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안아줄수없는 아빠의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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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 안아줄수없는 아빠의고통

최예용 0 6287
딸 아이 안아줄 수 없는 아빠의 고통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김성태 씨의 무너진 삶

베이비뉴스, 기사작성일 : 2012-12-09 22:5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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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뉴스 이기태 기자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김성태 씨의 네 살배기 딸 나예가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빠에게 인사를 하라는 할머니에 이끌려 문 앞에 와서는 머뭇거리고 있다. 아빠 김 씨는 딸에게 포옹을 하거나 놀아주거나 뽀뽀를 해줄 수가 없다. 한창 나예가 아빠와 애착관계를 형성해야할 시기임에도.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피해자 개인의 육체적 고통을 뛰어넘어 온 가족에게 불행을 안겨주고 있다.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지난 5일 오후 4시 40분, 김성태(41) 씨는 딸 나예(4)가 어린이집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시간이 다가오자 바삐 마스크를 쓰고 작은방에 들어가 문을 꼭 닫는다. 하루 종일 보지 못한 딸 아이, 여느 아빠처럼 한 걸음에 달려 나가 “오늘 하루 재밌게 놀았어”라며 안아주고 싶지만 김 씨는 그럴 수 없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현재 폐렴을 앓고 있는 김 씨는 혹시라도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지내며 감기라도 걸려 자신에게 감기를 옮길까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에 다녀와 가방을 벗어던진 나예는 굳게 닫힌 작은방 문 앞을 서성인다. 매일 어린이집에 돌아오면 숨어버리는 아빠가 어색한 지 “아빠에게 배꼽인사 해야지”라는 할머니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할머니가 문을 열고 아빠와의 인사를 재촉해도 몸을 배배꼬며 할머니 뒤에 숨은 채 아빠를 힐끔 쳐다볼 뿐이다. 나예가 기억하는 아빠는 매일 아파서 잠만 자는 ‘잠꾸러기’이다. 자신과 놀아주는 다정한 아빠의 기억은 없다. 사랑해주고 싶어도 사랑하지 못하는 아빠, 사랑받고 싶어도 사랑받지 못하는 딸. 가습기살균제라는 엄청난 재앙은 아빠와 아이의 관계를 이토록 멀어지게 만들었다.

부녀지간을 멀어지게 만든 ‘가습기살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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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뉴스 이기태 기자 = 한 가정의 가장인 41세의 김성태 씨는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인해 호흡곤란이 와 응급실을 찾은 이후 투병 생활을 하느라 아무런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김 씨는 죽음의 문턱에 서있던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철렁하다. 지난해 8월 7일, 호흡 곤란으로 병원을 찾은 김 씨는 암일 수 있다는 진단에 회사마저 그만두고 병원에 입원했다. 담배 한 번 피지 않던 그였기에 폐에 이상이 있단 사실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김 씨는 암이 아닌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원인 미상 폐질환’이라는 소견을 받았다. 재작년 가을부터 써왔던 가습기살균제가 이런 질환을 갖게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입원 4일 만에 김 씨는 상태가 심각해져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단 몇 시간 사이 김 씨의 폐는 굳은 채 죽어가고 있었다.

손을 쓸 틈도 없이 폐가 죽어가는 것,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 질환일 경우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이라고 한다. 당장 폐이식을 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긴박한 상황, 다행히 이식자가 있어 폐이식을 받을 수 있었다. 호흡곤란으로 병원을 찾은 지 보름 만에 벌어진 일이다.

김 씨는 “이미 폐는 죽어있었기에 폐이식을 한 뒤 살 가망성은 10~20%밖에 안됐다. 11시간을 수술했는데 거의 모험이었다, 살기위한 모험”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김 씨의 몸엔 긴박했던 당시의 흔적이 남아있다. 폐이식 수술을 한 흉터와 호흡을 위해 목에 구멍을 뚫은 흔적, 부종을 빼기 위해 몸통에 관을 꽂았던 12개의 구멍도 선명하게 자리 잡았다. 수술 후 계속 누워있었던 후유증으로 다리 신경 2개가 끊어져, 오른쪽 다리는 일반인에 비해 힘도 약하다. 폐이식 수술 이후 약 7개월간의 병원생활은 끔찍한 하루의 연속이었다.

김 씨와 그의 가족은 2009년 딸이 태어난 뒤 습도조절을 위해 가습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청결을 위해 가습기살균제 ‘애경가습기메이드’를 사용해왔다. 대기업 제품으로 사용해도 안전하단 문구만 믿고 선택했고, 가습기를 정면으로 쐰 김 씨만 폐질환에 걸렸다. 다행히 아내와 딸, 어머니는 이상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김 씨는 “독성이 있는지 알았으면 어떤 사람이 이 제품을 썼겠느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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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뉴스 이기태 기자 = 폐가 빠른 속도로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는 김성태 씨. "자, 계속 찍은거다. 검게 된 건 살아 있는 거고(아래 사진) 하얗게 된 건 폐가 죽은 거다(위 사진). 흰색은 다 죽은 거다. 폐가 완전 죽기 전에 찍은 거다. 기계를 갖다놓고 실시간으로 찍은 거다. 이게 단 몇 시간만에 같은 날, 똑같은 시간대에 촬영됐다. 좋았을 때와 나빠졌을 때, 하얗게 된 건 죽은거니까..." 가습기살균제는 김성태 씨의 폐를 사진 속 필름처럼 하얗게 만들어버렸다.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온 가족이 피해자가 됐다

그렇게 폐이식 수술을 한지 1년, 정기검진도 꾸준히 받으며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던 김 씨는 지난 달 다시 응급실로 실려 갔다. 감기라고 생각했는데 폐포자충 폐렴으로 호흡곤란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약 한 달을 입원하고 퇴원한 그는 몸도 마음도 더욱 약해졌다. 기력이 쇠약해 지팡이를 이용해 걷는 그는 거실에서 안방까지 잠깐만 걸어도 숨이 차서 헐떡거리고 기침을 한다. 옷을 갈아입어도, 세수를 해도, 말을 조금만 빠르게 해도, 가빠지는 숨에 힘겹기만 하다.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는 건강했던 시절보다 50kg 가량 체중이 빠졌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집안에서 생활해야 하는 현실은 너무나 힘들다.

“겨울 내내 아예 나갈 수 없다. 맑은 날, 먼지 없는 날, 깨끗한 날만 외출할 수 있다고 했다. 1년째 회사도 가지 못한 채 그냥 집에서 쉬는 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활동적이었던 내가 집에만 처박혀 있어야 된다는 게 너무 괴롭다.”

김 씨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 질환으로 우울증까지 생겼다.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할 수 있을까, 내가 아침에 눈을 못 뜨는 건 아닐까’하는 마음은 불안장애로 이어졌다. 혹시나 잘못될까 하는 생각에 밤잠도 설치기 일쑤다. 김 씨가 하루 매일 먹는 약은 폐렴과 다리통증, 우울증 약까지 25알정도. 마약류라 표시된 독한 약까지 먹으며 고통을 견뎌내는 중이다.

무엇보다 김 씨가 견딜 수 없는 건 예쁜 딸을 곁에 두고도 제대로 안아주지도, 놀아주지도 못하는 현실이다. 김 씨가 입원하는 동안 아내는 병원에서 아예 생활하며 출·퇴근했다. 늘 아빠가 아팠기에 부모와의 애착관계를 형성해야 할 시기에 딸은 부모의 품에 많이 안기지 못했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많이 못 받아서일까, 내년 5살을 바라보면서도 말이 느리고 기죽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픈 그다.

김 씨의 아픔은 다른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줬다. 김 씨의 할머니는 지난해 11월 김 씨의 아픈 소식을 듣고 쇼크로 돌아가셨다. 장남인 김 씨는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퇴행성관절염으로 고생하는 김 씨의 어머니는 지난 달 다리 수술을 앞두고 김 씨가 응급실에 실려 가는 바람에 수술을 미뤘다. 다리가 아파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생계를 책임지는 며느리를 대신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아들 곁을 지키고 있다. 면역력이 약한 김 씨가 혹여 감기라도 옮을까 가족모임도 안하기로 했다. 김 씨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온 가족이 피해자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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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뉴스 이기태 기자 =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는 단순히 한 개인의 건강을 해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온 가족을 파괴시키는 무서운 고통이다. 아들로서, 아빠로서, 남편으로서의 역할은 물론이고 경제활동은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김성태 씨. 김 씨를 비롯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정부차원의 피해자 보상과 의료비 지원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보상이 이뤄지더라도 김 씨는 평생동안 딸 나예에게 아빠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처지이다. 사진 김 씨의 부모님이 기자에게 아들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 깊은 상념에 잠겨 있는 김 씨의 모습이다.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가습기살균제 문제, 책임지고 해결할 대통령 뽑겠다”

앞으로 증상이 얼마나 호전될지, 또 언제 병원에 갈지 알 수 없다. 김 씨는 “우리 피해자들은 경제적 비용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될 판이다. 정부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질환으로 인정했으면 대책을 만들고 보상을 해줘야지, 복지부, 환경부 서로 부처 떠넘기기만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김 씨가 지금까지 쓴 병원비만 해도 8500만 원 가까이다. 넉넉지 않은 환경에 대출을 받아 병원비를 충당해왔다. 지금은 아내 혼자 돈을 벌며 대출금과 생활비 등을 감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호흡기장애 5급인 김 씨는 장애인 대출도 받으려고 애썼지만 직장이 없는 김 씨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김 씨는 “길거리에서 사람 한명이 죽어도 죄송하다 그러는데, 우리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100명 가까이 죽어도 누구하나 미안하단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최근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질환이 환경성질환으로 지정되지 못한 것과 관련, 김 씨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 씨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질환의 환경성질환 지정을 기대했었는데 실망스럽다. 우리 피해자들은 가장 큰 부분이 경제적 지원이다. 우리가 대형로펌을 쓰는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봤자 바위에 계란 던지는 격”이라며 “정부도 책임이 있으니, 정부 책임으로 먼저 피해자들에게 보상해 줘야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김 씨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위한 대통령을 뽑겠노라 다짐했다. “기업의 문제가 아닌 정부의 문제로 관심 가져주고 책임지는 대통령을 뽑고 싶다. 국민에 대한 행복을 추구한다고 말하면서 그런 역할과 조치를 취해주는 대통령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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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뉴스 이기태 기자 = 김성태 씨가 인터뷰를 하는 도중 말문이 막혀 입술을 깨물고 있다. 인터뷰를 거의 마칠 즈음 네 살배기 딸 나예가 돌아올 시간이 됐다. 딸 아이가 오게 되면 그는 마스크를 쓰고 자신의 방으로 향할 것이라고 했다. 같은 집 안에 살고 있지만 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아빠 김 씨의 현실이다.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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