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안희정의 ‘정의’, ‘석면’ 앞에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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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안희정의 ‘정의’, ‘석면’ 앞에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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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4.09.09


도지사가 실천 없는 ‘사회적 정의’ 외치는 동안
석면폐증 진단 받은 주민은 쓰러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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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8일 충남 청양군 비봉면 강정리의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장에 쌓인 폐기물 더미. 폐기물 매립이 금지됐지만 이날도 대형 화물차가 폐기물을 부려놓고 갔다.

 

[현장에서]

“충남의 3500여명 공직자들이 도민을 위해 효과적이고 능동적으로 일하는 조직으로 훈련시키는 것이 도지사로서 기본 임무라고 생각한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2011년 6월 도지사 취임 1년을 맞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행정혁신은 이후 그가 3농혁신과 더불어 줄기차게 강조해온 도정의 핵심 목표다.

4년이 지난 그의 행정혁신이 심각한 시험대에 올랐다. 10년 넘게 석면광산에서 건설폐기물을 처리하는 공장의 굉음이 멈추지 않는 청양군 비봉면 강정리. 공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오르면, 지금도 거뭇거뭇한 돌들이 바닥에 보인다. 1급 발암물질 석면이 포함돼 있는 사문석들이다. 주변에는 허가받지 않은 불법 일반폐기물이 쌓여 언덕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도 청양군과 충남도가 이를 방관하고 있다는 게 주민들의 한목소리다. 일흔을 넘긴 노인들이 날마다 가파른 언덕에 올라 공장의 불법행위를 감시한 지도 1년이 훌쩍 넘었다. 행정을 혁신하겠다는 안 지사의 공언은, 적어도 강정리 주민들에게는 번드레한 말잔치일 뿐이다.

지난달 25일 어렵게 이뤄진 공동토론회가 끝난 뒤 주민·시민단체는 안 지사에게 문제 해결을 위한 민간 특별위원회 구성을 요청했다. 이달 4일에는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충남도청을 찾아가, 법률·석면·환경·폐기물 전문가 등으로 짜인 특위 구성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들은 충남도의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충남도 쪽은 ‘도지사의 결재를 받지 못했다’며 시간을 더 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선거운동 때도 강정리를 외면했던 이석화 청양군수는 여론에 밀려 한가위를 앞두고 마을을 찾았지만, 책임 있는 약속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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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지방선거에서 재선한 뒤 안 지사는 사회적 정의론을 꺼내들었다. 그는 “정의란 ‘억울함이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을 햇살이 제아무리 좋아도 강정리 주민들은 마당에 빨래를 널지 못한다. 먼지가 수북이 쌓이는 게 예사인데다, 먼지에 섞여 바람에 날리는 석면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두달 넘게 주민들은 충남도청·청양군청 앞에서 상복을 입은 채 1인시위도 하고 있다. 석면광산 폐기물처리장이 그들의 생명을 날마다 갉아먹는데, 정작 행정기관은 해결할 의지가 없다. 도지사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사회적 정의를 부르짖는 동안, 석면폐증 2급 진단을 받은 이기태(80) 할아버지의 눈은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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