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이재명 대통령님, 딸 죽고 29년을 기다렸습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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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간전
▲이장수씨 딸 의영의 신생아 때 사진 ⓒ 이장수 관련사진보기
"29년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저희 딸은 아직도 피해자가 아니라는 말을 듣습니다. 제발 대통령님, 단 한 번이라도 피해자 유가족의 손을 잡아주십시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십시오. 국민이 국가를 믿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서울 은평구 응암동의 아파트. 좁은 방 한켠엔 아기 사진이 든 액자가 놓여 있다. 핑크색 턱받이를 한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생후 30일 무렵의 딸 '의영이'. 아버지 이장수(61)씨는 사진 속 딸을 29년 동안 매일 떠올렸다. 그리고 매일 후회했고, 매일 죄책감 속에서 살아왔다. 이씨는 절절한 마음을 담아 9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기자에게 전달해왔다.
아이 살리려 틀었던 가습기... 그 안에 독극물이 있을 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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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가족은 평범한 맞벌이 부부였다. 첫째 아들이 잔병치레가 많았던 탓에 둘째를 낳고 나서도 집에서는 늘 가습기를 틀었다. 딸이 감기 기운을 보이자, 소아과에서는 "건조하지 않게 잘 관리하라"고 조언했다. 그때 TV 광고에서 '세균과 물때를 완벽히 제거한다'는 유공(현 SK케미칼)의 가습기메이트를 접하게 됐다. 아, 저거다 싶었다.
"사람이 어떻게 세제를 공기 중에 뿌리는 걸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저 아프지 말라고, 잘 낫게 하려고 넣었던 겁니다. 살균이라는 말이 우리에겐 안심 그 자체였죠."
이후 매일 가습기를 틀었고, 의영이의 얼굴 가까이에 두며 코 밑으로 직접 증기를 쐬게 했다. 하지만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하루 만에 딸은 숨을 거뒀다. 아버지의 품에서 차갑게 식어가던 딸의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그는 말한다.
▲딸 고 이의영씨의 사망진단서. 출생 50여 일 만에 의영씨는 폐렴, 심근염 등의 발병과 함께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변상철 관련사진보기
시간이 흘러, 2011년. TV 뉴스에서 처음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이 보도됐다. 그 순간 이씨는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살균제, 폐 손상, 영유아 사망… 1995년 가을, 누구도 설명할 수 없던 딸의 죽음에 드리운 그림자가 그렇게 나타났다.
"그날 이후 우리 부부는 죄인이었습니다. 살리려고 했던 우리 손이 결국 독을 뿌렸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죠."
이씨는 2024년 8월 28일 환경부의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위원회에 가습기살균제 구제급여를 신청했다. 사망진단서, 전문의의 환경적 인과 평가, 환경부의 평가서까지 모두 제출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피해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통보였다.
"이유는 너무 기가 막혔습니다. 병원에 오래 입원하지 않아 의무기록이 부족하다, 그래서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겁니다. 딸은 하루 만에 숨졌는데, 더 오래 살아 있었어야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1995년 딸의 사망진단서에는 선행사인에 '모세기관지염, 흡입성 폐렴'이 기재되어 있고, 중간 선행사인으로 '바이러스성 심근염'이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직접사인은 '심장마비'이다. 즉 사망의 1차 원인은 흡입성 폐렴으로, 가습기살균제 사용에 의한 폐렴으로 인해 바이러스성 심근염으로 진행하여 결국 심장마비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환경부는 2019년 5월 27일 이씨의 딸에 대한 가습기살균제 노출을 사실을 인정했었다. 그렇다면 가습기살균제 노출피해로 인한 폐렴→심근염→심장마비라는 사망인과관계는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음에도 이를 기각한 것이다.
현재까지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환경부에 7891명이 신고했고, 1843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여전히 수백 명의 유족이 피해자로 공식 인정받지 못한 채 고통받고 있다. 가장 먼저 희생된 아이조차, 지금도 피해자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 이씨는 이게 "정의롭지 않은 사회의 증거"라고 말한다.
▲사망한 딸 의영씨의 노출자인정서류. ⓒ 변상철 관련사진보기
환경부 협의체, 형식적 논의에 그쳐서는 안돼
최근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지원 협의체'를 구성해 유가족 및 시민단체와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씨는 그 협의체가 형식적 논의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협의체라고 하면 책임자들과 피해자들이 마주앉아 현실을 바꾸는 자리가 되어야죠. 피해자 없는 자리에서 예산과 절차만 얘기해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는 협의체가 실질적인 보상을 논의하고, 인정받지 못 한 피해자들을 위한 재심의 기회와 특별 구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시간이 지나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배제하는 현재의 기준은 반드시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금도 살아 숨쉬기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죽은 아이에게 '증명해보라'는 식의 접근은 인권 유린입니다."
이씨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떤 정부도 피해자들을 정면으로 마주 보지 않았습니다. 사진을 찍고 뉴스에 한 줄 나오고, 다시 묻히고 끝났습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그 고통에 눈을 맞춰주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는 이 대통령에게 특별법을 통한 전면 해결, 피해자 단체와의 공식 면담, 전향적 피해 인정 기준 마련을 요청했다. 무엇보다 이씨는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국가 재난이자 기업-정부의 복합적 과실로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습기 살균제는 보이지 않는 살인입니다. 이 참사가 공기처럼 퍼졌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대통령님, 이제는 그 책임을 정의롭게 바로잡아주십시오. 제 딸 의영이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습니다. 피해자들에게도 기다릴 여력이 없습니다."
29년이 지나도 우리는 여전히 딸을 보내지 못 했습니다
이씨는 매년 11월 23일, 딸의 기일에 작은 케이크를 산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 한 채 세상을 떠난 아이. 한 번도 웃으며 걷지 못했고, 친구도 사귀지 못 했고, 생일 파티 한 번 못 해본 아이. 그 아이에게 아버지는 조용히 말한다.
"네가 세상에 잠시라도 왔다는 증거는 아빠가 끝까지 지켜낼게. 네가 아프지 말라고 틀었던 그 기계가 어떤 비극을 만들었는지, 모두가 알게 만들게."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대통령에게 이렇게 쓴다.
"제발, 대통령님. 피해자를 만나주세요.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특별법으로 영구히 해결해주십시오. 아이의 생명은 그저 피해자의 숫자나 통계가 아닙니다. 저희 아이는 '살 수 있었던 생명'이었습니다."
아래는 편지글 전문이다.
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이장수라고 합니다.
저는 아이 둘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둘째 딸은 세상에 태어난 지 50여 일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고 나서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환경부에 피해신고를 했고, 피해자 구제급여 불가통보를 받았습니다. 피해자 인정을 위해 29년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저희 딸은 아직도 피해자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대통령님, 단 한 번이라도 피해자 유가족의 손을 잡아 주십시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십시오. 국민이 국가를 믿을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아이가 태어나서 감기 기운이 있어서 공기를 깨끗하게 하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가습기 살균제를 썼던 것입니다. 저도 사람인데 어떻게 세제를 공기 중에 뿌리는 걸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저 아프지 말라고, 잘 낫게 하려고 넣었던 것입니다. 살균이라는 말이 우리에게는 안심 그 자체였죠. 그런데 그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하루 만에 딸아이가 죽은 것입니다. 아직도 제 품에서 차갑게 식어가던 아이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아이가 죽은 그날 이후 우리 부부는 죄인이었습니다. 살리려고 했던 우리 손이 결국 독을 뿌렸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어요.
저희는 환경부에 피해자 구제급여를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환경부는 피해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통보를 보내줬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 기가 막혔습니다. 병원에 오래 입원하지 않아 의무 기록이 부족하다, 그래서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겁니다. 딸은 하루 만에 숨졌는데, 더 오래 살아 있었어야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사망진단서에 아이의 사망원인이 흡입성폐럼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도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그러면서 피해자들과 무슨 협의를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까. 협의체라고 하면 책임자들과 피해자들이 마주 앉아 현실을 바꾸는 자리가 되어야죠. 피해자 없는 자리에서 예산과 절차만 얘기해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도 살아 숨쉬기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죽은 아이에게 증명해보라는 식의 접근은 인권유린입니다.
어떤 정부도 피해자들을 정면으로 마주 보지 않았습니다. 사진 찍고 뉴스에 한 줄 나오고, 다 묻히고 끝났습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그 고통에 눈 맞춰주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요.
가습기 살균제는 보이지 않는 살인입니다. 이 참사가 공기처럼 퍼졌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대통령님, 이제는 그 책임을 정의롭게 바로 잡아주십시오. 제 딸 의영이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습니다. 피해자들에게도 기다릴 여력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제 딸에게 밤마다 다짐합니다.
"네가 세상에 잠시라도 왔다는 증거는 아빠가 끝까지 지켜낼게. 네가 아프지 말라고 틀었던 그 기계가 어떤 비극을 만들었는지, 모두가 알게 만들게."
제발 대통령님 피해자를 만나주세요.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특별법으로 영구히 해결해주세요. 아이의 생명은 그저 피해자의 숫자나 통계가 아니잖아요. 저희 아이는 살 수 있었던 생명입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2025년 6월 9일 피해자 이장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