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가습기살균제와 환경부의 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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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가습기살균제와 환경부의 궤변

최예용 0 5752

[기고]가습기살균제와 환경부의 궤변

 

경향신문 2016 4 22  

 

“저…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받는 곳인가요?” 

 

 

“제 처가 작년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아직도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가습기살균제 기사를 보고 생각해보니 저희도 그걸 많이 썼어요. 지금도 신고를 받나요?” 

 

                

며칠 전 일산에 사는 40대 중반의 남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부인이 2011년에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작년 9월에 사망했는데 2000년경부터 근처 롯데마트 등에서 구입한 옥시싹싹 가습기살균제를 5~6년가량 사용했단다. 아이가 어릴 때 아토피가 심해서 밤낮으로 가습기를 사용했는데 학교 갈 나이가 되면서 좀 나아져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사망한 부인의 폐CT 사진을 갖고 방문해달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자마자 걸려온 다른 전화는 여수의 40대 남성이었다. 이 분의 부인도 폐암사망 사례였다. 2013년 진단받고 작년에 세상을 떠났단다. 정확히 기억을 못하는데 2005년경부터 초음파가습기를 사용했고 롯데마트 여천점에서 본인과 부인이 함께 옥시싹싹 가습기살균제를 구입했었단다. 

 

거의 같은 내용의 2통의 전화를 연이어 받은 날은 롯데마트 사장이 공식 사과하는 날이었다. 피해자 대표들과 현장에 갔는데 수십대의 비디오카메라에 100명은 족히 넘을 카메라기자와 노트북 앞에 앉은 기자들로 북적였다. 그들이 쏟아낸 기사는 그야말로 홍수였는데 부인을 잃고 황망한 상태였을 두 남편도 그 기사를 보았고 ‘아 우리도 롯데마트에서 가습기살균제를 사다 썼잖아’하는 생각을 하고 고민 끝에 신고전화를 해온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에 대한 1차 조사와 판정을 맡은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2014년 12월 내놓은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사건백서(사건인지부터 피해 1차 판정까지)’ 자료에서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폐와 다른 장기에서 암 등 다른 질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호흡곤란으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아무런 의학적 처치도 소용없이 나빠지다 세상을 떠나는 몇 주 또는 몇 개월만의 급성 또는 아급성 피해가 그간 알려진 상당수 가습기살균제 사망자들의 공통점이었다. 그런데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이후 수년 동안 폐질환으로 고통받다가 또는 특별한 증상 없이 지내다가 폐암과 같은 만성질환이 발병한 경우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4월 초까지 접수된 1528명의 피해신고 사례 중에서도 이미 폐암 발병 사례가 10여건에 이른다. 폐 이외의 장기에 발병한 암도 있다. 

 

당연히 가습기살균제 노출이 원인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간다. 질병관리본부의 백서에서 지적하듯 말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대해 담당부처인 환경부는 아무런 조사도 연구도 하지 않고 있다. 2015년 한 해 동안 접수된 피해신고자 752명 중에서 절반이 넘는 피해자들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이후 천식과 비염이 생겼다고 호소한다. 환경부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관련성을 조사하지 않는다. 현재의 관련성 판정은 폐 손상 여부만 따진다. 가습기살균제가 호흡기로 노출돼 폐에 도달하는 경로를 생각해 보면 당연히 비염과 천식과 같은 호흡기계 질환의 발병이 의심된다. 

 

하지만 환경부는 비염이나 천식은 발병원인이 다양한 소위 ‘비특이적 질환’들이기 때문에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한다. 폐암의 경우도 마찬가지 논리로 관련성 여부에 대한 검토 자체를 배제한다.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일 수 있지만 다른 원인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비염과 천식 그리고 폐암을 발생시키는 모든 원인을 알게 된 후에야 가습기살균제가 그중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자세는 이해할 수 없다.

 

환경부의 이러한 궤변은 가습기살균제 제조업체들이 주장하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사실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 사건 초기부터 이상한 태도로 일관했다. 화학물질 안전관리의 실패라는 지적에 질병관리본부가 하는 일을 왜 우리한테 그러냐는 식의 자세로 나왔다. 환경보건법상의 환경성질환으로 다루자는 제안에 그 법은 피해문제와 무관하고 조사연구를 위한 근거법령이라고 우겼다.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다루자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기자들에게 ‘과학적 불가지론’을 들먹였다. 가습기살균제 제조단계에서의 과학 수준으로는 위해성을 알지 못했다는 옥시레킷벤키저 측의 주장을 대한민국 환경부 장관이 대변한 것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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