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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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피해

관리자 0 7170

이 글은 2014년 9월1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 신문에 실린 글은 10매로 줄인 것입니다. 기사스크랩 아래에 원래 16매 분량의 원고를 붙입니다. 참고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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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일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알려진 지 3년째 되는 날이었다. 3년전 원인을 알 수 없는 급성폐질환으로 산모 10여명이 죽거나 사경을 헤매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병원 의사들과 환자 가족들이 정부에 조사를 요구했고 6개월여의 조사 끝에 가습기살균제가 발병원인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흡연에 노출되면 폐암 발병률이 10~20배 높아진다고 한다. 그런데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폐질환 발병이 47배나 높아진다는 게 정부역학조사의 요지였다. 조사에 참여했던 한 예방의학 전공교수는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되면 폐가 굳어지고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명백한 관련성이라고 설명했다.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둘러싸고 지난 3년간 진행된 일들을 돌이켜보면, 현재 진행되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규명과 피해대책의 그것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첫째, 이 두 사건은 아주 친숙한 우리주변의 환경에 의해 무고한 시민이 다수 희생되었다는 데서 비슷하다. 하나는 누구라도 동네 마트에서 사서 쓰는 생활용품이었고 다른 하나는 흔히 이용하는 대중 교통수단이다. 우리사회의 기초적인 안전망에 심각한 구멍이 뚫렸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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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사망자의 규모가 수 백 명 단위로 많다. 지금까지 정부조사에 참여한 가습기살균제 사망자는 130명이고 세월호 침몰에 의한 사망자는 실종자 10명을 포함하여 모두 304명이다. 가습기살균제 사용자가 겨울철마다 800만명이 넘었고 매년 판매된 제품이 20여종에 60만개였다니까 1 8년 동안 얼마나 많은 환자와 사망자가 발생했었는지 어림짐작도 못하겠다. 신고되지 않은 피해가 상당히 더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여기에 1차 사망신고자가 144명이었는데 정부조사에 참여한 수가 102명으로 적어도 수 십 명의 사망사례가 정부를 못 믿겠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도 아닌데 돈 몇 푼 받겠다고 아픈 기억을 들춰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정부조사를 거부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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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사건이 겉으로는 단순 사고인 것처럼 보였는데 알고 보니 매우 구조적인 데 발생원인이 있다는 점이 유사하다. 세월호 참사는 누구 말마따나 단순한 교통사고인줄 알았는데 관피아, 해피아로 불리는 부패의 고리 속에서 회사는 안전을 무시한 채 선박의 구조를 바꿨고 과적 및 비정규직 선장에 안전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일개 공산품의 제품상의 하자 내지는 소비자 과실인줄 알았는데 살균성분이 호흡기로 들어가는 제품을 만들면서 제조사들은 흡입독성 안전테스트를 전혀 하지 않았고 공산품관리를 책임지는 산업부나 화학물질 안전관리를 맡고 있는 환경부 어느 정부부처에서도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기본적인 안전체계를 갖췄다면 사전에 사고발생을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또 비슷하다.   

넷째, 사건의 발생 과정에서 어떻게 대처했는냐 하는 점에서 매우 비슷하다. 세월호는 갑판에 나와있던 일부 승객만 구조되었고 배 안에 남아 있던 300명이 넘는 승객들을 한 명도 구조해내지 못했다. 선박회사측은 배 밖으로 탈출하라는 유도방송을 하지 않고 제자리에 있으라고 하여 피해를 키웠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경은 모두 구조했다고 허위보고를 하는가 하면, 배 안에 사람이 많이 있는 줄 알면서도 구조에 뛰어들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대기업인 SK케미칼(당시 유공)1994년 제품을 개발하여 시판한 후부터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했지만 오랫동안 알지 못하다가 2006년경에 대학병원 교수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폐질환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학계에 보고했고, 이듬해인가에 이 문제로 질병관리본부의 관계자가 참여한 회의까지 열었지만 역학조사를 하지 않고 지나쳐 버렸다. 전체 피해신고의 절반이상이 2006-2011년에 몰려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료진과 정부당국이 당시 신속히 조치했다면 상당수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2000년대 들면서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기업들이 가습기살균제를 자사PB상품으로 삼아 판매에 나서는 과정에서도 어느 회사도 제품의 흡입독성 안전점검을 해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제조사들의 안전불감증이 세월호 선박회사의 그것과 소름 돋을 정도로 비슷하다.

그나마 2011년 들어 정부가 역학조사를 통해 폐손상 사건의 원인으로 가습기살균제를 지목하고 제품의 사용중단 및 판매금지 조치를 취해 추가적인 피해를 막은 것이 세월호 사건과 다르다면 다른 부분이라고 하겠다.  

다섯째, 사고를 일으킨 기업은 나몰라라 하고 안전관리에 실패한 정부는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모양새가 거의 같다.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관련회사의 책임자는 도피를 일삼다 원인불명으로 사망해 버렸다. 가습기살균제 제조회사들은 사건이 알려진 지 3년이 지나고 있지만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한마디 없다. 적반하장 격으로 정부조사가 잘못되었다며 소송에만 몰두해 있다. 긴 소송과정을 통해서 사건은 대중의 관심에서 잊혀질 것이니 나중에 약간의 벌금을 내면 된다는 상투적인 전략이다.

우왕좌왕하다 세월호 인명구조에 실패해 놓고도 왜 나에게 책임을 묻느냐는 국정최고책임자의 볼멘 표정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조사는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던 보건당국과 이 문제는 환경보건문제가 아니다라고 강변하던 환경당국의 관료들에게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 밖에도 두 사건의 비슷한 점이 더 있다. 세월호 참사는 원인규명을 위해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피해대책을 위해 국회에서 특별법을 제정하기로 하고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여당과 정부의 반대로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거리로 나선 점도 같다. 세월호 참사 유족이 40일 넘게 단식해야 했고 안산에서 팽목항으로 다시 대전으로 그리고 서울로 걷고 또 걸었다.

가습기살균제 유족과 피해자들도 250회 넘게 광화문에서 국회 앞에서 그리고 제조회사 앞에서 일인시위를 이어갔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시민사회가 이들 두 사건 피해자들의 손을 잡아주고 아픔을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좋은 의미에서 의 비슷한 점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얼마 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모임의 총무가 광화문을 찾아 세월호 대책위의 대변인을 만나 손을 꽉 잡고 서로의 아픔을 위로했다고 한다. 어린 자식을 잃은 두 아빠가 손을 잡고 헛웃음을 지어 보였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세월호와 가습기살균제 문제는 사전예방과 사후대책에서 모두 실패한 대한민국 사회안전망 붕괴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희생자를 잊지 않고 이들 참사가 주는 사회적, 정치적 교훈을 뼈저리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입에 담기도 싫지만 유사한 일이 또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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