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취재후] “벌써 11년, 우리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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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취재후] “벌써 11년, 우리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관리자 0 1507
[취재후] “벌써 11년, 우리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KBS 2022.4.2 

벌써 11년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유가족은 오늘도 거리로 나섭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자식이 죽었지만, 아직, 가해자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도 거리에서 눈물로 호소합니다.

'살인기업은 합당한 배상 하라! 살인기업을 처벌하라!'

지난달 28일,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가 최종 조정안을 내놨습니다.

조정대상자는 7,027명. 피해 생존자는 '초고도 피해자'에서 '등급외 피해자'까지 6단계로 나누고, 연령에 따라 지원금을 받도록 했습니다. 사망한 경우 피해자의 사망 당시 나이에 따라 지원금을 차등해서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10월 이후 거의 반년간 협의 끝에 만들어진 최종 조정안입니다. 사회적 참사에 대한 민간 기업과 피해자들 사이의 첫 사적 합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닙니다. 이번 최종 조정안은 기업이 가해를 인정해서 지급하는 배상이나 보상의 개념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피해자 구제를 위한 지원금입니다.

그런데 이 지원금 지급도 가능할지 우려스러운 상황입니다.  

[연관 기사] 참사 11년 만에 나온 ‘가습기살균제’ 조정안…진통 예상 (KBS 뉴스9 2022. 3. 29)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27100

■ 최종 조정안, 지원금 지급까지 '산 넘어 산'

지원금 지급까지 크게 2개의 절차가 남아있습니다.

우선, 조정위에서 만든 최종안에 대해 가습기살균제 관련 기업 9곳 모두와 피해자 단체의 절반 이상 동의해야 조정이 성립됩니다.

조정이 성립되면 3개월 동안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7천여 명에게 조정안을 동의하는지 묻고, 여기서 절반 이상 동의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당장 문제가 생겼습니다. 최종 조정안에 대해 기업들의 동의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조정위원회 사무국은 9개 기업에 3월 31일까지 최종 조정안에 동의하는지 답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기업들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공개적으로 최종 조정안을 수용하겠다고 발표한 곳은 SK케미칼 한 곳입니다.

비단 기업뿐이 아닙니다. 피해자 단체 간에도 최종 조정안을 두고 입장이 갈리고 있습니다.

송기진 '가습기살균제 합의를 위한 피해자 단체' 실무 대표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단체 연합인 '가피단(가습기살균제 합의를 위한 피해자 단체)' 내부에서도 의견이 다르다"고 밝혔습니다.

약 30개로 추산되는 피해자 단체마다 입장이 다른 상황입니다. 때문에 조정안을 받아들이고 전체 피해자들에게 동의를 묻는 절차부터 진통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조정위원회 사무국 관계자는 일정을 묻는 취재진에게 "다음 주 초까지 기업과 피해자 단체 수용 여부를 정리하겠다"고 전했습니다.

■ '지원금 9,240억', 과연 합당한 액수일까?

만약 조정안 합의가 되어 피해자 7천여 명에게 지급될 경우, 지원금 전체 규모는 9,240억 원입니다. 지원금 분담금은 기존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에 나온 기업별 분담비율을 적용했습니다.

최종 조정안을 환영한다고 밝힌 SK케미칼은 17%의 비율로 약 1,500억 원을 부담하게 됩니다. 옥시의 경우는 내야 하는 돈이 약 4,80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SK케미칼의 기업공시. 최종 조정안 직후 분담금액 공개SK케미칼의 기업공시. 최종 조정안 직후 분담금액 공개

9,240억 원. 얼핏 커 보이는 돈 같지만 하나하나 따져보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피해자들이 7천 명이 넘으니까 단순 계산만으로 피해자 한 명에게 지급되는 지원금은 약 1억 3천만 원 수준입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정부와 기업에서 안심하고 쓰라고 썼을 뿐인데, 누구는 가족이 죽고, 누구는 평생 피해를 보게 됐다. 10년이 지났는데 물가 등을 고려하면 '평균이 1억 원이 말이 되느냐'라고 말하는 피해자분들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누군가는 가족을 잃었고, 또 누군가는 평생 장치에 의존해 숨을 쉬어야 합니다. 과연 1억 3천만 원이 이들의 피해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금액일까요? 또 제품의 원료를 만들고, 또 판매한 기업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액수일까요?

■ 참사 인정 11년…"고통은 아직 진행형입니다"

더 큰 문제는 유가족과 피해 생존자들입니다. 이들 사이에도 의견이 갈리고 있습니다. 지원금 액수가 터무니없다며 거부한다는 입장도 있고, 부족한 건 맞지만 현실적으로 이 이상 나오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 생존자와 유족들은 더는 버틸 힘이 많지 않습니다. 고통은 11년 내내 그대로인데, 바뀐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왼쪽 : 송기진 ‘가습기살균제 합의를 위한 피해자 단체’ 실무 대표 / 오른쪽 : 김태종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배상조정위원회 대표)(왼쪽 : 송기진 ‘가습기살균제 합의를 위한 피해자 단체’ 실무 대표 / 오른쪽 : 김태종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배상조정위원회 대표)

송기진 / '가습기살균제 합의를 위한 피해자 단체' 실무 대표
"지치신 분들이 많아요. 가습기살균제 조정에 대해 진행 상황을 모르는 분들도 많아요. 지켜보는 분들도 많고요. 이젠 끝내고 싶은 분들도 많은 게 사실이기도 합니다."

김태종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배상조정위원회 대표
"제가 피해자 400명 이상을 만나봤어요. 이번 조정안에 대해 동의 여부 물으면 무난하게 50% 이상 동의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11년째 사람들이 너무 지쳤어요. 기억하기도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요."

때문에 이번 최종 조정안 지원금 외에 기업이 추가로 기부금을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조차도 녹록지 않습니다.  

조정위원회 사무국 관계자는 "지원금을 증액하거나 기부금 등을 하려면 별도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기업들이 현재 조정안도 수용하기가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는 입장입니다.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부터 제품 판매가 이뤄졌습니다. 2011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사회적 참사로 확인되기까지 18년 동안 합법적으로 팔린 제품입니다. 그러다 사람들이 죽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돌이킬 수 없는 질병을 얻었습니다. 말 그대로 '사회적 참사'였습니다.

그리고 11년이 지났습니다. 기업은 아직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숱한 고발과 수사, 소송도 아직 진행 중입니다. 기업에 따라 유·무죄가 엇갈리면서 법적인 배상·보상이 아닌 사적 합의에 따른 조정위원회의 조정안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조정안을 두고 진통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언제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유족이 더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거리로 나오지 않아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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