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사례 15, 세살 아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기록관

[피해사례 15, 세살 아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

최예용 0 6864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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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 아이를 죽게 했나요?"

가습기살균제로 3살 아들 잃은 한 엄마의 이야기

 

 

베이비뉴스 2013년 11월 14일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부모가 먼저 떠나는 건 슬퍼도 인생의 이치라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자식을 먼저 보내는 건 평생 지울 수 없는 아픔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뜻일 터이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은 평생을 죄책감에, 그리움에 사무쳐 산다.

 

"지우진 못하죠. 근데 볼 수도 없어요. 이걸 보면 생각나고 눈물나니까···. 그러면 사는 데 자신이 없어지니까요."

 

강하은(33·가명) 씨는 아이의 생전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기자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아들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지 올해로 6년째. 동영상 속 아이는 입에 산소호흡기를 꽂은 채 힘없이 누워있었다.

 

"빨리 나아서 집에 가자"라는 엄마의 말에 겨우 고개를 끄덕이는 3살 준원이. 많이 힘든지 눈가에 눈물이 촉촉했지만 소리 내 울지도 못했다. 2008년 6월 18일, 준원이는 이 동영상을 담은 뒤 3일 만에 하늘나라 천사가 됐다.

 

강 씨는 6년이 다 되도록 아이의 동영상을 휴대폰에 넣어 다닌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사는 엄마는, 기자에게 겨우 꺼내 보여준 동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강 씨를 만난 날은 지난 11일 오후. 바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장하나 민주당 의원과 함께 서울 송파구 삼전동 옥시레킷벤키저(대표 샤시쉐커라파카) 본사를 찾아 항의서한을 전달하던 날이다.

 

모든 일정이 끝난 뒤, 이날 방문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던 강 씨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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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우리 아이를...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폐질환을 앓다가 하늘나라로 떠난 준원이의 모습. 준원이는 이 동영상을 담은 뒤 3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 강하은

 

◇ 두 아이 모두 병원으로, 의사들은 '희귀병'이라고"

 

준원이는 건강했다. 막내 아들로 태어나 잘 자라줬다.

 

2008년 봄 감기 기운을 보이더니 시간이 가도 낫질 않았다. 소아과에 가서 단순 폐렴이란 진단을 받아 약을 먹여도 그대로였다. 그렇게 밥을 잘 먹던 아이는 밥도 먹지 않았다. 기침은 더 심해졌고 답답한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가슴을 탁탁 쳐댔다.

 

'이상하다, 심각하다' 싶어 대학병원을 찾았는데 산소포화도가 계속 떨어졌다.

 

"간질성 폐렴인 줄 알았죠. 단순하게 스테로이드제 쓰고 치료하면 지장없겠지 생각했어요."

 

괜찮아졌다 싶어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긴 아이는 단 하루 만에 기흉이 생기며 상태가 악화됐고, 결국 소아중환자실이 있는 병원으로 옮겨져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치료방법도, 원인도 몰랐다. 의사들은 '희귀병'이라고 했다.

 

왜 3살 아이가 갑자기 저렇게 됐는지 알 길이 없었다.

 

작은 아이가 중환자실로 옮겨진 지 하루 만에 큰 아이도 호흡곤란으로 무균실에 입원했다.

 

두 아이를 챙기느라 병원비 중간정산을 깜박 했다가 아이 약을 빼는 걸 본 강 씨는 주머니에 1500만 원을 넣은 채 아이들을 간호했다. 그 정도로 큰 아이, 작은 아이 모두를 챙기느라 정신없이 보낸 시간이었다.

 

하지만 "집에 갈까?"라는 말에 겨우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이던 작은 아이는 2개월 반을 중환자실에서 보내다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 "가습기살균제가 아이 죽였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어요"

 

"희귀병인줄 알았는데···. 아이를 보낸 3년 뒤 뉴스에서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인정할 수 없었죠. '설마 아닐거야. 내 손으로 넣은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그런 게 아닐거야.' 인정할 수가 없었어요."

 

불행 중 다행으로 큰 아이는 엄마 곁에 남았다. 하지만 작은 아이를 보낸 후유증은 너무나 컸다.

 

장기간의 병원 생활로 1억 원을 넘게 쓰며 살던 집을 팔아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다.

 

회사를 그만둔 남편의 퇴직금도 보탰다. 무엇보다 아이를 지키지 못한 엄마는 방황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이에 대한 그리움에 자신도 모르게 아이를 따라갈까 싶은 생각도 했었다. 매일같이 환청에 시달렸다. 사람도 만나지 않고 숨죽인 채 살던 1년, 베란다에는 짐정리를 하지 않은 박스들이 남아있었다.

 

강 씨는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나니 지금 뭐하고 있나 싶었다. 난 작은 아이만 있는 게 아닌데···, '엄마 나는 어떡해'라며 울던 큰 아이를 생각하며 정신을 차렸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틴 세월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떠나보낸 원인이 가습기살균제라고 하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뉴스에서도 가습기에 세균이 많다고 그러고, TV광고에서도 가습기살균제는 '인체에 해가 없다'니, 그래서 썼죠. 그러니까 썼죠." 아이들을 생각하며 슈퍼에서 제 돈 주고 사서 쓴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라니.

 

그런데 지금까지 살인 물질인 가습기살균제를 만든 기업은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고, 피해 확인이 된 이후로 3년간 피해자들은 기업을, 정부를, 이 나라를 원망하며 살아가고 있다.

 

강하은(33, 가명) 씨의 아들 준원이. 준원이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강 씨가 자신의 SNS에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알리기 위해 올린 3살 준원이의 모습. 아이는 산소호흡기를 꽂은 채 힘겨운 시간을 보냈었다. ⓒ 강하은
강하은(33, 가명) 씨의 아들 준원이. 준원이는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발생한 폐질환 때문에 산소호흡기를 꽂은 채 힘겨운 시간을 보내다 결국 세상을 떠났다. ⓒ 강하은
 
◇ "미국 같은 나라였으면 가만히 있었을까"
 

그는 "아, 정말 내가 대한민국에 살아서 굴욕이구나 싶다.

 

미국 같은 나라였으면 이런 사건이 났으면 가만히 있었을까?"라며 울분을 토로했다.

 

가습기살균제로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한 사례는 현재(11월 1일) 541건, 사망자는 144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 60%가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사용하다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 씨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피해자에게 직접 와서 사과해야 하는 게 도리 아닌가? 언론플레이 하려는 사과가 아닌 진짜 사과 말이다. 잘못했다면 정중하게 사과하는 게 당연하다고 배웠는데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울분을 표했다.

 

최근 옥시레킷벤키저는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피해자들을 위해 인도적 차원에서 50억 원의 기금을 출연해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3년 만에 처음 있는 공식적인 발표였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가 원인미상폐질환의 원인이 된다는 부분에 대해선 재판을 통해 확인하겠다는 입장을 굳건히 하고 있다. 정부는 2011년 이미 가습기살균제가 원인미상폐질환의 원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강 씨는 "그 돈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산다. 귤 천원어치를 사와도 정말 죄송하다고 하는 게 예의지, 지금까지 피해자들을 문전박대하고 피하더니 단순히 인도적 지원 50억 원이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건 사과가 아니라 희롱"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강하은(33, 가명) 씨의 아들 준원이. 준원이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강 씨가 자신의 SNS에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알리기 위해 올린 글과 3살 준원이의 모습. 아이는 산소호흡기를 꽂은 채 힘겨운 시간을 보냈었다. ⓒ강하은
강하은(33, 가명) 씨의 아들 준원이. 준원이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강 씨가 자신의 SNS에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알리기 위해 올린 글과 3살 준원이의 모습. 아이는 산소호흡기를 꽂은 채 힘겨운 시간을 보냈었다. ⓒ강하은

◇ "내 아이는 나 같은 비극 겪지 않길…"

 

처음엔 마음이 아파 조용히 살고 싶었던 강 씨.

 

이제는 힘이 닿을 때까지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실을 알려, 진정한 사과와 합당한 처벌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최근에는 자신의 SNS에 아이의 사진과 피해사실을 적어 기업의 행각을 알리는 중이다.

 

'네가 네 손으로 넣어놓고 왜 화풀이냐. 이거 아직도 안 끝났냐'는 악의적인 댓글에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강 씨는 가습기살균제로 겪은 고통을 널리 알리고 싶다. 가습기살균제를 제조, 판매한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도 벌이려 한다.

 

"가족들이 그래요. 왜 지금까지 마음 다잡아 놓은 걸 다시 도려내려고 하냐고···.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면 그만큼 방황하는데, 자신 있냐고요. 근데 전 여자가 아니라 엄마잖아요. 엄만데 뭔들 못하겠어요. 내 자식 그렇게 보냈는데 뭔들 못하겠어요."

 

초등학교 5학년인 큰 아이도 "엄마 마음이 아플까봐 그만했으면 좋겠어. 엄마 많이 울고 아팠잖아. 옥시 때문에 그러지마"라고 말한다고. 그런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한 강 씨. 가족을 잃은 슬픔을 일찍 안겨줘서, 건강하게 키워주지 못해서 후회도 미련도 깊다. 그래도 큰 아이 때문에, 또 작은 아이를 대신해 뒤늦게 태어난 막내 딸 때문에 웃을 수 있다.

 

그는 섬유탈취제나 향 등 공기 중에 분사되는 물질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빨래를 삶을 때도 아이들이 없는 베란다에서 삶고, 세제 등의 냄새라도 나면 아이들이 오기 전에 냄새를 다 뺀다. 같은 일로 아이를 다시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강 씨는 늘 큰 아이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아이가 항상 물어요. '엄마 나 어떤 사람되면 좋겠어?' 그럼 전 저처럼 살지 말라고 그래요. 가습기살균제때문에 이렇게 쫓아다니고 끝나지 않는 전쟁을 치르잖아요. 제 아이들만큼은 저처럼 이런 일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살길 바랍니다. 나중에 우리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이 일이 진짜 해결될 수 있을까요? 그때서야 이슈화되고 피해자명단이라도 올라간 걸 볼 수 있을까요? 제발 우리 아이는 저처럼 살지 않길, 그것만 바라죠."

 

자식은 자신처럼 죄책감에 힘들어하지도, 슬퍼하지도 않길 바라는 마음. 무엇보다 집 앞 슈퍼에서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가습기살균제를 샀을 뿐인데,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지금까지 사과 한마디 못 받은 채 힘겨운 싸움을 하는 이 시대의 비극을 경험하지 않길 바라는 엄마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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