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가습기 참사 기획 2,3편] 청소년 피해자 1천 명 넘는데…학교 지원은 '57명'
[단독] [가습기 참사 기획 2편] 청소년 피해자 1천 명 넘는데…학교 지원은 '57명'[EBS 뉴스]2023.12.28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더 가혹했던 가습기 살균제 참사, 오늘도 저희가 취재한 단독보도로 뉴스 시작하겠습니다.
생존 피해자 10명 가운데 3명은 10대 이하 연령대에 집중됐고, 그 숫자도 1천 명이 넘는 상황인데요.
한창 공부와 치료를 병행해야 할 이 아이들에 대해 정부가 교육지원 대책을 마련했지만, 실제 제도의 혜택을 본 사례는 5% 정도에 그쳐서, 생색내기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진태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저는 그냥 여중생입니다. 항상 생각하지만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학교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뛰어다녔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 손목에는 아직도 링거 바늘이 들어갔다 나온 자국들이 너무나도 많고 힘든 시기를 겪어왔습니다."
"애초에 (살균제를) 사질 않았더라면 제 인생은 더 행복했을까요? 아니 덜 아팠을까요?"
폐렴에 천식, 중이염과 무월경 그리고 우울증까지.
갓난아기 때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이은 씨(가명)가, 불과 19살 나이에 안고 살아가는 병들입니다.
인터뷰: 박교진 / 가습기 살균제 피해 청소년 아버지
"아기 이제 태어났으니까 좋다고 샀지. 어느 날 갑자기 네가 막 계속 열이 나고 그러니까 애가 몸이 약하게 태어났나 보다 (생각했는데) 세월이 흐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
중학교 과정은 대안학교에서 겨우 마쳤지만, 고등학교는 두 달을 못 버티고 그만뒀습니다.
인터뷰: 이은 (가명) 19세
"고등학교 1학년 수업 내용도 거의 몰랐고 5월에 자퇴를 했으니까 곧 있으면 중간이고, 기말도 있는데 (공부가) 안 될 것 같아서 매주 거의 병원을 가다 보니까 그냥 자퇴를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국내 연구진의 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 아동·청소년의 학업 성취도는 또래보다 유의미하게 낮았습니다.
특히, 언어와 수리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는데, 연구진은 동물실험을 토대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뇌 기능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습니다.
체계적인 치료와 함께 교육적 지원이 절실한 상황.
교육부도 환경부와 함께 4~5년 전부터, 가습기 살균제 피해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치료 때문에 학교를 결석하면 '질병 결석'으로 인정해 주고, 피해 증명서를 내면 추가로 진단서를 낼 필요가 없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얼마나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
EBS 취재진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 학생들의 학사 지원 현황을 언론사 최초로 입수했습니다.
올해 1학기 기준, 가습기 살균제 피해 학생 중 학사 지원을 받은 건 57명뿐이었습니다.
1천 명이 넘는 학령기 생존 피해자 중 단 5%에 불과한 겁니다.
실제 지원을 받은 중학생은 생존 피해자 중 4.9%, 고등학생은 5.6%에 그쳤고, 초등학생 연령대의 생존 피해자 가운데선 학사 지원을 받은 사례가 아예 없었습니다.
천 명이 넘는 피해자 중에 질병 결석을 한 번이라도 인정받은 학생은 55명, 조퇴나 지각을 인정받은 학생은 7명에 그쳤습니다.
치료와 공부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한, 최소한의 행정 지원마저 유명무실한 겁니다.
교육 공백으로 생기는 학습 결손 문제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인터뷰: 강득구 의원 / 더불어민주당
"호흡기 곤란으로 인해서 체육 활동하기도 힘들고 정서적으로도 여러 가지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맞춤형 지원 이런 부분이 거의 없다. 중장기적으로 추적 조사를 해서 아이들이 이걸로 인해서 어떻게 삶의 질이 바뀌게 됐는지 (살펴봐야 한다)."
한국 역학회의 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 노출로 후유증을 입은 청소년들이 따돌림이나 차별을 겪은 경우는 15%, 학교를 제대로 못 다니거나 중단했다는 사례도 7.7%나 됐습니다.
하지만 범정부 차원의 대응 속에서도 교육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학생의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안타까운 건, 지금의 현실을 개선할 대책 마련도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인터뷰: 교육부 관계자
"학교 내에 보건실 이용 등 건강관리 지원이나 다른 학생들로 인한 불필요한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해달라는 형태의 당부 내용을 담아서 (공문으로) 안내가 되어 있는 거죠. 제도적인 측면은 추가적인 (지원) 사항은 저희가 검토한 바는 없습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아이들.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를 극복하고 미래로 가기 위해 최소한의 교육권이 절실하지만,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습니다.
EBS뉴스 진태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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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아 앵커
이 문제 취재한 진태희 기자와 더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진 기자, 그동안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중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떤 지원을 받는지 전혀 확인된 바가 없었죠.
그런데 자료가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요?
진태희 기자
네, 그렇습니다.
모든 결석계는 수기로 작성됩니다.
전국 시도교육청에서, 이 수기로 작성된 결석계를 각 학교에 일일이 확인하도록 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 학생 가운데 질병 결석을 인정받은 상세 현황을 처음으로 찾은 건데요.
이런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기 때문에, 해당 자료를 받은 것도 요청한 지 1달이 넘은 시점이었습니다.
결국엔 이 아이들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겁니다.
서현아 앵커
이들에 대한 학사 지원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습니까.
진태희 기자
피해 학생들이 정부로부터 학사 행정에 대한 지원을 받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인데요.
질병 결석 인정과 함께, 장기간 학교 출석이 어려우면 원격수업이나 대안 학습을, 피해 학생들에게 우선 제공하는 식으로 지원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앞서, 피해 학생들과 학부모가, 잦은 병원 치료와 입·퇴원 때문에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계속해서 문제 제기하자, 이런 지원책을 만든 건데요.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그나마 있는 지원도 체감이 어렵고, 그 지원조차도 충분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취재진과 연락이 닿은 피해 학생 중 한 명은, 잦은 결석으로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고요.
다른 학생은 집에서 원격수업을 듣고 있기는 하지만, 학습에 별다른 도움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전해왔습니다.
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잘 적응하고, 공부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은 사실상 전무한 겁니다.
서현아 앵커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도 적지 않을 걸로 보입니다.
진태희 기자
네, 문제는 학교를 그만둔 가습기 살균제 피해 학생들이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파악이 안되고 있다는 겁니다.
교육부에, 2011학년도 이후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학교를 유예, 면제, 자퇴한 사례가 얼마나 되냐고 물었더니, 단 2건에 불과했습니다.
대전에서 1건, 경남에서 1건 있었다고 집계됐는데요.
교육부는 취재진에, "전국에 학교가 1만 7천 개가 넘는데 계속 파악은 하기 어렵다"며, 이 통계 역시 일부만 파악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설명해왔습니다.
"나이스에 등록된 것 파악한 결과라며, 자기의 피해 사실을 쓰는 아이들이 없을 수도 있다"는 이유에섭니다.
당장 취재진이 만난 고등학생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학교를 도중에 그만뒀지만, 여기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서현아 앵커
이제 곧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13주기를 맞는데, 제대로 된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진태희 기자
전문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밝혀진 2011년부터 지금까지 피해자 구제와 지원을 위해 정부가 취해온 방법은 '입증 후 지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갖고있는 질병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인 게 맞는지 입증하고, 맞으면 지원이 이뤄지는 방식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데만 많게는 수년이 걸립니다.
만났던 취재원들도 피해 신청 후 구제 받기까지 2~3년 정도가 걸렸습니다.
피해 인정을 받기 위한 대기자 역시 굉장히 많은데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자료를 보면, 올해 11월 기준, 판정 대기자나 철회자, 인정받지 못한 경우는 전체 신청자 7천8백여 명 중 2천4백여 명이나 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해자들을 위한 생애주기별 지원과 같은 실질적인 지원 방안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게 현실입니다.
신속한 판정과 적절한 배보상도 물론이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을 덜어줄 실질적인 해결책도 함께 강구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서현아 앵커
그런데 아직까지도 국가와 기업의 책임 문제를 두고 법정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고요?
진태희 기자
네 그렇습니다.
사법적 판단은 매우 더딘 상황인데요.
일부 가습기 살균제 제품에 국가 인증인 KC마크를 부여한 산업부나, 진상 규명과 피해 구제에 미온적이었던 환경부와 질병관리본부 등 여러 정부 기관의 책임이 큰 사건이지만, 아직 국가 책임에 대한 법적 인정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기업의 책임을 묻는 법적 공방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음 달에는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다수 판매했던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신세계이마트 전·현직 임직원들의 항소심 결심 공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앞서 이들 기업들은 MIT와 CMIT 살균제 성분과 폐질환 사이의 인과관계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단 이유로 재작년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한편, PHMG 살균제 성분을 사용한 옥시레킷벤키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제조사들은, 안전성 검토를 미흡하게 하고, 위험성을 알고도 개선하지 않아, 모두 유죄가 최종 선고된 바 있습니다.
서현아 앵커
많은 피해자들이 10대 청소년들에 집중돼 있습니다.
평생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이 아이들에 대해, 실효성 있는 지원책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진태희 기자,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