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담배핀후 10분 있다 들어와!"

간접흡연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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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흡연공해

"밖에서 담배핀후 10분 있다 들어와!"

최예용 0 6472
2012년 11월29일자 한겨레신문 <환경뉴스>란에 실린 글입니다. http://ecotopia.hani.co.kr/63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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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독성물질이 벽·옷·가구 표면에 흡착 몇 달 동안 다시 배출

“밖에서 담배 핀 뒤, 10분 있다가 들어 와야”… 석면과 담배 동시 노출 치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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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말 캐나다 동부 몬트리올에서 열린 국제암학회의 석면세미나에 참석했다. 선진국인 캐나다가 자신들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 1급 발암물질 석면을 대량 채굴해서 아시아로 전량 수출하는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되었다.

퀘벡의 석면광산을 답사한 후, 캐나다 서부의 밴쿠버 공항에서 귀국편 항공기를 기다리면서 공항 면세점을 둘러봤다. 면세점 안쪽 귀퉁이에 하얀색의 칸막이가 쳐 있고 담배라는 단어와 미성년자 출입금지 표시가 붙어 있었다. 이 안에 흡연실이 있느냐고 판매원에게 물으니 담배를 파는 곳이란다.

들어가 봤다. 처참한 몰골의 암환자 사진이 크게 붙어 있는 10갑 단위 포장팩이 쌓여있어 질겁했다. 목에 구멍이 뚫린 후두암 남성환자 사진, 이가 흉측하게 썩고 눈에 허연 백내장이 생긴 여성이 니코틴에 노랗게 찌든 손가락에 담배를 든 사진도 있다. 젊은 여성인데 이마와 눈가는 쭈글쭈글했다.

차량 뒷자리에 앉은 어린이가 앞쪽에서 날아오는 담배 연기에 힘들어하는 사진, 코에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할머니 사진 옆에는 ‘숨쉬는 게 고문이에요’라고 적혀 있다. 커다란 양변기에 피가 가득한 사진에는 ‘담배가 방광암을 일으킨다’라고 쓰여 있다.

배가 불룩한 임산부가 뒤에서 자신을 안고 있는 남편의 담배를 든 손을 밀치는 사진의 제목은 ‘노 쌩큐’다. 그 사진에는 간접흡연으로 뱃속의 아기가 위험할 수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그밖에 혀에 허연 백태가 잔뜩 긴 사진은 설암을 경고하고, 눈을 뒤집어 큰 주사기로 힌 눈동자를 찌르는 사진에는 ‘실명 위험이’라고 적혀 있다.

이걸 한국에 가서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두 팩을 들고 나왔다. 판매원이 한 사람당 한 팩밖에 살 수 없다고 한다. 가격이 엄청 비쌌다. 우리네 담배값의 2~3배를 넘었다. 돌아와 사무실을 찾는 사람들에게 보여줬더니 다들 놀라고 신기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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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 밴쿠버 공항 면세점 한쪽 구석에 있는 담배 판매대는 가려져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왼쪽). 가림막 안으로 들어가니 담배갑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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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배갑의 후두암 환자 사진(왼쪽)과 눈 수술 사진. 흡연으로 실명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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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안에서의 흡연 위험성 경고(왼쪽)과 설암 위험 경고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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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에서 안고 있는 남편의 담배 든 손을 임산부가 밀어내고 있다(왼쪽). 담배 중독자 모녀사진, 어머니와 딸이 대를 이어 담배에 중독되었다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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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흡연으로 젊은 여성의 이가 썩고 피부가 쭈글쭈글해지며 손가락에 니코틴에 노랗게 되며, 백내장에 걸린다는 경고(왼쪽)와 흡연으로 인한 방광암 경고 사진.

 

 

필자가 담배갑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캐나다 출장에 앞선 8월 중순 우리 담배갑에 고래와 고양이 그림이 들어있다는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우연히 담배갑의 고래와 고양이 그림이 있는 걸 보고 놀랐는데 디스플러스라는 담배였다.

오랫 동안 고래보호 운동을 해온 사람으로서 충격이었다. 혹등고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레종이란 이름의 담배는 6종시리즈에 다양한 몸짓을 하는 고양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사람들에게 물으니 고래 그림은 남성적인 느낌을 주고, 고양이 그림은 여성적인 느낌을 준다고 답했다(쉬크하다고 했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에게 이런 그림이 언제부터 있었냐고 물으니 오랜 된 것 같다고 했다. 뭐 그러려니 하는 눈치들이다. 레종 시리즈는 담배갑 자체가 화려해서 눈길을 끈다. 녹색, 파랑색, 주황색, 회색 등. 다른 담배갑들도 모두가 예쁘고 멋지기(?) 그지없었다. 대나무 그림마저 있었다. 예전에 도라지 향이 나는 담배가 있었는데 담배 광고에 도라지가 기침에 좋다는 내용을 넣었다가 ‘말도 안된다’는 항의를 받고 취소했다고 한다.

이렇게 화려한 포장의 한국 담배들에도 담배 경고문구가 있긴 하다. "담배 연기에는 발암성 물질인 나프틸아민, 니켈, 벤젠, 비닐클로라이드, 비소, 카드뮴이 들어 있습니다." 작은 글씨라서 자세히 들여다 봐야 보인다. 이 경고문구는 답배갑 아래쪽이 아니라 뚜껑 쪽에 새겨져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담배를 꺼낼 때마다 눈에 들어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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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고 그림보다 고래와 고양이 그림이 먼저 눈에 띄는 한국 담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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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담배갑에 그려진 고래와 고양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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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보건시민센터의 담배갑 동물그림 반대 캠페인 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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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와 흡연의 해악을 말할 때 ‘간접흡연’이 자주 거론된다. ‘2차 간접흡연’이라고도 한다. 담배 피우는 당사자야 나쁜 걸 알면서도 자기가 선택해서 피우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게 날아간 담배연기가 고통을 넘어 각종 암을 일으킨다. 미국 질병관리본부의 통계를 보면, 간접흡연으로 사망하는 사람 수가 교통사고나 자살보다고 많다고 한다. 공해문제가 따로 없다.

최근에는 ‘3차 간접흡연’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실내 환경문제를 전공하는 서울대 보건대학원 이기영 교수는 ‘흡연을 할 때 발생하는 가스상 독성물질이 벽, 가구, 옷, 장난감, 집 먼지 등의 표면에 흡착되는데, 몇시간에서 몇 달까지 장기간 동안 이 물질이 공기중으로 다시 배출되어 흡연이 끝난 이후라도 흡연에 의한 오염물질로 인한 노출이 계속된다’고 설명한다.

이 교수는 ‘3차 간접흡연의 과학적 증거의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간접흡연의 과학적 증거를 여러 개 든다. ‘흡연한 곳의 표면에 흡연 후 21일이 지나도 40%의 니코틴이 남아있다’, ‘흡연자가 모는 차량에서 흡연을 하지 않는 때에도 표면적 니코틴의 농도에 차이가 없다’, ‘집 밖에서 흡연하는 경우라도 니코틴의 농도가 비흡연자의 집보다 유의하게 높다’는 등이다.

전혀 담배 냄새에 노출될 것 같지 않는 신생아의 소변에서 니코틴이 검출되는 사례는 ‘3차 흡연’의 극명한 증거다. 흡연자가 집에서 흡연하는 경우와 비교할 때, 흡연자 가족이 집에서 흡연하지 않는 경우 신생아 소변의 니코틴량이 3~8배 감소하고, 가족 모두 비흡자인 경우는 5~7배 감소한다. 흡연자나 비흡연자 모두 외부에서 묻혀 온 담배의 유해물질이 집안에 있는 신생아에게 노출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흡연자가 집 밖에서 담배를 피운 뒤 10분 이상 바람의 쐬어 옷에 묻은 담배물질을 제거한 후에 집안으로 들어와야 3차 간접흡연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3차 간접흡연이 얼마나 심각한 건강피해를 일으키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2차 간접흡연의 폐해를 익히 알고 있는 지금, 3차 간접흡연의 피해 데이터가 제시되어야만 위험하다고 할 것인가. 3차 간접흡연에 노출된 신생아들이 커서 각종 질병에 걸리더라는 장시간의 연구결과를 기다려야 대책을 마련할 것인가.

석면문제도 흡연과 관련이 높다. 석면에 노출된 사람이 담배에 노출되면 폐암 발병율이 50배 이상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석면문제가 일부 석면공장 노동자들에만 해당하지 않고 각종 건물 철거현장 심지어 야구장, 학교운동장, 생태하천 자전거길, 골프장 등 우리 주변 환경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누구라도 환경석면 노출을 피해가기 힘들다.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와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흡연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여 폐암과 폐질환 발병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다. 그런데 간접흡연은 비흡연자의 노력만으로는 노출을 막는데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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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면에 노출된 사람이 흡연하면 폐암 발병위험도가 크게 증가한다는 설명 그림.

 

그동안 담배 문제는 환경운동이나 소비자운동의 주요 이슈가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다. 담배는 개인의 선택이고 사회운동은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어서 담배 문제가 주요 운동 대상이 아니라고 구차한 변명처럼 들린다.

고백하건대, 필자를 포함해서 환경운동가와 시민운동가들 중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흡연가들이 어찌 스스로를 부정하는 금연운동에 나설 수 있었겠는가. 그러한 경향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난주에 국제협약인 담배 규제 기본협약 제5차 당사국 총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176개 회원국이 담배 가격과 조세정책을 활용해서 담배를 규제한다는 내용을 합의했단다.

담배 진열대가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고 담배갑의 절반 이상에 폐암 등 담배로 인한 질병사진을 싣도록 의무화는 규제들이 오래 전에 합의되었지만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말 잔치 뿐인 국제회의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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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0월 인천공항 담배 면세점의 붐비는 모습(왼쪽)과 2012년 6월 김포공항 국제선의 담배 면세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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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1월 서울 강북 지역 주택가의 한 24시간 편의점. 계산대 위와 뒤는 온통 담배광고로 도배되어 있다. 한 건물 화장실에 붙어 있는 익살스런 금연 그림(오른쪽).

 

캐나다 밴쿠버 공항 면세점에서의 경험 후 기회가 날 때마다 국내 공항 면세점을 둘러본다. 산더미처럼 담배가 쌓여있는 담배 면세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눈에 확 들어오는 담배광고판의 네온사인이 현란하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접근 가능하다. 여성들에게 쉬크하다는 느낌을 준다는 레종 담배 광고판의 고양이 그림이 요염하고, 가장 니코틴 농도가 높다는 디스플러스 광고판의 고래 그림은 힘이 넘친다.

공항면세점만이 아니다. 동네 편의점에도 계산대 뒤로 현란한 담배 광고판이 즐비하다. 어제 밤에도 귀가 길에 동네의 작은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하려는데 계산대 위에 새로 나온 담배를 선전하는 광고물이 세워져 눈길을 끌었다.

담배만큼 사람을 죽이는 것은 없다고 세계보건기구는 말한다. 그런 담배를 무차별로 광고하도록 하는 담배광고 천국이 한국이다. 꾸준히 감소하던 흡연율이 엠비 정부 들어 증가추세란다.

글·사진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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