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사례 27] 가습기살균제가 앗아간 엄마, 남겨진 아이들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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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사례 27] 가습기살균제가 앗아간 엄마, 남겨진 아이들의 고통

최예용 0 8680 0 0

가습기살균제가 앗아간 엄마, 남겨진 아이들의 고통

 

프레시안 시리즈 기사 8회째 , 2013 12 31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⑧] 피해자들의 자녀 교육 문제

 

안종주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보건학 박사  

 

가습기 살균제, 자녀 교육에도 그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자녀 교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한두 살 또는 서너 살 때 폐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가 겨우 생명을 건진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이들의 건강 걱정에다 교육 걱정에 한숨짓고 있다. 또 엄마라는 존재가 꼭 필요한 시기인, 어릴 때 엄마가 살균제 때문에 사망한 가족들의 아이들은 정상적 육아가 이루어지지 않아 제때 말을 배우지 못하는 등 언어 문제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어머니나 아버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 때문에 직장을 다니지 못하거나 일자리를 포기한 뒤 경제적 곤궁에 처한 가정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에게 다른 부모들이 대부분 해주는 사교육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이 때문에 자녀들이 대학교에 제대로 진학할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다. 가습기 살균제 재앙이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신경 쓰는 자녀 교육 문제에까지 엄청난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이정희(가명·30) 씨는 6살 큰아들만 보면 안쓰럽다. 2011년 5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뒤, 급성 간질성 폐렴으로 발병 두 달 만에 아내는 안타깝게 눈을 감고 말았다. 세 살배기 큰아들과 갓 태어난 아들 등 아들 둘만 남긴 채였다. 둘째 아이는 사촌 누나집에 맡겼다. 큰 아이는 데리고 살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린 아들이라도 어쩔 수 없이 집에 두고 직장을 나가야만 했다. 할 수 없이 나이 드신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다 아이와 함께 지내게 하고 있다.

말 배울 나이에 엄마가 세상 떠난 아이, 언어장애

세상과 교감하며 한창 말을 배울 바로 그 나이 때에 엄마는 곁에 없었다. 3살 때 엄마가 곁에 없는 것이 아이에게도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실은 아이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가습기 때문에 호흡기에 이상이 생겨 한동안 고생했다. 이런 아픔을 겪은 탓인지 아이는 유사자폐 증상을 보였다. 어린이집에 다니지만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의사 소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 씨는 일주일에 한 차례 병원으로 데려가 언어 치료 등을 받게 하고 있다.

그는 일을 하면서도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늘 앞선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도 그리움이지만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버렸기 때문에 아이들이라도 제대로 키워야 할 텐데 현재로선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아이에게 엄마라는 자리가 정말 소중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다.

이 씨와 같은 고민은 어린 아이들을 남겨두고 가습기 살균제로 세상을 떠난 엄마가 있는 가정에서는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늘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환경조사를 위해 지난 여름 전국을 다니면서 이 씨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자녀 교육 문제로 고민하고 고통을 겪고 있는 가정을 많이 보았다.

어린 아이들의 교육 문제뿐만 아니라 초등학교를 다니거나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 가운데 중증 피해를 입어 일터에 나가지 못해 빚어진 생계의 어려움으로 자녀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는 가정들도 제법 있었다. 대개 30·40대 피해자들 가정에서 벌어지는 문제다. 40대의 안 아무개 씨가 바로 그런 경우의 피해자다. 그녀는 일자리를 잃은 것은 물론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어머니로서의 역할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안 씨는 한창 공부에 열중해야 할 아이들이 엄마 걱정에 학습에 집중하지 못할까 염려하고 있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해지는 사춘기에 아이들이 접어들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을 한다. 투병 생활 이전에도 살림이 결코 넉넉지 못했다. 지금은 겨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다른 가정처럼 자녀들을 학원을 보내거나 다른 특기 교육을 시킬 생각을 하는 것은 안 씨에게 사치와 다를 바 없다. 그렇게 시간은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 흘러갔다.

올해 열한 살인 성준이는 다른 또래보다 학교가 1~2년 늦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나 5학년이 돼 있어야 할 나이지만 3학년이다. 이나마 감지덕지다. 성준이는 유치원을 한 번도 다녀보지 못했다. 초등학교도 3학년부터 일반학교를 다니고 있다. 1~2학년 때는 무지개학교를 통해 집에서 공부했다. 암 투병 어린이나 중증질환자 또는 이동을 거의 할 수 없는 아이들이 다니는 인터넷학교다. 올해부터는 3학년으로 일반 초등학교에 전입해 다니고 있지만 이나마 산소 호흡기를 달고 살아야 하는 어려운 여건이어서 일주일에 이틀밖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성준이는 태어난 지 1년 만인 2004년 돌잔치가 끝난 후 감기 증상으로 고생하다 동네 병원에서 단순 감기란 진단을 받고 치료하던 중 갑자기 이유식을 토하고 입술이 파래지는 증상이 일어나면서 호흡 곤란이 와 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중환자실에 있으면서 심폐 소생 시술을 받는 등 한 때 생명의 위기도 겪었다. 그 뒤 기도가 좁아져 목에 구멍을 뚫었다. 목숨은 겨우 건졌지만 성준이와 부모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1년이란 짧고도 긴 투병 끝에 성준이는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병원에서 더 치료받을 일이 없어 퇴원했다. 그 뒤 언어 치료, 재활 물리 치료도 받았다. 아이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머리를 벽에 마구 부딪히는 등 이상 행동을 보여서, 한 대학병원의 유명 소아정신과 의사에게 상담과 치료를 받은 끝에 좋아졌다.

성준이의 엄마 권미애 씨는 억척스럽다. 가습기 살균제 비극을 알리는 데라면 국회든, 방송이든, 거리든 마다치 않고 한걸음에 성준이를 데리고 달려간다. 공중파 방송의 <강연 100℃> 프로그램에 나가서도 청중들의 마음을 요즘 유행하는 말로 들었다 놓았다 한끝에 97점이라는 높은 공감 점수를 받았다. 지난 6월에는 JTBC의 <당신의 이야기> 57회 '달려라 내 아들 성준이' 편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런 억척스런 성격과 행동은 자녀 교육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유치원을 다니지도 못하고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성준이는 큰 문제 없이 커가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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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빈자리는 할아버지가…

물론 나이 또래에 견줘 학습 능력은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구구단을 확실하게 빨리 외우지는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국어, 산수 등 학습과목들의 기본은 배워 익히고 있다. 권 씨는 성준이가 유치원에도 갈 수 없는 몸 상태여서 늘 자녀 교육을 고민했다. 앞으로 그가 커서 20대, 30대가 되었을 때 직장을 가지거나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서 엄마, 아빠 곁을 떠나서도 홀로서기를 위해서는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6살 때부터 방문학습지 교사를 통해 성준이를 교육했다. 지금도 한 달에 20만 원을 들여 일주일에 한 번 방문 교사를 오게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걷거나 뛰지 못하는 몸 상태여서 체육 수업은 생각도 않고 있다. 수두나 독감과 같은 전염성 질환이 돌면 아예 학교 보내기를 포기해야 한다. 올 12월에는 한 차례도 성준이를 학교에 보내지 못했다. 일부 학교에서 유행한 수두 걱정 때문이었다. 권 씨는 아이가 학교에서 혹 다른 아이들한테서 따돌림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을 한 적도 있다. 다행히 친구들이 옆에서 잘 도와주고 선생님도 관심을 많이 기울여줘 그것은 괜한 걱정이 됐다.

권 씨는 성준이의 학습에 목을 매달지는 않는다. 다른 부모처럼 공부하라고 소리치지도 않는다. 건강이 우선이며 공부는 그다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른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보다는 사회인으로서 필요한 기본적인 것만 배우면 된다고 여기고 있다.

성준이는 날이 갈수록 몸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오는 1월 3일에는 구멍을 냈던 목 부위를 메울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그동안 목에 낸 구멍 때문에 불편은 물론 감염 때문에 노심초사했다. 머리를 감길 때에도 혹 그 부위에 물이 들어가 문제가 생길까 봐 신경이 곤두서곤 했다. 권 씨는 성준이의 수술이 잘 끝나면 건강도 더욱 좋아지고 그렇게 되면 공부도 더 열심히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듬뿍 담긴 상상의 날개를 자주 펼친다.

어린 나이에 폐가 가습기 살균제의 공격을 받은 성준이와 같은 어린이들은 또래에 견줘 한결같이 키가 작고 몸무게도 확연하게 차이가 날 정도로 적게 나가는 등 허약하다. 보는 순간 단박에 차이를 알 수 있을 정도다. 두세 살 차이 나는 동생과 엇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왜소해 보이는 경우도 있다. 성준이처럼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운 좋게도 아무런 문제 없이 지내는 경우도 있겠지만 따돌림을 당할 가능성도 충분히 예견된다. 이런 어린이들에 대한 학교와 사회의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
 
가습기 살균제로 단 하나뿐인 생명을 잃은 아픔이 물론 가장 클 것이다. 그다음은 목숨은 건졌지만 여전히 중증 증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보태 미래 우리 사회를 짊어질, 그리고 그 가정에서도 나중에 기둥이 될 아이들이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 또한 결코 예사는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재앙이 가져온 또 다른 후유증인 교육 문제 어떻게 보듬을 것인가도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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