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기름 뒤집어쓴 뿔논병아리... 16년 전 한국의 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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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름 뒤집어쓴 뿔논병아리... 16년 전 한국의 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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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진보기2007년 12월8일자 미국 지역신문
▲  2007년 12월8일자 미국 지역신문 '애리조나 데일리 스타'에 실린 한국 태안기름유출사고 '삼성중공업에 의한 허베이 스피리트 유조선 기름유출참사'에 대한 신문스크랩. 기름을 뒤집어쓰고 죽은 청둥오리 사체를 들고 있는 이가 필자다.
ⓒ 최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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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인 2020년 3월 어느 날, 미국 애리조나에 사는 지인 짐 월시(Jim Walsh)가 위의 사진을 왓츠앱으로 보내왔습니다. 

짐 월시는 1990년대 십여 년을 한국에서 살았는데 그때 환경운동연합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열심히 했던 환경운동가입니다. 

그는 2005년에 미국으로 돌아갔고 2015년엔가 제가 미국 출장길에 애리조나 투산에 들러 그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2019년경부터 제가 국제연대를 하느라 SNS인 왓츠앱을 사용하면서 짐과 가끔 안부를 교환하는데 한국에서의 활동과 교류하던 사진과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다면서 몇 장을 보내와서 매우 반가웠습니다. 

오늘 2023년 12 월7일은 16년 전 '삼성중공업에 의한 허베이 스피리트 유조선 태안기름유출참사'가 발생한 날입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이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고 기억해도 '백만 명 넘는 자원봉사자가 방제에 참여한 일' 정도로 기억되죠. 

저는 1984년 12월3일 보팔참사, 1986년 4월26일 체르노빌 핵참사, 2011년 3월11일 후쿠시마 핵참사, 2011년 8월31일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처음 알려진 날 등 몇 개의 세계적 환경참사가 발생한 날을 제 캘린더에 메모하고 매년 그날에 사건을 떠올립니다. 

이 사진기사는 'OIL SPILL DIRTIES S. KOREA AREA'라는 제목에 "A South Korean environmentalist carries a mallard duck covered in fuel oil from a tanker's spill. Thick, smelly crude oil washed up on an 11-mile stretch of coastline near Mallipo on Saturday, blackening seagulls and threatening fish farms as the Coast Guard fought to contain the spill.(기름유출사고 한국지역을 더럽히다: 한 한국 환경운동가가 유조선에서 흘러나온 기름을 뒤집어쓴 청둥오리를 옮기고 있다. 토요일 한국의 만리포 해안 11마일을 두텁고 악취 심한 원유가 뒤덮었고, 기름유출사고를 방제하기 위해 해경이 애를 쓰고 있지만 바다새들이 검은 기름 속에 죽어가고 양식장이 크게 위협받는 상황이다)"라는 사진 설명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Korean Federation for Environmental Movement (환경운동연합)가 사진을 제공했다고 출처를 밝히고 있습니다. ARIZONA DAILY STAR라는 미국의 지역신문 2007년 12월9일 자 A23면 오른쪽 위에 실렸습니다.

미국 애리조나 투산에 사는 짐 월시는 당시 이 기사를 보고, 한국 소식인 데다 사진 속 사람이 잘 아는 사람이어서 스크랩해서 보관했다고 합니다.    

뿔논병아리를 살리지 못했다   
 

큰사진보기2007년 12월8일자 신문에 실린 사진기사로,
▲  2007년 12월8일자 신문에 실린 사진기사로, '삼성중공업에 의한 허베이 스피리트 유조선 태안기름유출참사'를 상징하는 사진. 당시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소속의 최예용이 사건발생 당일인 12월7일 오후 태안 신두리 바닷가에서 찍었다.
ⓒ 최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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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사진은 2007년 12월8일, 그러니까 기름유출사고 다음날 거의 모든 조간신문에 실렸던 사진기사입니다. 참사 이후로 '삼성중공업에 의한 허베이 스피리트 유조선 태안 유류오염사고'를 상징하는 사진이 되었고 요즘도 가끔 이 사진을 사용하겠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이 사진 속의 저 가여운 새는 '뿔논병아리'라는 이름의 철새 겸 텃새입니다. 사건 당일 저는 함께 일하던 복진오 감독(현 복미디어 대표)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대뜸 "태안에서 큰 사건이 터졌대요. 서산까지 기름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서둘러서 현장에 갑시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열 일 제치고 카메라 가방을 채어 복 감독 차에 올랐습니다. 서산에 도착해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김신환 의장을 만나 태안 사고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김신환 의장은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입니다. 

만리포에 벌써 기름 덩어리가 닥치고 있었고, 우리는 모래사구로 생태보호구역인 신두리로 갔습니다. 이미 기름에 뒤덮인 신두리는 검은 바다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다가 백사장 위에 뭔가 작은 물체가 보여 다가갔는데 처음엔 작은 돌덩어리로 생각했습니다. 

김신환 의장이 "새다! 새야! 살아있을지 모르니 부리를 잡아 올려봐"라고 소리쳤습니다. 

들고 있던 카메라를 복 감독에게 맡기고 제가 맨손으로 부리를 잡아 올렸습니다. 그때 뿔논병아리가 눈을 껌뻑하며 떴습니다. 

살아 있었습니다. 

원유를 뒤집어써 온통 검은색이었던 새 눈의 흰자가 아니었다면 살아 있다는 걸 모를 뻔했습니다. 기름이 흘러내리는 새를 제 자리에 가만히 내려놓았습니다. 카메라를 받아서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는데 나중에 사진을 보니 손으로 잡은 부리만 기름기가 조금 덜어지고 몸통이 모두 새까맸습니다. 

신두리 검은 바닷가에서 이 뿔논병아리를 만나고 나서 앞서 미국 신문에서 소개한 청둥오리 사체를 만났습니다. 

그날 밤, 사고 현장 가까이 마련된 숙소에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모였고 사고지역 전역에서 기름 묻은 새들이 많다는 소식에 일단 이들을 구조하는 일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주방세제로 기름을 닦아내고 헤어드라이어로 말린 다음 식용유를 발라서 새의 깃털 기능을 회복시키는 조치를 한 후, 물과 음식을 주고 지켜보는 방법이 있다고 김신환 의장이 제안했습니다. 

구조 준비를 하다가 문득, '아차, 아까 그 뿔논병아리도 이렇게 살릴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서 부랴부랴 다시 신두리로 갔습니다. 밤중이라 플래시를 켜고 그 뿔논병아리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김신환 의장이 인근의 동물이 채갔거나, 삼성중공업 사람들이 수거해갔을 거라고 추측했습니다. 이후 우리는 몇 달 동안 기름 묻은 새들 백 여 마리를 구조했습니다. 일부는 죽었고 일부는 살아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뿔논병아리의 자연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모릅니다. 그날 그 뿔논병아리가 살았을 거라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났더라도 몇 시간 아니 며칠을 더 살 수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큰사진보기사진, 짐월시(오른쪽 아이 안은 이)가 환경운동연합의 전문기관인 시민환경연구소 활동가들과 전북 부안 선운사를 방문해 찍은 기념사진, 사진 왼쪽이 필자다
▲  사진, 짐월시(오른쪽 아이 안은 이)가 환경운동연합의 전문기관인 시민환경연구소 활동가들과 전북 부안 선운사를 방문해 찍은 기념사진, 사진 왼쪽이 필자다
ⓒ 최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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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이래 최악의 기름유출사건', '최악의 환경참사' 등으로 불린 '삼성중공업에 의한 허베이 스피리트 유조선 태안기름유출참사'를 잠시 기억하고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기름 방제하러 태안에 갔었던 일을 떠올려봅니다.

나아가 16년이 지난 지금은 이런류의 기름유출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단단한 재발 방지 조치가 되어있는지 궁금합니다. 365일 매일은 아니어도 12월7일 하루는 우리나라의 기름유출사고 방지 체계를 점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과 사진을 올립니다. 

뿔논병아리야, 청둥오리야 잘 살고들 있지? 

2007년 12월7일 발생한 '삼성중공업에 의한 허베이 스피리트 유조선 기름유출참사' 16주기의 날에 씀.

덧붙이는 글 | 최예용씨는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및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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