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칼럼에서 언급하고 있는 학교의 주변 7월30일자 모습입니다. 가림막이 쳐져 있는 곳이 석면철거가 진행중인 재건축 아파트입니다. 학교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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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메르스보다 더한 공포
경향신문 2015년 7월31일자
김희연 경제부 차장
“오늘 학교에 절대 가지 말고, 외출할 때는 마스크 꼭 쓰고. 집에 있을 거면 방문, 베란다, 주방 창문 꼭 닫고 있어야 한다.” “엄마는 보충수업에 가야 하는 거 몰라, 날이 찜통인데 마스크는 또 어떻게 써! 메르스도 끝났는데….” 전화 너머 아이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아이 말마따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도 끝났다. 그런데 더 큰 걱정과 공포심이 인다. 왜일까.
사는 동네가 요즘 시끄럽다. 바로 앞 아파트 단지는 재건축을 위한 철거 준비가 한창이다. 아이가 재학 중인 인근 고등학교는 3면이 둘러싸여 아파트 재건축을 위한 철거 작업이 시작됐거나 예정돼 있다. 3년 내내 공사장 한복판 학교를 다니게 생겼다. 속상하지만 소음과 분진에 시달리는 게 다인 줄 알았다. ‘석면의 존재’를 몰랐을 때다.
지난달 같은 반 엄마들이 만든 ‘반톡방’에 긴급공지가 올랐다. ‘내일 석면 해체에 들어간다는데 사전 공지도 없었고 황당하다. 공사현장에 가보자’는 거였다. 다음날 현장에 간 학부모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재건축 사실은 알았지만 공개 사업설명회조차 없다가 느닷없이 석면 해체 작업에 들어갔고, 당일 알고 간 학부모에게 형식적인 설명을 하는 데 그친 것이다.
핏대를 올리고 고성이 오가고, 민원제기 후에야 ‘방학 시작 이후’로 석면 해체 공사가 미뤄졌다. 똑같은 처지에 놓인 바로 옆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의 재학생 수만 2200여명이다. 이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수업하고 한창 뛰노는 학기 중에 석면 해체를 시작하려고 한 것이다. 아무리 무개념이라도 방학 중이 낫다는 것은 상식인데 이 뻔한 사실을 갖고도 싸워야 하는 게 현실이다. 석면은 해체 시 분쇄돼 공기 중에 날리는(비산) 우려가 있다. 전문가들은 석면 해체 현장 기준 반경 500m 이내를 오염 가능 범위로 본다.
최근 환경보건시민센터가 발표한 ‘석면 문제 조사보고서’는 충격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석면피해구제법이 시행된 2011년부터 2015년 6월까지 국가가 인정한 석면질환자는 총 1673명에 이른다. 악성중피종암(736명), 석면폐암(173명), 석면폐증(762명), 흉막비후(2명) 등이다. 이 중 지난 6월 기준으로 46%에 달하는 772명이 사망했다. 석면 피해의 잠복기는 10~40년으로 뾰족한 치료방법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날카롭게 생긴 입자가 폐에 한번 박히면 영영 빠지지 않고 혈관을 타고 이동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1급 발암물질인 석면은 2009년 사용이 금지됐다. 문제는 이전에 지은 건물들이다. 인구 밀집지역에서 짧은 시간에 재개발이 이뤄지면 고농도의 석면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과 반포동에서는 현재 3곳의 아파트 단지에서 재건축이 진행 중이다. 이들 공사현장 반경 500m 내에 4만가구, 10만명이 살고 있다. 9개의 초·중·고교가 있고 학생 수가 1만명이 넘는다. 재건축 3곳에서 신고한 석면 폐기량만 215t에 달한다.
재개발이 한창 일던 2007~2010년 석면의 심각성이 부각됐다. 2009년엔 서울 왕십리뉴타운 지역의 어린이집 석면 문제를 계기로 국정감사가 벌어지고 서울시는 석면종합관리대책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대책과 제대로 된 운영은 다른 문제다. 대규모 재개발을 허가한 서울시는 물론이고 해당 지자체도 안일하기는 마찬가지다.
석면 공포는 남의 동네 얘기가 아니다. 정부는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명분으로 재건축 연한을 40년에서 30년으로 완화했다. 강남뿐 아니라 성동구, 동대문구 등에서도 재건축이 진행 중이다. 이틀 전 정부는 위험상황이 끝났으니 안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메르스 종식 선언’을 했다.
메르스가 두려웠던 것은 알지 못했던 낯선 질환인 데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르스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위험에 무신경한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