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4] 이마트 가습기 살균제 한 통 때문에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 언론보도
홈 > 정보마당 >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 언론보도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 언론보도

[시사진단 4] 이마트 가습기 살균제 한 통 때문에

관리자 0 5461

[시사진단] 이마트 가습기 살균제 한 통 때문에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8월 30일자 

(최예용, 프란치스코, 환경보건학자)

“우리 박영숙 집사가 이대 목동 중환자실에서 9일째 입원해있는데 위험한 상태입니다. 폐에 이산화탄소가 쌓이지 않고 정상으로 배출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합니다.”

2020년 8월 10일 월요일 오전 5시경 박영숙씨의 남편 김태종씨는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내며 아내의 사정을 알리고 회복을 기원하는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이날 오전 9시 39분에 박씨는 끝내 깨어나지 못했고, 지인들은 부고 문자를 받아야 했다.

고 박영숙씨는 교회 성가대원으로 활동할 정도로 건강했고 폐활량이 좋았다. 그러나 2007년 이마트 김포공항점에서 ‘이플러스 가습기 살균제’를 1통 사 사용한 뒤 숨쉬기가 힘들어졌고, 2008년 3월 쓰러졌다. 

박씨가 산 가습기 살균제는 cmit/mit라는 살균 성분을 넣어서 SK케미칼이 만들고 애경이 이마트에 공급한 PB 제품이었다. 집에서도 산소발생기를 착용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진 박씨는 2014년 정부의 1차 조사에서 관련성 낮음을 의미하는 폐 손상 3단계를 판정받았다. 그 당시 박씨의 호흡 능력은 15%로 떨어진 상태였지만 어릴 때 결핵을 앓았던 흔적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와의 관련성이 제대로 판단되지 않았다. 

서울 화곡동 다세대주택 3층에 사는 박영숙씨의 집은 온통 간호를 위한 설비로 가득했다. 박씨가 종일 누워지내는 환자용 침대가 거실에 가로질러 놓였고 두 개의 커다란 산소통과 긴 줄이 바닥에 놓였다. 매일 수십 차례 가래를 뽑아내는 석션 설비는 항상 대기상태다. 수시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야 해서 사설 응급 차량의 경비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남편 김씨는 중고 승합차를 사서 박씨 수송을 위한 응급차로 개조했다. 박씨가 쓰러지면서 부부가 함께 운영하던 학원교재 개발회사는 정리했고 병원 빚이 쌓여갔다. 두 아들도 아빠와 함께 24시간 엄마 간호에 매달렸다. 

2016년 9월 7일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추미애 당 대표가 코에 산소발생기를 착용한 박씨를 찾아왔다. 국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가 진행 중이었고, 우원식 특조위 위원장이 동행했다. 추 대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전적으로 정부 책임이다. 어떻게든 문제를 잘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일 년이 지나 2017년 8월 16일 박씨를 실은 차가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앞에 섰다. 박씨는 들것에 실린 채 강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가했다. 8월 8일 문재인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약속한 피해 대책의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그때 박씨의 상태는 더 나빠져 목을 절개하고 인공호흡기를 꽂은 상태였다. 

2019년 1월 29일 오후 서울대교구 구요비 주교가 화곡동 박씨의 집을 찾아 투병 중인 박씨를 위로하고 병자를 위한 기도를 해주었다. 구 주교는 1980년대 서울 구로동본당 주임 신부로 있을 때 연탄공장으로 인한 주민 진폐증 문제에 관심을 두고 공해추방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환경보건시민센터의 공동대표로서 석면, 가습기 살균제 등 환경피해자들을 위한 활동에도 같이 했다. 

2019년 8월 27일, 서울시청 강당에서 열린 사회적참사특조위 청문회장에 박씨가 들것에 실린 채 참가해 온몸으로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증언했다. 그 후 다시 일 년이 지난 올해 8월 10일 제대로 된 피해 대책과 진상 규명의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이마트 가습기 살균제 한 통이 망가뜨린 박씨의 폐가 13년의 고통 끝에 마지막 숨을 뱉어내지 못했다.  


04faf7cf06873448a96680e703b08771_1600072270_1136.jpg
 

0 Comments
시민환경보건센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