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조사 제대로 시작도 못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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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피해조사 제대로 시작도 못한 이유는

최예용 0 6969

연합뉴스| 기사입력 2013-04-23 08:00 | 최종수정 2013-04-23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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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 3년이 지났지만.. (서울=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환경보건시민센터과 가습기살균제피해모임 주최로 25일 서울 광화문광장 해치마당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회는 오는 31일까지 열린다. 2013.3.25 uwg806@yna.co.kr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하채림 기자 = 가습기 살균제 피해 의심사례 접수 후 반년 가까이 제대로 조사가 시작되지 못한 이유는 뭘까. 피해 입증 책임을 누가 지느냐를 놓고 피해 신고자와 정부의 견해가 갈렸기 때문이다.

피해자와 민간조사위원들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여부를 밝히려면 컴퓨터단층촬영(CT) 등 각종 검사를 추가로 시행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정부는 법적 근거 등을 이유로 그런 책임을 떠안을 수 없다며 버텼다. 급기야 민간 위원 전원이 사퇴 의사를 표명하는 파행으로 이어졌다.

◇전문가·피해자 "정부가 피해 입증해야" = 피해 신고자들은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여부를 조사, 판단해달라고 요구해 왔다.

작년 11월까지 공식 접수된 가습기 살균제로 말미암은 폐 손상 의심 신고 사례는 365건. 이 가운데 환자의 폐 상태를 상세하게 보여주는 CT 진단 결과 등을 갖춘 경우는 약 20%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폐손상조사위원회에 민간위원으로 참여한 전문가들은 개별 사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인지 정확히 판단하려면 영상진단과 폐검사 등을 추가로 시행해야 한다고 보건복지부에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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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시간을 갖고 봐주세요'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들과 환경보건시민센터,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사거리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사진전을 하고 있다. 2013.1.30 jieunlee@yna.co.kr

 

폐손상조사위원회 민간위원장인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23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의료사고 소송에서처럼) 피해자들에게 직접 피해 입증을 하라는 요구는 지나치고 사회적 비용도 많이 든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에서 발생한 유독물질 불법 매립 사건인 '러브 커낼' 때와 마찬가지로 공익 차원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조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피해 신고자들은 또 가습기 살균제 원료에 대한 추가 독성연구도 원하고 있다.

지난 2011년 질병관리본부는 동물실험을 근거로 PHMG와 PGH를 원료로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를 폐 손상의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CMIT/MIT를 함유한 제품에 대해서는 독성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유해물질 관리 부처인 환경부는 지난해 기존 연구 등을 바탕으로 CMIT/MIT를 독성물질로 분류했다. 보건당국은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조사했고 환경부는 원료물질 자체의 독성을 따졌기 때문에 결과에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CMIT/MIT 물질 자체와 이를 함유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독성 연구를 다시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게 피해자와 시민단체의 입장이다.

◇정부 "권한 밖 일이지만…" =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는 이번 사건이 오염된 실내공기에 의한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환경보건 피해사례'라는 의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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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제조업체에 고발ㆍ 손배소 (서울=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31일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사건 1년, 형사고발과 집단손배소송 기자회견'을 마친 유가족들이 고발장을 제출하러 가고 있다. 2012.8.31 jihopark@yna.co.kr


그러나 지난 2006년 환경보건 업무를 복지부로부터 넘겨받은 환경부는 '복지부 소속 질병관리본부가 이미 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조사하고 있지 않으냐'며 아예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환경부는 실내공기 질을 관리하는 주무 부처라면서 막상 실내공기 오염 피해사고가 터지자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폐손상 조사위원회를 운영하는 질병관리본부는 "피해 입증에 필요한 조사에 나설 법적 근거가 없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법에 따른 우리 업무는 전염병 역학조사이고 오염물질 피해 조사는 권한 밖"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복지부는 구미 불산 누출 사건 때 같은 논리로 건강 피해 조사 등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사건의 파문이 더 커지고 소송에도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 정부가 몸을 사리는 것으로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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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 결의안 제안설명하는 심상정 (서울=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이 18일 오후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를 위한 결의안' 제안 설명을 하고 있다. 2013.4.18 toadboy@yna.co.kr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인구가 수백만에 이른다는데 이들 가운데 일부만 피해 조사를 요구해도 엄청난 예산과 인력이 소요되고 결론도 쉽게 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가 피해 신고자에 대한 추가 검사 등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자 민간 조사위원 전원은 지난 11일 질병관리본부에 사퇴 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최근 국회가 피해 구제를 촉구하는 결의를 채택하는 등 정부를 압박하고 나서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총리실은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조사위원회를 재가동하도록 결정했고, 진영 복지부장관도 이르면 24일 피해자들을 만나볼 계획이다.

백도명 교수는 "민간 조사위원들이 집단 사퇴의사를 표명한 후 아직 정부로부터 공식 답변을 받지는 않았다"면서도 "국회와 총리실이 나섰다고 하니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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