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 "삶이 지옥" 고통 속에 사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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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 "삶이 지옥" 고통 속에 사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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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연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삶이 지옥" 고통 속에 사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2023.10.18 경남도민일보 

사회 문제된 지 12년 넘었지만  
피해 구제 수년째 '공회전' 거듭

경남 피해자 구제율 68% 불과 
"사는 게 고통...너무 괴롭다"

사건 해결 난항 속 26일 공판
항소심 선고 12월께 나올 듯


좀처럼 기침을 참지 못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김순옥(67·창원시 의창구) 씨는 대화 중간 중간 잔기침을 터뜨렸다. 꾹꾹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긴 대화는 어려워 보였다. 김 씨가 차오르는 숨을 고르더니 글썽이며 말했다.

“폐가 녹아내려서 사는 게 고통스러워요.”

그가 피해 사실을 털어놓은 곳은 경남지역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모임. 김 씨는 17일 오후 5시 창원시 의창구 경남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열린 이 자리에서 건강 악화 이유로 살균제를 지목했다. 구체적으로 옥시 제품을 꼽았다. 그가 관련 제품을 쓴 기간은 어림잡아 3~5년이다.


김순옥 씨가 17일 오후 5시 창원시 의창구 경남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모임에서 한 손에 휴지를 들고 울먹이고 있다. 그는 "몸이 아프고, 너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면서 "삶이 지옥 같다"고 말했다. /최석환 기자 

김 씨는 어느 날부터 소화가 되지 않더니 나중에는 결핵이나 폐렴으로 오인할 정도로 기침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여러 차례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지만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도 마찬가지였다. 이렇다 할 병명을 진단한 병원은 한 곳도 없었다.

“아픈 이유도 모른 채 수년을 보냈어요.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파악했을 때는 이미 몸이 상할 대로 상한 뒤였어요. 이전에 검사받았던 병원에서는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의사가 제 어깨를 다독이면서 미안하다더군요. 그때 기억이 지금도 또렷해요.”


김순옥 씨가 17일 오후 5시 창원시 의창구 경남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모임에서 발언하고 있다. /최석환 기자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김 씨 남편, 딸, 아들까지 모두 겪었다. 기침은 기본이고 작은 활동에도 숨이 차오르는 증상이 나타났다. 심지어 아들(42)은 장기 곳곳에 물혹도 생겼다. 혹이 신경을 눌러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진통제와 수면제를 장기간 처방받았는데 내성이 생겨 약이 잘 듣지 않는다. 수면제를 먹어도 3시간이면 잠에서 깬다.

딸(44)은 피부병을 앓고 있다. 여드름처럼 볼록하게 솟은 염증이 주로 하체에 20~30개씩 올라온다. 약을 먹더라도 호전되는 건 잠시뿐이다. 가라앉았다가 다시 생기기를 반복한다. 흉이 심해 마음고생도 심하다. 호흡 문제에다 피부병까지 겹쳐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

“가습기살균제가 인체에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몰라요. 가족들이 다 아파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저는 겉으로 멀쩡해 보일지 모르지만 제대로 걷지도 못해요. 너무 괴로워요. 5년 전쯤부터는 바깥에 잘 나가지도 못해요. 대인기피증이 생겨서 집에서만 생활하는 중이에요. 동네 사람들이 저를 이상하게 쳐다봐요. 장애인 진단도 받지 못하고 있어요. 삶이 지옥 같아요.”


17일 오후 5시 창원시 의창구 경남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모임이 열리고 있다. /최석환 기자

김 씨처럼 가습기살균제로 고통을 호소한 이들은 지난 7월 말 기준 경남에만 320명으로 확인된다.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과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지난 17일 발표한 ‘경남지역 가습기살균제 피해실태’ 자료를 보면 피해신고자 320명 가운데 사망자는 75명, 생존환자는 245명이다.

도내 지자체별 피해 현황을 보면 창원시가 101명으로 가장 많다. 그다음은 김해시(64명), 양산시(47명), 진주시(27명), 거제시(25명) 순이다. 통영시·함안군(각 10명), 밀양시(8명), 의령군·창녕군(6명) 등도 뒤를 잇고 있다.

신고자 중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에 근거해 구제 대상이 된 사람은 218명뿐이다. 전체 신고자 대비 68%에 불과하다. 피해구제 인정자 중 사망자는 52명, 생존환자는 166명이다.


17일 오후 5시 창원시 의창구 경남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모임이 열리고 있다. 이날 모임에서는 피해자들을 조명한 다큐 상영회도 진행됐다. 참석자들이 영화를 시청하고 있다. /최석환 기자

이렇듯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사회적으로 불거진 지 12년이 넘었지만 해결은 여전히 더디다. 이런 가운데 자신이 피해자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이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피해자 모임을 찾은 모은주(43·양산시) 씨는 “2020년쯤 뒤늦게 가습기살균제로 우리 가족이 피해를 봤다는 걸 알게 됐다”며 “2007~2011년까지 약 4년 동안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그동안 감기나 폐렴으로 착각하고 지내다가 폐암 수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가족 역시 건강이 좋지 않다고 털어놨다. 모 씨는 “딸이 부정맥, 뇌전증 등을 진단받았고, 아들은 피부병을 앓고 있다”며 “옥시 제품을 사서 24시간 내내 부지런하게 사용했던 게 너무 후회된다”라고 말했다.

호스를 끼고 생활 중인 서영철(66·대구시) 씨는 “피해를 인정받고 당연히 보상받지 않았나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살균제 피해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갈수록 몸이 나빠지고 고통이 크다 보니 차라리 죽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잦다”며 “이게 우리 피해자들이 겪는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17일 오후 5시 창원시 의창구 경남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모임이 열리고 있다. 이 행사는 환경보건시민센터와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이 공동 주최했다. /최석환 기자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은 오는 2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결심 공판을 앞두고 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받는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등 임직원 10여 명에게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단체는 유죄 판결을 내려달라는 영상물을 찍어 공판 전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피해자 모임을 마련한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안방의 세월호’라고 불릴 만큼 피해자 규모가 상당하다”면서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자신이 가습기살균제로 피해를 봤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계속해서 피해자들을 찾아야 한다. 살균제를 쓴 적이 있다면 꼭 신고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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