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자남편 “조사해 주세요” 대통령에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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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피해자남편 “조사해 주세요” 대통령에 편지

최예용 0 6726

2년 전 가습기 살균제를 쓰다 아내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40대 남성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원고지 25장 분량의 긴 글 속에는 비통한 심정을 담은 사부곡(思婦曲)이 절절했고, 제조사의 사과와 국민 보호를 위한 정부의 책임 통감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담겼다. (편지 전문 보기)

광주에 사는 정택무씨(42·
사진)는 20일 아내 박은연씨(사망 당시 38세)의 2주기를 맞이했다. 아내는 2011년 초 임신한 첫아이가 만삭이 되던 시기부터 호흡곤란을 겪기 시작했고, 출산 직후인 3월부터 심한 기침과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나 6월14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숨졌다. 박씨는 숨지기 전 3~4년 동안 ㅇ사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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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11년 11월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모임이 주관하여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잗회'에 참석하여 피해사례를 소개하는 정택무씨, 월간 함께사는길 이성수 기자 촬영>

 

정씨는 편지에서 “결혼 9주년 기념일에 아내의 발인을 해야만 했다”면서 “저는 아내를 지키지 못한 죄인, 내 아이의 엄마를 지키지 못한 죄인, 내 가정을 지키지 못한 죄인, 가습기 살균제 사용을 말리지 못하고 내 손으로 희석해서 가습기를 틀어준 죄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는 아내를 보낸 후에 라디오를 잘 듣질 못하고 TV도 잘 보질 않는다”면서 “운전 중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가 있다”고 적었다.

 

정씨는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 가사는 모두 제 이야기로만 들리고 TV의 슬픈 장면은 다 제 이야기 같고 병원이나 환자복을 입은 사람만 나와도 아내 생각에 보고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신과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자살충동·우울증 위험군 진단을 받았지만 아직 스스로 이겨내고 싶어 약물 복용을 미루고 있다는 정씨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받아들이지 못해 면회 때마다 제발 자신을 죽여달라던 아내의 절규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고 말했다.

정씨는 아내 죽음의 원인과 책임이 밝혀졌는데도 그 누구에게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한 울분을 토로했다. 그는 “가습기 살균제 허가를 내준 정부를 믿고, 아이에게도 100% 안심하고 쓸 수 있다는 광고를 믿고 아무 의심 없이 사서 쓴 죄밖에 없는데, 사람이 죽었는데, 분명히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있는데, 피해자들은 어느 누구한테도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2011년 11월 가습기 살균제 강제수거 이후 폐손상 환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기존 제품들에 문제가 있었다는 방증이고, 질병관리본부의 발표 내용도 수십명의 국내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나온 결과라 결과가 바뀔 수는 없다고 했는데 도대체 제조, 판매사들은 왜 이렇게 뻔뻔한가”라면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국가로부터도 철저히 외면당하고 상처받고 있다”고 전했다.

정씨는 “55시간의 산고 끝에 태어난 딸은 다행히 잘 크고 있다”면서 “당시에는 이유도 모르고 하늘나라로 간 아내에게 그 후에 이유는 알려줬지만 더 이상의 진행상황에 대해선 해줄 말이 없어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씨는 “박 대통령께서는 소통하는 사회를 만들고, 정부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고, 단 한 사람의 국민이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말씀하셨다”면서 “부디 이 문제를 가벼이 여기지 마시고 내 가족과 같다는 심정으로 철저히 조사하고 판단하시어 아픈 이들을 한번 더 살펴 주시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박씨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답답한 마음에 우편으로 청와대에 편지를 보냈다”면서 “어떤 식으로든 대통령이 꼭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2013년 6월21일자 기사


경향신문 2013년 6월21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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