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보] “가습기살균제 참사, 소설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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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가습기살균제 참사, 소설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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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 소설로 기억합니다”
피해자·유가족 삶 담은 연작소설집 ‘하얀 손님’ 낸 천지영 작가
애경 등 1심 무죄 판결 접하고 피해자·유가족 4년 추적 취재
“노트북 속에 묻어둘 수 없던 약속…과거 아닌 현재로 복원”
광주일보 202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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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광주환경운동연합에서 열린 ‘하얀 손님’ 북토크에 참가한 천지영 작가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있던 천지영 작가는 지난 2021년 애경산업 등 관계자들의 1심 무죄 소식을 접하고 사건을 더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자신이 알고 있던 피해와 재판 결과 사이의 간극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때마침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삶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숨;X’의 류이 감독으로부터 피해자 인터뷰에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고 취재에 나섰다.


중학교 국어교사인 천 작가는 4년여에 걸쳐 피해자와 유가족, 의료진, 활동가 등을 취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에 담아냈다. 피해자들의 무너진 일상과 남겨진 이들의 삶을 담은 연작소설집 ‘하얀 손님’(강)이 그 결과물이다. 책에는 참사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 원인 모를 죽음을 추적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9편의 작품이 실렸다.

지난달 26일 광주환경운동연합에서 진행된 ‘하얀 손님’ 북토크는 피해 규모와 책임 공방 너머, 참사를 겪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자리였다. 


천 작가는 “관련 기사와 보고서를 찾아 읽으며 취재를 준비했지만, 직접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된 참사의 모습은 달랐다”며 “기록 사이에 비어 있던 여백이 인터뷰를 하면서 채워지는 느낌이었고, 수치나 사건 위주로 알던 이야기가 한 사람의 삶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기관지가 좋지 않은 아내를 위해 직접 가습기살균제를 구입하고 가습기에 넣어줬다는 남편, 어린 딸을 잃은 국어교사 등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소설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도, 정당한 배상도 이뤄지지 않는 등 참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에도, 피해자들이 들려주는 사랑했던 배우자와 자녀의 이야기는 모두 과거형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남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인데 그분들이 사랑했던 사람들은 과거로 묻혀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펼치면 인물들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소설처럼, 그들의 삶을 생생한 현재로 복원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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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손님’에는 건강과 일상을 잃은 여성, 아내의 죽음 이후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남편, 원인 모를 죽음을 추적하는 의사, 진실을 밝혀야 할 과학자, 피해자 곁을 지키는 활동가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천 작가는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냉동 두부’를 꼽았다. 병원에서 “아이의 폐 상태가 중간중간 구멍이 뚫려있고 탄력이 없어 마치 냉동 두부와 같다”는 설명을 들었다는 유가족과의 인터뷰 후 그 단어가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주변의 관심이 적을 때도 오랜 시간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힘을 묻는 질문에 담담한 목소리로 “그저 계속해왔다”고 답한 활동가도 기억에 남는다.

집필중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도 있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이를 충분히 소화하고 소설로 완성할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아픈 몸으로 귀중한 시간과 힘을 내어 들려준 이야기를 그대로 묻어둘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기록을 노트북 안에 그대로 잠재운다면 그분들을 배신하는 것 같았어요. 저 자신과의 약속이자 인터뷰해준 분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썼습니다.”

완성된 책을 건넨 뒤에도 피해자들에게 감상을 듣기는 어려웠다. 천 작가는 “사건이 알려진 지 15년이 지났지만 정부도 기업도 응답해주지 않은 세월을 지나온 분들이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어하시는 것 같다”며 “누군가에게는 책으로 처음 접하는 이야기지만, 당사자에게는 다시 마주하기 버거운 자신의 삶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윤주은 기자 yun@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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