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이 미세먼지 불러왔을까?
2019-02-16 주간경향
ㆍ원전 감소는 2023년 이후… ‘원전 끄느라 화전이 미세먼지 내뿜었다’는 의문은 오해
1월 둘째 주 닷새간 한국을 뒤덮었던 최악의 미세먼지는 걷혔지만, 그 자리에는 ‘에너지 논쟁’이 남았다. 중국에서 날아온 미세먼지로 한국이 고통받는다는 주장도 거셌지만 “탈원전 정책 때문에 원자력발전소를 끄느라 석탄화력발전소가 미세먼지를 내뿜어 대기 질이 나빠졌다”는 의문도 꼬리를 물었다. 탈원전은 정말 미세먼지를 불러왔을까. 그렇다면 앞으로 원전 대신 석탄화력발전소가 가동되면 대기 질은 계속 나빠질까.
원자력발전소는 아직 늘어나는 중
탈원전 정책은 돌아가고 있는 원전을 끄고 발전량을 당장 줄여나가는 게 아니다. ‘수명이 끝난 원전은 수명 연장을 하지 않고, 새 원전은 짓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원자력과 석탄 발전량을 향후 60년간 서서히 줄여나간다는 것이 탈원전 정책의 원칙이다. 전력공급원을 바꾸는 것은 중·장기적인 정책이다. 발전소를 지어서 전력을 생산하는 데만 수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정부는 2년마다 향후 15년간의 전력수요를 예측하고 여기에 맞게 전력설비를 확충하기 위해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세워 관리한다. 2017년 12월 공개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17년 22.5GW 수준인 원자력발전량은 2022년 27.5GW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탈원전’을 천명한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오히려 원전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는 과거 전력수급계획이 원전·석탄 위주로 짜여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2022년까지는 새로 가동되기 시작하는 원전만 있고, 폐쇄되는 원전은 없다. 이전 정부에서 짓기 시작한 신한울 1·2호기, 신고리 4·5호기가 이 기간 동안 시장에 진입한다. 이 원전 4기의 설비용량은 5.6GW에 달한다. 이미 신고리 4호기는 지난 2월 1일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운영허가를 받아 오는 9월 상업운전을 앞두고 있다. 11월에는 신한울 1호기의 공사도 끝난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가동을 중단한 원전은 2017년 영구폐쇄된 고리 1호기와 지난해 폐쇄 결정이 난 월성 1호기뿐이다. 고리 1호기는 정해진 설계수명을 다했고, 월성 1호기는 설계수명이 10년 연장돼 2022년까지 운영될 예정이었지만 2016년 경주 지진 이후 안전조치를 강화하다 보니 가동률이 현저히 떨어지자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한 한국수력원자력이 조기 폐쇄를 결정했다.
원전이 본격적으로 줄어드는 시점은 2023년 이후다. 마지막 신규 원전이 될 가능성이 높은 신고리 6호기가 2023년 3월 준공된 뒤에는 새로 짓는 원전은 없고 멈추는 원전만 남는다. 2030년까지 노후 원전 10기가 수명을 끝내고 발전을 중단할 계획이다. 먼저 2023년부터 2025년까지는 1980년대에 지어진 고리 2·3·4호기와 한빛 1호기의 퇴역이 예정돼 있다. 2026년에는 한빛 2호기와 월성 2호기가 가동을 중단한다. 정부는 2030년 원전 설비용량이 20.4GW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2016년 이후 ‘원전 발전 비중’이 꾸준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원전에서 생산되는 전기가 전체 발전량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은 2017년 1분기 27.2%였다가 2018년 1분기 18.9%까지 줄어든 뒤 4분기에 26.1%로 회복됐다. ‘설비용량’이 아니라 ‘발전비중’이 줄어든 것이다. 이는 원전 정비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2017년 말부터 2018년 초 사이에는 원전 23기 중 10기가 정지돼 정비에 들어간 시기도 있었고, 정비 중 새로운 문제가 발견되면서 통상 2개월 정도 걸리던 주기적 계획예방정비가 1년 넘게 길어진 원전도 있었다. 원전 정비기간이 늘어나며 평소 80~90%대였던 원전 이용률은 지난해 65.9%까지 하락했다. 하지만 올해는 예방정비일수가 지난해 대비 절반으로 줄어들면서 이용률이 80%대를 회복할 것으로 전망된다.
콩값이 두붓값보다 비싸도 될까
원전의 빈 자리를 메우는 것은 석탄화력발전소가 아니라 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전력원이다. 정부는 2017년 26.8%였던 원전 발전량 비중을 2030년까지 23.9%로 줄이고, 석탄화력 비중도 같은 기간 동안 43.1%에서 36.1%로 줄인다. 대신 6.2% 수준인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0%까지 늘린다. 미세먼지 배출의 주범인 30년 이상의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10기는 2022년까지 폐지하기로 했고 지금까지 모두 4기가 문을 닫았다. 신규 석탄화력과 운전 중인 석탄발전소 6기는 오염물질 배출이 덜한 액화천연가스(LNG)로 전환한다.
노후 발전소는 문을 닫지만 석탄화력발전 설비용량도 원전처럼 당분간은 늘어난다. 과거에 허가받은 신규 석탄화력 7기(7.3GW)가 2022년까지 들어서면 전체 설비용량은 2017년 36.9GW에서 2030년 39.9GW가 된다. 하지만 노후 발전소가 새 발전소로 대체되기 때문에 미세먼지 배출량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석탄화력발전소의 특성상 미세먼지를 내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최신 환경설비를 갖춰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일례로 전체 6호기가 가동되고 있는 인천 영흥화력발전소의 경우, 2004년 준공돼 15년째 운영 중인 1·2호기의 지난해 초미세먼지 배출량이 1188톤으로 영흥화력발전소 전체 배출량 2421톤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석탄발전량은 꾸준히 늘어났지만, 설비가 개선되면서 발전 5사가 배출한 초미세먼지량은 2015년 3만3800톤에서 2018년 2만1900톤으로 35.2% 줄었다.
원전과 석탄화력을 갈수록 줄이면서 생긴 새로운 문제는 전기요금이다. 석탄화력발전과 원전에 의존해온 것은 가장 싼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2017년 기준 원전 발전단가는 1kwh당 61원, 석탄은 79원으로 LNG(112원), 태양광(84~112원)보다 훨씬 저렴했다. 한국은 전기를 생산할 때 생산단가가 가장 낮은 발전기부터 먼저 가동하고, 그래도 전력이 부족하면 더 비싼 LNG 발전기 등을 돌린다. 경제성을 중요시하는 방식이라 지금까지는 석탄화력과 원전 발전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앞으로 생산단가뿐 아니라 환경비용까지 반영된 ‘환경급전’ 제도를 도입해 전력 생산 순위를 조정할 계획이다. 환경급전은 온실가스 배출권과 약품 처리, 석탄폐기물 등 환경비용을 추가해 가격과 발전 순위를 계산하는 제도다. 이렇게 되면 석탄과 친환경 발전의 가격차가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환경친화적인 전기를 쓸 수 있게 되지만,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해진다. 이미 전력 가격이 연료비보다 비싸졌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구입해 소비자들에게 파는 한국전력공사는 지난해 적자로 전환했을 것으로 보이며, 올해도 2조4000억원 영업적자를 볼 것이라고 내부적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지난해 LNG 등 연료비보다 전기요금이 싼 현실에 대해 “콩을 가공해 두부를 생산하는데 이제는 두붓값이 콩값보다 싸다”고 우회적으로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사고에 대한 공포와 10만년간 방사능을 내뿜는 핵폐기물 처리의 부담,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감수하고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값싼 전기를 계속 쓸 것인지, 아니면 전기요금을 더 낼 것인지 우리 사회가 선택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