어 있고 나머지는 산림이다. 위성사진을 보면 분명히 알 것이다. 시원한 바람이 키가 30미터쯤 돼 보이는 플라타너스, 자작나무, 전나무들을 흔들었다. 멀리 보이는 산봉오리에는 크고 작은 만년설이 보인다. 맑고 파란 하늘, 간간히 떠 있는 흰 구름, 상쾌한 공기, 시원한 바람, 뜨겁지 않은 햇살, 사방팔방 숲과 나무들, 솨아~하는 바람소리 나무소리, 나는 그렇게 캐나다 서부 한대림이라고 할 수 있는 산림지역 한복판을 걷고 있었다.

 

92일 일요일

 

오후에 캐슬린이 한시간 가량 운전해서 북쪽의 헤이즐튼(Hazelton)지역 구경갔다. 중간에 스키나리버(Skeena River)라는 이름의 멋진 강을 구경했다. 폭이 꽤 넓다. 50미터는 족히 돼 보였다. 조용히 흐르던 눈녹은 찬 강물이 작은 계곡을 통해 급류를 만들며 흘러가고 있었다. 작은 급류를 만드는 곳에 사람들이 연어를 잡고 있었다. 누구나 잡는 건 아니고 허가 받은 사람들만 출입하라는 표시가 있다. 멀리서 보기에 꽤 큰 연어들이 앞다투어 약 3-4미터가 넘어 보이는 낙차를 뛰어 올랐다.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고 TV에서도 본 적 있지만 직접 보니 정말 신기했다. 급류위로 작은 다리가 지나는데 ‘Enbridge threatens our rivers. Water: lifeblood of our comminities’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엔브리지가 우리 강을 위협한다. 강물은 우리 지역의 생명의 피다.’ 캐나다 중북부지역의 엔브리지 유전지역에서 석유를 채취하여 이곳을 관통하는 송유관을 통해 태평양연안까지 수송하고 거기서는 선박으로 수송한다는 거대한 파이프라인 계획이다. 엄청난 환경오염을 유발할 이 계획은 당연 대부분의 지역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다. 캐슬린의 차 뒤에도 이걸 반대하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We say NO to Enbridge oil’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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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ena river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 두마리가 보이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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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zelton은 작은 마을이었다. 그 마을뒤쪽으로 제법 큰 강이 흘렀다. 옛날에는 이 강으로 사람들이  배를 이용해 물자와 사람을 수송했단다. 뒷쪽에 큰 물레방아 처럼생긴 회전판이 서너개 돌아가며 배의 물살을 가르는 그 배는 지금 강가 옆 육상으로 옮겨져 안내소 구실을 하고 있다. 안내판에는 이곳에 교회와 우체국이 1880년대에 세워졌음을 알린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쉬다 우리는 First Nation의 문화를 보존하고 있는 키싼(‘KSAN’)이라는 이름의 박물관에 들렀다. Gitsksan라는 부족의 원주민들의 삶을 여러 개의 목조건물에 나누어 설명해주는 훌륭한 박물관이었다. 밴쿠버 공항 곳곳에 이들 고유의 문양을 조각한 나무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캐나다에서는 이들 원주민을 First Nation라고 부른다. ‘처음부터 살고 있던 국민이란 뜻으로 미국에서는 이들을 American Indian라고 부르는 것과 대조적이다. 나름 존중의 뜻을 담고 있다. 캐나다는 미국과 국제전화번호도 1로 같이 쓸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지만, 나름 소위 양키문화와 다른 점을 유지하려는 노력도 눈에 띈다. 사실 북미원주민들이 인디언들이 아니지 않은가? 콜럼부스가 처음 북미지역을 발견했을 때 그곳이 인도인 줄 잘못 알고 인도사람 즉 인디언라고 부른 것이 지금도 그대로 불린다. 실수가 고쳐지지 않는 역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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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원주민 First Nation의 문화를 기록해 놓은 박물관, 동물들에게서 따온 문양이 독특하다>

저녁에 캐슬린이 추천하는 영화 ‘Being Caribou’ DVD로 봤다. 캐나다 국립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이라고 했다. 북아메리카 북부지역에 사는 순록을 카리부 caribou라고 부르는데 120,000마리의 거대한 순록떼가 매년 1,500km 서부에서 동부로 이동하여 새끼를 낳고 먹이를 구한다. 이들은 다시 동에서 서로 이동을 하는데 한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으로 이들을 따라 200여일 동안 여행하는 기록물이다. 신랑은 영화제작자이고 신부는 생물학자다. 서에서 동으로 갈 때 이들은 14일치의 식량과 텐트 그리고 스키장비를 갖추고 이동한다. 보기만해도 엄청 무거운 장비다. 젊은 사람들이니 가능한 일일 터. 이들은 눈을 헤치고 구릉을 넘어 가능한 지름길을 택해 24시간 이동하는 순록떼를 따라잡았다. 관찰 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가는데 순록떼들은 현지사정에 따라서 몇 개의 작은 그룹으로 나뉘어 다양한 경로를 택하기 때문에 이들을 좇는 게 쉽지 않다. 때로는 험하게 흐르는 강물을 헤엄쳐야 한다. 14일이 지나 중간에 작은 창고 같은 곳에서 비행기가 이들의 식량을 던져주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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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록떼의 이동경로에는 굶주린 곰과 여우 들이 등장하여 새끼를 노리는 장면이 나온다. 동부에서 서부로 돌아올 때, 이들은 순록의 이동 행태를 가능한 그대로 따라한다. , 순록이 먹이를 찾을 때 이들도 식사를 하고 순록이 밤새 이동하면 이들도 그렇게 한다. 순록들의 이동경로를 따르다가 식량이 떨어져 4일간이나 굶기도 하는데 이들은 야생쥐를 잡아먹는다. 남자가 구운 쥐를 먹으며 말한다. ‘토끼고기보다는 강한 맛이네요하며 맛있게 먹는다. 영화의 제목 그대로 순록 되기즉 야생의 삶 살아보기다. 눈보라치는 텐트속에서 비디오 카메라를 향해 한마디 하는데 인상적이다. ‘야생wilderness에서 안전safety하기를 바라는 건, 진짜 야생이 아니에요. 야생과 안전은 병립하지 않아요

이 신혼부부의 특별한 신혼여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다니는 아주 유명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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