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떠난아내곁으로 이사한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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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떠난아내곁으로 이사한남편

최예용 0 14692

한겨레신문 인터넷판에 아래 글 전문이 게재됐고, 신문에는 절반정도인 11매로 줄인 글이 실렸습니다. 참고바랍니다.

[왜냐면] 세상 떠난 아내 곁으로 이사한 남편 / 최예용

한겨레신문 2012년 9월4일자

작년 11월 서울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행사장. 그날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왔었다는 건 행사가 끝나고 뒤풀이 장소에서 간단한 상견례를 할 때서야 알았다. 세상 빛을 보지도 못한 채 엄마뱃속에서 스러진 둘째 손주, 그리고 그 손주와 함께 세상을 떠나버린 며느리. 부산에서 온 할아버지의 손에는 채 20대를 벗어나지 않은 젊은 며느리의 영정사진이 들려 있었다. 그 며느리의 이름은 곽현주. 그녀의 영정은 충남 옥천의 한 야산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암자에 모셔졌다.

안성우씨가 옥천으로 이사할 거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행에 옮길지 긴가민가 했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를 홀로된 남자가 시골로 이사하여 키우겠다는 계획이 언뜻 현실적이지 않은 것 같아서다. 피해자들을 가가호호 방문조사하는 동안 센터사무실에 자주 나왔었던 그가 한동안 보이지 않았는데 그 사이 경기도 화성에 있던 아파트를 정리하고 옥천으로 이사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직은 아이를 부산 본가에 맡겨 둔 상태고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을 소개받아 지낸다고 했다. 그가 이사한 곳이 어딘지 어떻게 사는지 위로겸 가보고 싶었다. ‘시골에서 농사지며 살려한다’고 간단히만 말하곤 했던 그다.

대전역에 도착해 충주에서 차를 몰고 내려온 임성호씨를 만나 옥천으로 향했다. 임성호씨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다. 그가 작년 초 쓰러져 병원에 옮겨졌는데 거의 몇 주동안 의식을 잃다가 깨어보니 폐와 심장을 모두 이식한 후였단다. 운전대를 잡고 차를 몰면서 당시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는 임성호씨. 폐이식을 했던 산모환자들이 합병증으로 사망한 경우가 많은데 그는 운전도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부작용이 없는 운이 매우 좋은(?) 경우라고 했다. 그가 지금 숨쉬고 있는 폐와 심장은 당시 충주지역에서 추락사고를 당해 뇌사상태에 빠진 한 남자대학생의 것임을 소문을 통해 알게 되었단다. 일상생활은 큰 지장 없지만 직업을 다시 갖기는 힘들고 감염우려 때문에 생선회와 같은 날음식은 먹지 못하고 술도 전혀 할 수 없단다. 차 뒷자리에 있던 센터동료가 앞자리의 대화를 듣다가, 올해 초 충주로 그의 사례를 조사하러 갔을 때 사고 이전의 사진 속 임성호씨가 지금보다 거의 두 배 가까운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여서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고 말을 건네왔다. 가습기살균제는 그의 인생을 그렇게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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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이 임성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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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군 금산으로 향하는 길은 경부고속도로의 옛길을 넘나들었다. 몇 년 전 직선으로 새롭게 고속도로를 냈고 예전 길은 일부만 지방도로로 이용되고 대부분은 방치되어 검은 아스팔트 곳곳에 풀이 무성히 자라 올랐다. 가을이면 농부들이 곡식을 말리는데 이용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옥천으로 향했다. 집 인근의 식당에서 오기로 한 사람들과 모여 점심을 했다.

대전에서 온 유찬아빠는 막 돌 지난 유찬이를 2007년에 잃었다. 작년 말 방송프로그램 ‘추적60분’에서 “내가 죄인이네!”라며 울던 엄마가 유찬이네다. 건강하던 유찬이가 갑자기 쓰러져 대전을지대병원을 거처 서울대병원에 입원했고 채 몇 달을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유찬이 때문에 다른 식구는 신경을 별로 못썼는데 아이엄마도 폐에 가습기살균제의 영향이 있다고 생각된단다. 유찬이와 방바닥에서 같이 잤고 호흡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2011년 8월31일 거실에 모여 저녁뉴스를 보던 부부는 앵커가 전하는 한 뉴스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얼어붙는 듯한 전율을 느낀다. 유찬이가 세상을 떠난 이유를 뉴스는 말해주고 있었다. “원인미상의 폐질환 산모사망사건의 원인이 가습기살균제다.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결과 이 제품을 사용하지 않은 경우보다 48배나 높은 폐질환이 조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뉴스는 산모들의 사례를 전하고 있었지만 유찬이네도 당시 옥시싹싹이라는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었기 때문에 직감적으로 그것이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으로 사서 쓴 가습기살균제가 유찬이를 죽게 한 원인이라면 내가 죽인 거잖아” 엄마는 절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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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른쪽 아래가 유찬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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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에서는 나래네 가족 셋이 왔다. 나래엄마의 직업이 병원간호가가 아니었다면, 그녀가 나래 아팠을 때 곧바로 직장인 서울대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았다면, 그날 나래는 옥천에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천우신조로 나래를 잃지 않은 나래엄마는 직장에 휴가원을 던지고 1년 넘게 나래를 돌보고 있다. 어느 정도 회복되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6월부터는 매주 한차례씩 광화문에 일인시위하러 나온다. 나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잃은 다른 피해자가족의 처지를 생각하여 나래네 부부는 피해대책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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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우씨의 옥천집 마당에서 아빠와 노는 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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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에 일행은 식당 바로 뒤로 이어지는 산길로 올라갔다. 한 여름, 숲은 우거졌다. 계곡 한 켠을 일군 밭에는 옥수수와 고추가 한창이었다. 곽현주씨를 모신 곳은 정말 작은 암자였다. 흙으로 된 벽에는 꽤 유명하다는 스님의 불상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하는 매우 이색적인 솜씨였다. 암자에 들어서니 두 평이 채 안 되는 방안에 부처님 불상이 모셔져 있다. 안성우씨가 한 켠을 가리킨다. 곽현주씨의 작은 영정이 놓인 곳이다. 올 초 피해사례조사를 시작하면서 들른 안성우씨네 집에서 보았던 현주씨가 옅은 미소를 짓는 바로 그 사진이다. 현주씨의 불상과 나란히 붙은 작은 불상 앞에 첫째 아이의 이름이 놓여있어 의아한 눈으로 성우씨를 보니 살아남은 아이의 건강을 비는 뜻이란다. 성우씨의 첫째도 폐질환이 검진되어 병원에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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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세퓨 피해사망자 곽현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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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여러 차례 성우씨를 만났고 술도 같이 했지만 속내를 잘 보이지 않던 그다. 아내가 사고를 당한 후 직장도 그만둔 성우씨. 앞으로 뭐 할거냐고 물었더니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경비행기 조종사를 해보려는데 학원비가 비싸 돈을 모아야 한다고 했던 그다. 다니던 회사가 자동차 매연가스를 줄여주는 정부의 환경정책을 수행하는데 거의 공짜로 기기를 달아주니 실질적인 정책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세금이 헛 쓰인다던 성우씨.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 한잔 하고 헤어지는 날은 잘 들어갔냐고 문자를 보내곤 했었다.

안성우씨가 거처하는 집 마당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두 그루나 자리 잡고 있었다. 매우 더운 날 이었지만 감나무 그늘 아래는 시원했다. 둘러앉아 캔맥주를 마시다가 나래아빠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곽현주씨를 이런 시골 암자에 모신 이유가 뭐냐고. 현주씨가 사고 당하기 전에 취미를 나누는 모임에 부부가 참가하곤 했는데 그때 지금의 암자 주지스님을 알았단다. 현주씨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 스님이 병문안 방문도 해주셨고 끝내 사망했을 때도 그 스님이 장례를 치러주셨단다. 해서 자연스럽게 이곳 옥천에 모시게 됐고 그 후로도 거의 매주 찾았단다. 스님에게 아예 이곳에 내려와 살겠다고 하니 스님이 마을에 수소문하여 빈집을 소개하여 이사를 했단다. 그간 몇차례 보았던 성우씨의 흔들리는 듯한 눈동자, 조금은 횡설수설하듯 들렸던 그의 조종사 계획, 거듭된 음주운전으로 취소된 그의 운전면허 이야기, 지난달 부산 본가에 맡긴 아들과 놀아주다 발을 헛디뎌 삐었다며 붕대를 감고 나타났던 그의 모습, 임신한 현주씨를 위해 집에서 사용하라고 직접 인터넷 쇼핑을 통해 수입제인 가습기살균제 세퓨를 구입해 주었다던 그의 떨리는 목소리, 사고가 나자 가장 먼저 문을 닫은 세퓨회사를 상대로 소송에서 이겨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건지 모르겠다던 그다. 사람을 만날 때나 술을 마실 때 그리고 집에 있을 때 그의 마음은 언제나 옥천 암자에 둔 그의 아내 현주씨에게 가 있었던 게다. 그런 그의 마음을 누가 알아주랴. 또 그 누가 알 수 있으랴…

한 통에 가격이 3~4천원정도 하고 누구라도 동네 마트에서 쉽게 사서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인 가습기살균제. 1994년 처음 등장하여 TV광고까지 한 적 있고, 2000년 들어 20여가지 제품이 등장하여 겨울철마다 가습기 사용하는 집에서 손쉽게 사용하던 제품. SK, 롯데, GS, 삼성, 이마트 등 유수의 대기업들까지 덤벼들어 한해 60만개의 시장이 확보된 잘 나가던(?) 제품. 질병관리본부 연구자의 설문조사결과를 토대로 추산해보면 어린이와 노약자 그리고 산모가 있는 집의 절반 넘는 곳에서 사용되어 최대 800만명이 사용해온 국민생활용품. 전통적 온돌문화가 단열효과를 극대화한 대한민국 아파트 주택문화와 결합한 한국 특유의 겨울철 가습기문화에 기댄 기생상품. 아무도 관리하지도 통제하지도 않는 무주공산 화학물질생활제품 한국시장에 감기예방이랍시고 툭하면 가습기사용을 권하는 대한민국 의료계가 일조한, 국내는 물론 세계 최초의 바이오사이드(화학물질의 생물체 살상) 사건. 제품마다 ‘친환경’과 ‘안전’을 써 붙여 놓아 ‘설마’하는 의문을 어느 누구도 하지 않았던 물건, 폐로 노출되는 제품특성을 무시한 채 일반적인 피부, 음용테스트만 해놓고도 유럽과 국내 안전테스트를 완비했다고 엄청 떠벌린 제품. 이렇게 하여 어린아이와 산모 그리고 성인까지 무려 52명의 생명을 앗아갔고 100명 넘은 남녀노소 사람들에게 심각한 폐질환을 일으켰다. 현재까지 조사된 피해의 일부가 그렇다는 이야기다.

지구촌 어느 곳에서도 일어난 적 없는 끔찍한 생활용품 화학물질 사망사고가 대한민국에서 발생한지 1년이 지나고 있다. 평소 국민보건을 위한다는 보건복지부도, 화학물질안전관리를 책임진다는 환경부도, 안전한 제품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지식경제부도, 문제해결을 위해 TF를 꾸리겠다던 총리실도 모두모두 피해대책에 대해서 물으면 꿀먹은 벙어리요, 자기네는 무관하다며 딴전을 피운다. 문제의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만들어 팔아온 큰기업이나 작은기업이나 할 것 없이 모두 모르쇠로 일관하더니 일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국내 최고라는 로펌의 변호사를 사서 정부조사마저 잘못됐다고 부정하는 무책임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늘 그랬긴 했지만 정치의 계절을 맞아 ‘꿈이 있는 대한민국’이니 ‘저녁이 있는 삶’이니 하는 대권주자들의 메시지가 여느 때보다 훨씬 공허하게 다가온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용어는 언제적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정부가 나서서 먼저 사건발생을 막지 못한데 대해 사과하고, 해당 기업으로 하여금 사죄와 함께 민형사상 책임을 엄히 묻는 일. 소송결과에 준하는 피해보상을 하기 위해 기업들에게 피해기금을 조성토록 하고 사망자와 환자들을 위로하는 사회적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일. 다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여러 부처에 흩어진 화학물질 안전관리 체계를 하나로 모으고 강화한 화학물질안전청을 신설하는 일. 환경건강피해가 발생하면 우선 보상하고 나중에 책임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게 하는 환경피해보상법을 제정하는 일. 업계의 로비로 누더기가 된 화학물질등록제도를 뜯어고쳐 제대로 만드는 일. 이러한 바람들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은 정말 요원한 일 일까. 현주씨의 명복을 빌고 성우씨를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따듯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 일까.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가습기살균제피해대책시민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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