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과 건강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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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과 건강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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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꼭 50년 전인 1964 1 11일 이른바 <테리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정식 명칭은 <흡연과 건강. 공중보건국장 자문위원회 보고서>인데 당시 미국 보건·교육·복지부 공중보건국장으로 보고서 작성을 총지휘한 루서 테리의 이름을 따서 ‘테리 보고서’라고 부른다. 이 보고서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기념비적인 공중보건 관련 문서로 인정받고 있다.

흡연의 건강 논란을 결정지은 ‘테리 보고서’

  보고서의 내용은 제목과 같이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즉 해악이다. 테리 보고서가 흡연에 관한 최초의 보고서는 아니다. 이미 20세기 초반부터 역학 연구와 병리학 연구를 통해 흡연의 폐해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1957년에는 당시 공중보건국장 르로이 버니가 흡연과 폐암이 상관관계가 있다고 천명하기도 했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반대는 짐작하듯이 대개 담배 회사 측으로부터 나왔다. 담배회사의 연구비 지원을 받는 학자들이 흡연의 폐해가 확실치 않다는 논문을 꾸준히 발표한 것이다.

  논란이 지속되자 당시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테리 국장에게 흡연과 건강 사이의 관련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해줄 것을 요청했다. 즉시 구성된 자문위원회는 1962 11월부터 1년 남짓 7천여 편의 관련 논문과 자료들을 세밀히 검토하여 1964 1 11일 보고서를 발표했다. 386쪽으로 구성된 보고서의 골자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흡연자의 사망률은 비흡연자에 비해 70퍼센트 더 높다.
 
둘째, 흡연과 폐암의 상관관계는 다른 어떤 요인들보다 높다
.
 
셋째, 흡연과 만성 기관지염, 폐기종, 심장병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

  보고서 내용 중에 완전히 새로운 것은 거의 없었지만, 보고서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 뒤로도 담배회사가 여러 차례 반격을 시도했고, 간혹 애연가들이 흡연권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지난 50년 동안 주로 미국에서 담배와 관련된 중요한 조치들을 들면 다음과 같다.

테리 보고서 이후, 금연 조치 50년사

  1965 : 담배회사는 담뱃갑에 담배가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경고문을 반드시 실어야만 하게 되었고, 문구는 해가 갈수록 점점 강화되었다.
  1971
: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담배 광고가 금지되었다
.
  1972
: 항공기에 금연석이 설치되었다
.
  1987
: 콜로라도 주 아스펜 시는 음식점에서 흡연을 금지했다
.
  1988
: 미국 내 단거리 항공기에서 흡연이 금지되었다
.
  2000
: 국제선 항공기에서 흡연이 전면 금지되었다
.
  2009
: 미국 식품의약청이 담배 산품을 규제하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국보다 짧으면 몇 년, 길면 십여 년 뒤지지만 비슷한 조치가 이어졌다. 고속버스에 금연석이 마련된 것은 1980, 지하철에서 흡연이 전면 금지된 것은 1996년 등이다. 담배와 관련된 풍속도가 얼마 되지 않는 사이에 크게 변한 것이다.

  미국 공중보건국은 며칠 전 테리 보고서 발간 50주년을 맞으면서 내용이 훨씬 강화된 새로운 보고서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50년간의 진보>를 발표했다. 분량도 978페이지로 크게 늘어났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흡연이 폐암 외에도 제2형 당뇨, 류머티즘, 발기 부전, 시력 감퇴, 간암, 직장암, 선천성 입천장 파열 등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천명했다. 그동안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간접적인 표현에서 ‘원인이다’로 바뀐 것이다.

‘건강 담론’은 긍정, “금연 천당 흡연 지옥”은 글쎄

  흡연의 해악은 이제 학술적으로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또한 금연 운동과 조치가 실제 사망률 감소와 건강 증진 효과를 가져온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이미 1990년대부터 폐암 사망률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2003년을 고비로 감소 추세다. 폐암 치료 효율이 높아진 것과 더불어 흡연율이 감소한 덕분이다.

금연 운동이 지난 50년 동안 크게 성공을 거둔 것은 흡연의 해악이 명백히 밝혀진 데에 기인하지만, 그와 더불어 ‘건강 담론’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사람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건강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게 된 것이다. 애연가들이 흡연권을 주장하기 어렵게 된 것도 간접흡연의 폐해를 내세우는 비흡연자들의 목소리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건강 담론’은 물론 긍정적인 측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금연 천당 흡연 지옥”을 외칠 정도로 전체주의적인 모습을 띠어도 과연 괜찮은 것인지?

글쓴이 황상익

· 한국근현대의학사(전공)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국제고려학회 부회장 겸 서울지회 회장

· 저서 및 번역서
《근대의료의 풍경》 푸른역사, 2013
《황우석 사태와 한국사회》(공저) 나남출판사
, 2006
 
헨리 지거리스트 저,《문병과 질병》한길사
, 2008
 
이언 도슨 저,《처음 읽는 이야기 의학사》아이세움, 2008

위 글은 다산연구소가 발간한 소식지 160호에서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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