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상업포경에 제돌이의 운명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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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상업포경에 제돌이의 운명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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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상업 포경에 제돌이의 운명이 달려있다

류종성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위원장, 안양대학교 해양바이오시스템공학과 교수

우리나라 광개토대왕함의 레이더 문제로 일본과의 외교관계가 삐걱거리고 있다. 일본 극우 정서를 대변하는 산케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일본인이 78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두 나라 관계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동안 일본정부의 외교 스타일을 보면 자국민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때로는 강경하게 나가다가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면서 갑자기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 불법어선을 나포해서 선장을 구금했다가 중국의 희토류 수출금지 조치에 화들짝 놀라서 선장을 방면한 적이 있다. 북한 미사일에 대해 극도로 강경한 반응을 보이다가 남북 관계가 화해모드가 되면서 북한과의 협상을 구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고래 문제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일본의 외교 스타일을 잠깐 살펴봤다.

국제포경위원회 탈퇴한 일본 상업포경 재개 선언

일본 정부는 지난해 말 국제포경위원회를 탈퇴하고 올해 7월부터 상업 포경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9월에 열린 국제포경위원회에서 일본이 제안한 상업 포경 재개에 대한 안건이 국제사회의 압도적인 반대로 부결된 지 3개월 만의 일이다. 당시 투표에서 우리나라는 이 안건에 대해 반대표가 아닌 기권표를 던졌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포경에 대해 해양수산부가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일본의 포경 재개 움직임은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고래를 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어차피 포경 국가의 오명을 쓰고 있을 바에야 포경을 허용하여 내부결속을 다지겠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애꿎은 고래의 희생이 늘어날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일본은 노르웨이, 아이슬란드와 더불어 명실상부한 세계 제3대 포경국가이다. 이 세 나라가 포경 금지에 협조하지 않으면 고래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이러한 점에서 국제포경위원회라는 국제적인 틀은 매우 중요하다. 국제포경위원회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1948년에 설립되었다. 당시의 설립목적은 보존을 통해 고래 자원을 적절히 유지하여 포경산업의 순탄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포경 산업의 지속가능한 유지와 발전이 핵심이었던 것이다. 1982년에 상업 포경을 중단하기로 하면서 고래 보호의 기치를 높이 들더니 마침내 작년 브라질에서 열린 회의에서는 고래 보호를 기본 방향으로 규정한 플로리아노폴리스 선언을 회원국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채택하였다(우리나라는 여기에 반대 투표를 했다).

일본은 1988년에 상업 포경을 중단하였고 이후 과학 포경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하여 매년 수백 마리의 고래를 잡아 오고 있다. 2017년 한 해 동안 596마리를 잡았으며 이 중 절반이 넘는 333마리를 남극에서 잡았다. 플로리아노폴리스 선언은 일본의 과도한 과학 포경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포경 산업을 국제 사회에서 퇴출시키겠다는 회원국들의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다. 이에 일본이 반발하여 국제포경위원회를 탈퇴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나라 고래 포획 위험

일본은 국제포경위원회 탈퇴 후 남극해에서는 더 이상 포획을 하지 않고 일본의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 내에서만 고래를 잡겠다고 했다. 국제 사회는 남극 고래 보호의 길이 열렸다며 환영을 하면서도 포경을 규제할 수 있는 국제적인 논의의 기회가 사라질 것에 우려를 표방하고 있다. 남극에 사는 고래는 좋을지 몰라도 일본의 상업 포경 재개는 우리나라 바다에 사는 고래에게는 악몽이 될 것이다.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은 세계에서 6번째로 넓은 면적으로 우리나라의 배타적 경제수역보다 11배가 크다. 우리나라에서 출항한 배는 일본 수역을 거치지 않고는 태평양으로 나갈 수 없다. 우리나라 바다에 살고 있는 고래 역시 마찬가지로 태평양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본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포획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셈이다.

독도 주변과 제주도 남쪽 바다는 한-일 중간수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일본이 이 수역에서 포경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도 있다. 한-일 중간수역이란 1998년 신한일어업협정을 통해 양국의 어선들이 공동으로 조업할 수 있도록 설정한 수역을 말한다. 독도 영유권 문제 때문에 민감한 곳이라서 공동조업에 관한 세부사항은 두 나라 어민들 간의 협상으로 결정하도록 되어 있고 각 나라의 어선은 자기 나라의 법률을 적용받는다. 따라서 일본이 이 수역에서 포경을 하겠다고 주장하고 어민 간 협상을 통해 동의를 얻어내면 우리나라 정부는 이를 단속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한-일 중간수역에서 일본의 포경으로부터 우리나라 고래를 보호할 수 있는 치밀한 전략과 계획이 필요하다.

미국이 해양포유류를 보호하는 방법

고래는 커다란 덩치에 걸맞게 먼 거리를 무리지어 다니면서 새끼를 낳고 먹이활동을 한다. 크기가 작은 돌고래도 수천 킬로미터를 헤엄쳐 다닐 수 있다. 한 예로 미국 연구진이 플로리다 앞바다에서 큰돌고래(bottlenose dolphin)에 위성추적기를 부착해서 방류했는데 놀랍게도 이 돌고래가 47일 만에 4200킬로미터를 이동했다. 이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호주까지 헤엄쳐 간 거리와 맞먹는다.

제주도 해안가를 주무대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남방큰돌고래도 한-일 중간수역이나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백령도를 본거지로 삼고 있는 점박이 물범은 충남 가로림만에서 강화도, 백령도를 거쳐 중국 발해만까지 황해의 절반을 주요 활동무대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는 장거리를 이동하는 해양동물을 법률로 특별히 보호하고 있다. 연어나 뱀장어처럼 바다와 강을 오가며 장거리를 이동하는 동물을 회유성 해양동물이라 부른다. 「해양생태계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6조에는 회유성 해양동물과 해양포유동물을 보호하는 규정이 담겨 있으며 35종의 고래를 해양포유동물로 지정하여 포경을 금지하고 있다. 일본의 상업 포경이 재개된다면 우리가 보호하고 있는 고래가 자칫 사라질 수도 있다.

일본이 국제포경위원회를 탈퇴한 사건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바라볼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 바다에 살고 있는 고래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다. 제주도에 방류한 제돌이, 춘삼이 등 남방큰돌고래가 일본 해역으로 넘어가게 되면 살육될 가능성도 있다. 과연 우리는 이 사건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며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미국의 해양포유류보호법은 해양포유류를 포획하는 것을 물론이고 귀찮게 하는 행동(영어로 ‘teasing’이라 표현)까지도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멸종위기종법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환경을 보호하는 법 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다(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 미국의 해안가를 거닐다가 물개나 바다사자를 봤을 때 소리를 지르거나 돌을 던져서는 절대 안 된다. 어느 순간 감옥에 가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미국은 여기에 더해 2016년에 해양포유류보호법을 개정하여 해양포유류의 사망이나 부상을 야기하는 방법으로 잡은 수산물이나 그 가공품의 수입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수출국들이 이에 대비할 수 있도록 5년 간 유예기간을 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2022년 1월 1일부터는 해양포유류 안전기준을 통과한 수산물과 가공품만을 미국으로 수출할 수 있게 된다.

이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수산물과 수산가공식품의 미국 수출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예를 들어 굴 양식장 시설은 돌고래의 부상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굴을 미국으로 수출할 수 없게 된다. 해양포유류의 사망이나 부상을 유발할 수 있는 자망(물고기가 지나는 길목에 일자로 쳐놓고 아가미가 걸리게 해서 잡는 그물)을 사용해서 잡은 물고기는 미국 수출이 원천적으로 금지될 것이다. 이 물고기를 원료로 써서 만든 어묵과 그 어묵이 들어간 식품 모두 미국으로 수출길이 막히게 된다. 만약 김 양식장 시설이 해양포유류 안전 인증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작년에 천억 원을 넘게 수출한 미국 김 시장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한 마리에 4000만 원을 넘는다는 밍크고래가 그물에 혼획되는 것이 지금까지는 로또 당첨이었다. 2022년 1월 1일 이후에 고래가 그물에 걸려서 죽는 것이 수산물의 미국 수출을 막는 재앙으로 돌아올 것이다.

고래보호를 위해 우리가 할 일

일본이 포경을 재개한다면 우리나라는 더욱 강력한 고래보호를 통해서 일본의 포경 산업을 압박하면 어떨까?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오랜 기간 동안 높은 강도로 환경보호를 실천해온 나라는 주변 국가들에게 그 수준에 맞는 보호 행위를 요구할 수 있다.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환경을 개발하는 것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생각이 대부분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바다에서 일어나는 모든 환경 문제는 고래에게로 연결된다. 고래가 안심하고 살 수 있어야 우리에게도 안전한 바다가 된다. 한강에 돌고래가 올라오려면 신곡수중보를 허물어야 하고, 한강 둔치를 습지로 만들어야 한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하수종말처리장에서 밤에 몰래 한강으로 폐수를 버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울산 장생포 앞바다는 천연기념물 제126호로 지정되어 있다. 1962년에 울산 귀신고래 회유해면으로 지정된 후 1977년을 마지막으로 귀신고래가 발견되지 않는다. 천연기념물이 팥소가 없는 찐빵(일본말을 쓰기가 좀 그렇다)이 된 지 어언 40년이 넘은 셈이다. 울산 앞바다에 귀신고래가 다시 나타나 고래 관광의 명물로 거듭나고 진정한 천연기념물로 인정받으려면 불법 포경을 완전히 단속하고 고래고기의 판매와 유통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면 된다.

우리는 일본의 상업 포경 재개를 막을 힘도 명분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높은 수준의 고래 보호를 통해 상업 포경에 반대할 힘과 명분을 길러야 한다. 우리도 미국처럼 해양포유류보호법을 제정하고 최고 수준의 고래 보호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

일본의 상업 포경 재개가 정치외교적 쇼맨십에 그치기를 바란다. 일본은 하루 속히 국제포경위원회로 돌아오라. 

 

환경운동연합 함께사는길 201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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