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이 직접 기름방제... 이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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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직접 기름방제... 이건 아닙니다

관리자 0 4010
주민들이 직접 기름방제... 이건 아닙니다
출처; 일과건강 (http://safedu.org, 노동환경건강연구소) 2014 3 12

지난 1월 31일 GS칼텍스 원유2부두에서의 기름 유출사고로 원유와 나프타, 유성혼합물이 최대 75만4000ℓ 가량 유출됐다. 원유는 우리가 잘 아는 물질인데 반해 나프타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물질이다. 

나프타는 석유화학제품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재료 물질로 원유 중에서도 비교적 가벼운 탄화수소들을(휘발성 유기화홥물, volatile organic compounds, VOCs) 뽑아내서 만든 제품이다. 따라서 나프타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물질들은 휘발성이 매우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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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불행히도 그것들의 독성 역시 강한 편이다. 예를 들어, 2004년 외국인 여성노동자들에게 일명 ‘앉은뱅이병’을 일으켰던 헥산 그리고 여수나 울산의 화학산단에 종사했던 노동자들에게서 백혈병을 일으켰던 벤젠 등이 나프타에 상대적으로 많이 함유돼 있다.

그뿐 아니라 신경독성을 비롯해서 다양한 건강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휘발성이 높은 탄화수소들이 다량 함유돼 있다. 휘발성이 강하다는 것은 호흡을 통해서 그것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외에 원유에는 다핵방향족탄화수소와 같이 일부 발암성을 갖는 무거운 탄화수소들도 함유돼 있어 그 자체로 위험한 물질이다. 원유를 이용해 제조해낸 각종 기름과 다양한 석유화학 제품을 사용하는 것은 쓰기에 이롭지만 그것들을 생산하거나 이용하기에는 일정의 위험이 따른다. 

이번 사고에서 나프타를 포함한 기름들이 상당량 쏟아졌다. 복구 현장에 긴급 투입된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은 두통·현기증·구역감 그리고 피부질환 등의 다양한 건강 증상들을 호소했다. 이는 나프타 등에 함유되었던 물질들에 다량 노출됐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전형적인 증상들이다. 

유해물질에 얼마나 노출됐을까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방제작업이 진행 중인 현장에서의 휘발성유기화합물의 공기 중 오염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 2월 5일 현장 평가를 실시했다. 방제작업에 참여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총 36건의 VOCs(휘발성유기화합물) 측정 샘플과 35건의 소변 시료를 채취해 공기 중 휘발성 유기화합물의 노출 수준과 그것들의 노중 대사산물 농도를 평가했다. 더불어 주민들이 어떤 건강 증상들을 경험하고 있었는지 설문조사했다. 

노출평가 대상 항목으로 원유와 나프타의 성분으로 잘 알려진 물질들 중에서 벤젠과 같이 발암성을 갖는 물질을 선정했다. 각 물질의 검출률은 낮은 편이었다. 당연한 결과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프타 등에 포함된 대부분의 물질들은 휘발성 유기화합물이다. 즉, 대부분이 이미 휘발되어 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사고 발생 후 5일이 경과한 시점에서 공기 중에 남아 있는 양은 극히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고 당일이나 이튿날까지는 각종 휘발성 유기화합물의 농도가 매우 높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부 연구에 의하면 원유가 해양에 쏟아질 경우 대략 10~25ppm의 벤젠 노출이 가능하다고 전하고 있다. 그래서 사고 발생 이후 여덟 시간까지는 벤젠 등에 대한 노출이 매우 위험한 시기라고 경고하고 있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확인됐듯이 그들이 경험한 각종 건강증상들을 고려하건대, 사고 초기 주민들에게 각종 유해물질이 노출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럼에도 일부 시료에서는 벤젠이 최고 50ppb(공기 중에 유해물질이 십억분의 일 정도의 비율로 존재한다는 농도 표현 단위)까지 검출됐다. 매우 적은 양처럼 보이지만 미국에서는 송유관에서의 기름 유출 사고 당시 이 농도 수준을 기준으로 주민들을 대피시켰다고 한다. 

적어 보이는 것이지, 적은 양이 아니다. 충분히 위험한 양이다. 사고 초기에 많은 양이 노출되었다가 서서히 빠져 나가고 있는 시점에 조사가 이뤄졌던 것이다. 

사고 당시 어떤 조치가 필요했을까
사고가 났다면 예상 가능한 조치는 우선 대피다. 방제와 복구는 그 다음 수순이어야 하지 않을까? 전국민이 복구 현장에 동원되었던 태안에서의 경험이 학습되었는지 이번 사건에도 피해 당사자인 주민과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방제 및 복구 작업에 자발적 참여를 아까지 않았다. 

사고 발생 후 며칠이 지난 시점이라면 여러 사람들의 애틋한 노력을 안타까워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사고 발생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서슴없이 방제 작업 현장에 투입됐다는 것이다. 초기에 급히 준비된 보호구가 방진마스크(먼지를 걸러내기 위한 보호구)여서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보도는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사건 발생 시점으로 돌아가서 어떤 조치가 필요했을지 차분히 고민해보자. 첫째, 파이프라인에서 쏟아진 물질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어떤 물질이 쏟아졌는지 어떤 성질을 갖는 물질인지, 어떤 독성이 있는지, 방제를 위해서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그리고 노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떤 보호구가 유용한지 등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제품 생산자로부터 즉각적으로 그에 맞는 정보가 제공될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의 준비 및 제공은 사고 대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초자료이기 때문이다.

둘째, 주민들을 대피시킬 것인지 실외 이동을 제한할 것인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유해물질의 노출 수준에 대한 정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긴급히 유해물질 농도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유해물질에 대한 상황판단은 피해 현장에서 긴급하게 결정돼야 할 다양한 조치들의 선택에 있어 핵심적인 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즉, 대피를 해야 할 것인지, 대피가 필요하다면 그 기간은 얼마나 유지되어야 하는지, 보호구를 착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보호구가 적합한 지 등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화학물질 사고에 대응할 수 있는 현장 평가 매뉴얼을 개발하고 그에 맞는 준비를 갖추었다면 태안에서의 경험이 반복되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 태안에서의 기름 방제작업에 참여했던 주민들과 자원봉사들이 호소했던 다양한 건강증상들을 기억해 보라. 그리고 이번 사고에서 경험된 증상들을 비교해 보라. 비슷한 사고가 발생하였다고 해서 그로 인한 피해 양상을 되풀이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셋째, 방제 및 복구 작업에 있어 명확한 역할 구분이 필요하다. 일단 주민들은 피해자들이다. 화학물질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전무한 주민들이 방제작업에 긴급히 투입되는 것은 불합리하다. 

주민들은 대피되거나 보호되어야 할 대상으로서 충분하다. 긴급한 방제작업은 다양한 상황의 대처 등에 대해 준비된 사람들에게 제한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런 일련의 조치는 유능한 지휘체계를 통해 일사분란하게 조직돼야 한다. 

앞서 제기한 바대로 화학물질 관련 사고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의 개발이 시급하다. 매뉴얼에는 대피에서부터 안전한 방제작업 계획 등이 포함돼야 한다. 이 계획에는 유해물질에 대한 모니터링과 주민들의 건강영향 조사까지가 포괄돼야 할 것이다. 

최근에 발표된 태안 주민들의 건강상태에 대한 역학조사에서 염색체 변화와 같은 장기적인 건강증상들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주민들을 대상으로 중장기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건강영향의 변화를 모니터링하고 건강변화를 적극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기름 사고로 인해 주변 환경이 오염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식생을 포함해 해양생태계의 오염 모니터링도 장기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앞으로 단 한 건의 해양 오염 사고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그에 대한 대비는 이제부터라도 철저해야 한다. 사고는 한 번으로 충분하고 고통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한편, 일과건강을 포함한 22개 단체로 구성된 ‘알권리 보장을 위한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준)’는 지난 10일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여수기름유출 주민건강조사결과 발표 및 알권리 보장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는, 피해 주민들의 사고 초기 신속한 대피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것과 사고 발생시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확인하고 노출 수준을 평가해 그에 맞는 대응체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체 기업체의 86%가 취급하는 화학물질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한 화학물질 사고예방과 사고시 비상응급대응은 제대로 될 수 없음을 주장하며 우리주변 화학물질의 종류와 취급량이 공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민관이 참여하는 지역차원의 관리체계를 내용으로 하는 ‘지역사회알권리법’ 제정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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