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끝나지 않은 가습기살균제 사태… “환절기가 되면 외출을 못해요” 유가족은 덤덤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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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끝나지 않은 가습기살균제 사태… “환절기가 되면 외출을 못해요” 유가족은 덤덤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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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가습기살균제 사태… “환절기가 되면 외출을 못해요” 유가족은 덤덤하게 말했다

세계일보 2023.10.4 

4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SK 서린빌딩 앞. ‘애경은 유죄’라는 팻말을 든 김태종씨가 다른 한 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유가족인 김태종입니다.”

 

김씨가 말을 이었다. “아내가 2020년 8월10일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투병기간은 13년이고요. 병원 입원은 26번인가…. 기억도 안 납니다. 중환자실에 들어간 지 16번째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씨는 목소리도 떨림없이 덤덤히 본인 가족이 겪은 고통을 설명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4일 서울 종로구 SK본사 앞에서 관계자들에 대한 유죄호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제 환절기입니다. 이때가 되면 피해자들은 외출을 못해요. 외출하려면 목숨을 내놓고 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집회가 있는 걸 알면서도 참석을 못합니다. 그래서 피해자들의 행동이 보잘 것 없이 보일 때가 많습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유가족,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54개 시민단체가 이날 서울 광화문에 모였다. 오는 26일 열리는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이마트 관계자 등 13명에 대한 항소심 결심공판을 앞두고 이들의 유죄를 호소하기 위해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호흡기에 문제가 있어 감기에 취약하다. 일반인에겐 가볍게 2~3일 겪으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갈 병이지만 이들에게는 생사가 달린 질병이다. 환절기에 집 밖에 나서기 어려운 이유다.

 

이날 기자회견엔 피해자인 김경영씨도 참석했다. 감기를 의식한 듯 김씨는 기자회견 참석자 중 유일하게 마스크를 썼다. 김씨는 “지난 주말에도 병원에서 주사를 맞았는데, 이 주사를 맞지 못하면 여러 분 앞에서 말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숨 한 번 제대로 쉴 수 없는 환자”라며 “저만 이런 게 아니라 2009년에 태어난 아이도 (같은 증상을) 동일하게 겪는다”고 호소했다. 이어 그는 “제가 걸어다닐 수 있다고 해서 피해회복이 됐다고 볼 수 있느냐”며 “이제는 법원이 이들의 죄를 받아들여야 할 때”라고 호소했다.

 

가습기살균제 사태는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급성호흡부전 환자가 잇달아 발생했는데 가습기살균제를 자주 사용한 영유아, 임산부, 기저질환자도 폐섬유증을 앓는 것으로 조사되면서 이슈가 됐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4일 서울 종로구 SK본사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가해기업(SK, 애경, 이마트) 유죄호소 캠페인 시작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SK케미칼의 ‘OK·SK 가습기메이트’, 애경산업의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를 판매한 책임으로 법정에 선 홍 전 대표 등은 2021년 1월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옥시싹싹’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옥시 측은 전 대표가 징역 6년형을 확정 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당시 재판부는 이들 가습기살균제의 주성분인 클로로메칠이소치아졸리논(CMIT), 메칠이소치아졸리논(MIT)이 폐질환이나 천식 등을 유발한다는 인과관계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 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CMIT·MIT가 천식을 악화할 수 있는 물질이어야 하고, 가습기 살균제를 통해 CMIT·MIT가 사람의 폐에 도달한다는 것이 확인돼야 한다”며 “모든 연구 결과를 종합해봤을 때 CMIT·MIT가 폐질환 또는 천식을 유발했다고 입증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는 환경부가 CMIT·MIT 함유 제품 이용자들의 피해를 공식 인정해온 것과 상반된다. 당시 재판부는 “모든 시험과 연구 결과를 종합한 환경부의 종합보고서는 인과관계를 증명하지 못한 기존 연구에 대해 추정하거나 의견을 제시하는 일종의 의견서에 그친다”며 “이 같은 추정에 기초해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시민단체 등은 이날 1심 판결을 강력 비판했다. 이들은 “1825명의 사망자를 비롯해 7859명에 이르는 피해자들 앞에서 사법부는 ‘가해자가 없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환경부가 지난달 5일까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건강 피해를 인정한 피해자는 총 5212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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