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전관' 동원해 주심 위원과 '부적절한 만남'
2019.06.12 경향신문
기업들이 공정거래위원회 출신 ‘전관’들을 동원해 SK케미칼과 애경의 ‘가습기메이트’ 사건 조사 로비를 벌인 정황이 확인됐다.
11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SK케미칼과 애경은 2016년 8월 ‘가습기메이트’ 표시광고법 위반 심의기일을 앞두고 기업 및 로펌의 공정위 출신 전관을 통해 공정위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작업을 다각도로 진행했다.
‘인체무해 광고’ 심의일까지
애경의 법률대리인 김앤장
직원 등 20명 전방위 로비
2016년 초 애경의 법률대리를 맡은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이 사건이 서울사무소에 접수된 5월 말부터 ‘심의절차 종료’ 합의가 이뤄진 8월 말까지 법률 검토 및 대응에 역량을 집중했다. 김앤장은 8월 한 달 총 20여명을 투입했다. 공정위 팀장급 퇴직자를 포함, 최소 4명의 전관과 변호사들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변호사 자격이 없는 전관들은 한 달 동안 심의 진행 사항을 파악하는 등 공정위 업무에 각각 수십 시간을 쏟았다. 김앤장은 사건을 맡으면서 공정위 주심위원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SK 측 전관도 두 차례 면담
1주 뒤 석연찮은 심의 종결
같은 기간 SK케미칼 측은 관계사를 통해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관여하는 공정위 직원을 접촉했다. SK하이닉스에 재취업한 공정위 과장 출신 ㄱ씨는 심의 개최 약 한 달 전인 7월15일과 심의 당일인 8월12일 공정위 조사부서인 서울사무소에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국회에 제출된 공정위 재취업자 출입기록에는 ㄱ씨가 주심과 두 차례 면담 자리를 가진 것으로 돼 있다. 공정위 출입기록 업무를 아는 ㄴ씨는 “출입자는 방문 대상을 한 명만 기재하고도 들어갈 수 있다. 실제로 공정위 안에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공정위는 2016년 8월12일 소회의 심의를 진행했다. 이 심의엔 기업 측 대리인도 참석했다. 공정위는 1주일 뒤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사실상 ‘무혐의’ 조치인 심의절차 종료를 결정했다.
이 사건을 신고했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이모씨는 사건이 처리되는 동안 심의위원을 만나기는커녕 소회의도 참석하지 못했다.
당시 공정위 퇴직자와 사건 담당자의 접촉을 규제할 장치가 없었다. 표시광고법 등과 관련해 사업자에 대한 법적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공정위 회의가 사실상 법원의 1심 기능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퇴직자와 심의위원의 만남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공정위의 SK케미칼·애경 관련 ‘심의절차 종료’ 결정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간전문가로 이뤄진 태스크포스(TF)에서 “절차와 내용이 모두 잘못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김 위원장은 “법을 위반한 수준까진 아니다”라는 이유로 관계자 징계 조치는 하지 않았다. 가습기 살균제 재조사를 허술하게 했다는 내부고발을 한 유선주 전 공정거래위원회 심판관리관에 대해서는 ‘직원들을 상대로 갑질을 했다’는 이유로 직위 해제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는 이날 옥시에 흡입 독성원료를 추천한 SK케미칼 전 직원 최모씨를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옥시 가습기살균제로 SK케미칼 전 직원이 과실치사상 혐의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