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사례 14, 백인서] 눈만 남기고 떠난 불쌍한 내 딸 > 가습기살균제 참사 추모기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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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용 | 조회 수 :1,141 | 댓글 :0 | 15-08-24 19:20

[피해사례 14, 백인서] 눈만 남기고 떠난 불쌍한 내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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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목.jpg

 

"눈만 남기고 떠난 불쌍한 내 딸! 새누리당은…"

                  

[가습기 살균제가 짓밟은 행복] 세 살 딸 잃은 부부

"엄마, 아죠아죠." 2006년 3월의 어느 날, "안아줘" 하는 딸아이의 울음소리가 윤소라 씨의 가슴을 쳤다. 의사들이 아이를 둘러싸고 기도 삽관을 하고 있어서 안아줄 수 없었다. 기도 삽관에 질겁해 엄마를 찾던 세 살 인서(2004년 생)는 그날 이후로 말 한마디 못하고 그 해 4월 20일 세상을 떠났다. 당시 둘째를 임신하고 있던 윤 씨는 이미 임신 9개월에 접어든 상태였다. 

11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의 한 카페에서 인서의 부모를 만났다. 마음 같아서는 그저 잊고만 싶을 아픈 기억을 굳이 끄집어낸 이유는 무엇일까. 아버지 백승목 씨는 "책임져야 할 사람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모두 피해자가 지쳐서 나가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백 씨가 이야기하는 '모두'에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업체뿐만 아니라 정부, 또 우리도 포함된다. 

▲ 온 가족의 귀염둥이였던 인서. ⓒ프레시안

감기인 줄 알았는데 피 토하며 기침 

윤소라 씨는 아직도 2006년 3월 16일을 잊지 못한다. 친한 언니 아이의 돌잔치에 갔던 그날, 갑자기 건강하던 인서가 입술이 파래질 정도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 설사 단순한 감기 증상이라도 부모로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죠? 

윤소라 : 네. 그날 바로 아이가 태어난 병원 소아과로 가려고 했는데 주위에서 '너무 예민하다' 이런 식으로 말하더군요. 또 기침하다 나아지기에 그 날은 그냥 병원에 안 갔어요. 그런데 다음날이 되었는데 아무리 봐도 애가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 병원에 데려갔더니 의사는 괜찮다고 하고….

엄마의 예감은 맞았다. 여느 감기가 아니었다. 

윤소라 : 그 주 토요일에 우리 부부는 방에 있고 인서 혼자 거실에 있었는데 갑자기 아이가 피를 토하면서 기침을 했습니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아이 목에 손을 짚더니 호흡 곤란 증세라며 큰 병원에 가라고 하더군요. 전날은 괜찮다고 하더니만. 정말 놀라서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으로 옮겼어요.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폐렴이라고 생각해서 큰 걱정은 하지 않았어요. 

백승목 :
저는 이대목동병원에서 순간적으로 '이게 단순한 게 아니구나' 하고 느꼈어요. 응급실에서 어린 의사가 아이를 보고 어찌할 바를 모르더군요.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다기에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으로 갔지요. 그 뒤 이야기는 아주 단순합니다. 다들 하는 이야기가, 폐렴인데 원인은 모르겠으나 예후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죠. 

24시간 병실 지켰지만 끝내 사망 

- 피해자 대부분이 급속도로 증세가 악화해서 사망합니다. 인서는 어땠나요.

백승목 :
인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폐는 굳어 가는데 원인을 모르니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지요. 너무 답답해서 전국의 유명한 소아과나 흉부외과 의사의 메일 주소를 찾아서 인서의 증세를 적어 보내기도 했어요. 하나같이 "학계에 보고된 바가 없다, 원인을 모르겠다" 이런 답만 돌아왔습니다.

윤소라 : 별생각이 다 들었어요. 인서가 병원에 가기 며칠 전에 동물원을 갔는데 거기에서 손바닥에 새를 올려놓고 무척 좋아했어요. 혹시 그 새가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린 새였나 생각했죠.

전쟁 같은 날들이었다. 백승목 씨는 "24시간 내내 병원에 있으면서 유난을 떨었다"고 회상했다. 인서의 이모부까지 직장을 그만두고 병실을 지켰다. 의사들은 "이모부까지 저러는 건 처음 본다"며 놀랐다. 집안의 첫 아이였던 인서는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은 아이였다. 

출산을 앞둔 윤 씨는 의사와 남편의 만류에도 좀처럼 병원을 떠나지 못했다. 백 씨는 아내에게 차마 말하진 못했지만, 언젠가부터 인서가 세상을 떠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는 조용히 아내에게 인서의 장기를 기증하자고 말했다. 각막 기증 동의서에 서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서는 세상을 떠났다.

백승목 :
기증받은 사람을 찾지 않겠다고 서명까지 했는데…. 인서가 세상을 떠나고 나니 그 눈을 받은 사람을 한 번만 보고 싶단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인서가 떠난 후, 둘째 아이 안지도 못해" 

세 살 딸아이의 장례 과정을 백 씨는 굳세게 견뎌냈다. 마치 "중요한 행사를 치르듯" 장례 절차에서 모든 책임을 다했다. 그러나 그 과정이 끝난 후 견딜 수 없이 힘든 시간이 시작됐다. 은행에서 여러 사람을 관리하는 위치에 있었던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대하는 일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윤소라 :
그 와중에 저는 둘째 아이를 낳았잖아요. 인서를 보낸 충격으로 젖이 한 방울도 안 나와서 둘째 아이는 모유 수유를 하지 못했어요. 인서가 마지막으로 안아달라고 했던 것이 생각나서 둘째 아이를 안을 수도 없더군요. 둘째 아이를 안으면 인서의 그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해서…. 그래서 아직도 둘째 아이에게 많이 미안해요. 

그뿐이 아니었다. 뱃속에 있을 때 엄마가 너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탓인지 둘째 아이의 심장에 조그만 구멍이 생겼다. 백 씨는 이런 아내와 둘째 아이를 보며 힘든 기색도 하지 못하다가 결국 번듯한 직장을 그만뒀다. 남부러울 것 없이 유복하고 화목했던 가정이 산산조각 나는 것 같았다.

다행히 이제는 둘째 아이의 심장도 건강하고 백 씨도 새로운 직장을 찾았다. 하지만 인서가 세상을 떠나기 전과 후가 같을 수는 없다. 

- 2011년에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 미상 폐 질환'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발표됐을 때, 바로 인서를 생각했나요?

백승목 : 애 엄마나 저나 망치로 머리를 꽝 맞은 것 같았습니다. 뉴스를 보자마자 알았지만 처음에는 서로 이것에 대해 말도 못 꺼냈습니다. 

윤소라 : 전 차라리 아니었으면 했어요. 죄책감이죠. 애가 돌 때부터 가습기 살균제를 썼는데….다른 일에는 게으르면서 왜 가습기 살균제를 넣는 데는 그렇게 부지런했는지…. '다른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면 나에게 뭐라고 할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들 부부는 '홈플러스 가습기 살균제'와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을 사용했다. 가습기의 물통에 가습기 살균제 몇 방울만 섞으면 가습기의 세균이 제거된다고 했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듯이, 이들도 아이를 위해 가습기를 더 깨끗하게 사용하고 싶었다. 

사망 진단서에 사망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 명시 

너무 고통스러운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편이 견디기 쉽다. 1997년에 최초 출시된 이후 2011년까지 가습기 살균제의 연간 판매량이 약 60만 개에 달한 만큼, 아직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는 많을 터다. 그럼에도 나서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피해자가 비교적 적은 이유다. 

이들 역시 처음부터 언론과의 인터뷰에 나서고 기자 회견에 참가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묻으려고 했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 측의 무관심에 지쳐가는 다른 피해자를 보면서, 올해 환경보건시민센터에 피해 사례를 제출했다. 

이를 위해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서 받은 사망 진단서에는 '사망의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 소독제에 의한 폐 섬유화'가 명시돼 있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이 2011년 질병관리본부의 발표 이후 인서의 사망 원인을 가습기 살균제로 공식 지목한 셈이다. 

"이제는 새누리당 의원을 만나고 싶다" 

- 백승목 씨는 올해부터 기자 회견과 피해자 간담회 등에 참가하셨는데, 매번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표출하시더군요. 

백승목 : '내가 무슨 잔 다르크라고 이러나' 하는 생각도 들곤 합니다. 그렇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누가 보더라도 나라가 책임져야 하는 사안입니다. 우리 아이가 여행 가지 말라는 위험 지역에 갔다 죽은 게 아니지 않습니까. 동네 집값을 올려달라고 떼를 쓰는 것도 아닙니다. 정부가 안전하다고 판매 허가를 내준 생활용품을 쓰다 12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나요.

이 사건을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넘어가면,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끼쳐서 수많은 피해자가 나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겁니까. 이상한 비유라는 것은 알지만 가습기 살균제도 스마트폰만큼이나 일상적인 물품이었고 당연히 무해하다고 인식된 생활용품이었습니다. 

이들과 인터뷰하기 바로 전날인 6월 10일, 기획재정부와 새누리당 지도부의 반대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안을 6월 임시 국회에서 처리하려던 계획이 무산될 지경에 놓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관련 기사 : "가습기 연쇄 살인, 피해 보상에 새누리당 어깃장") 이에 대해 백 씨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국가 기관인 보건복지부가 가습기 살균제가 유해하다고 결론을 내리지 않았습니까. 이럴 거면 차라리 무해하다고 하지 그랬나요.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서, 슬픔은 슬픔으로 받아들이고 사실은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제는 그저 정치인의 생색내기 혹은 싸움거리 소재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 법안 처리에 반대하는 새누리당 의원을 만나고 싶습니다. 이제는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자리가 꼭 마련되길 바랍니다."

프레시안 2013년 6월 19일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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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살배기 딸 잃은 제가 재수없는 건가요?

 

[환경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다] 살균제 피해가족 국감 방청기
 
오마이뉴스 2014.10.28
 
 
피해자 아빠 백승목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지나고 있다.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다룬 지도 3년째다. 올해 국정감사가 끝나가는 무렵인 지난 23일 환경부 국감에서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다뤄졌다.

피해자들의 실상을 알리고자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폐 손상을 입은 김성태(2011년 폐이식)씨가 참고인으로 나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김씨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피해자 진술이 어려워졌다(관련기사 :
가습기살균제 때문에...온몸이 이렇게 망가졌어요).

국정감사 마지막 날인 27일,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 모임 백승목씨가 환경부 국정감사를 방청한 소감을 환경보건시민센터로 보내왔다. 백승목씨는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지난 2006년 당시 세 살짜리 딸을 잃었다. 지난 3월 질병관리본부 폐손상조사위원회로부터 2등급 '가능성 높음' 판정을 받았다.

가습기살균제 세 번째 국감... 발걸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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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8월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추모제에서 백승목씨가 국화꽃을 헌화한 후 분향하고 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아침 6시 30분] 좀 더 자도 되는데 선듯한 새벽 내음에 몸을 일으킨다. 커피 한 잔에 담배 하나 물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오늘(23일) 24절기 중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霜降)'이란다. 큰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내 맘 속에 내렸던 서리가 새삼 느껴지는 아침 날씨다.

오늘은 정기 국정감사 환경노동위원회 방청객으로 참석하기로 한 날이다. 이미 한 번의 방청 경험이 있음에도 새삼 긴장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건이 발생하고 이슈화 된 지 수 해가 흘렀음에도 답답하게 진행되어 온 이 일은 올해도 국감에서 다뤄진다. 막연한 기대감과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국회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오전 9시 50분] 대한민국에서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고, 국민을 대리해서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국정감사. 복도에 꽉 들어찬 피감 기관의 실무자들. 회의장 안의 수많은 카메라와 기자들 그리고 자신들의 수장인 장관이 혹 어려운 질문에 당황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방청석 뒤에 각종 자료를 들고 늘어선 국장들. 그 틈 속으로 살짝 끼어든다. 피해자 방청객이란 조그만 비표를 가슴에 달고. 피해자 활동을 시작한 지 2년째, 그간 알음알음 알았던 기자들과 의원들 그리고 보좌관들이 눈인사를 전해온다. 애써 웃으며 인사하지만 난 오늘도 이 공간이 그리 쾌적하진 않다.

[오전 10시] 위원장의 개시 방망이 소리에 환노위 피감기관인 환경부와 기상청 그리고 산하 기관들의 종합 감사가 이루어진다. 주제와 상관없이 고성이 오가며 퇴장·입장을 반복하던 예전의 국감 모습은 분명 아니다. 나름 노련하신 위원장님의 회의 진행에 여야 의원이 번갈아 질의를 하며 심문을 한다. 물론, 여당 간사의 4대강 사업 편들기와 뻔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마치 토크쇼에 나온 게스트에게 질문하듯 하는 몇몇 의원들의 수사는 여전히 염치없기도 하다.

[12시 정오] 국정감사의 점심시간은 각자 나름의 이유로 분주하다. 장관을 비롯한 실무진들은 오전에 나왔던 질문 중 시간 관계상 오후 질의로 넘어간 주제에 대해 대비하기에 바쁘다. 의원 보좌관들 역시 급히 작성한 듯 보이는 A4 용지를 들고 뛰어다니기에 바쁘다.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피해자 방청객인 나는 같이 온 피해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주완 선생님. 홀로 몇 달째 일인시위를 하고 있는 어르신이다. 택시운수업을 하면서도 이날을 위해 두 시간을 자고 나오셨단다. 퀭한 얼굴로 행여나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나올까 귀를 쫑긋하며 졸지도 않으신다.

박용기 선생님. 대구에서 혹시라도 늦을까봐 어젯밤 기차를 타고 올라오셨단다. 딸네 집에서 자고 일찍 나와 이 사람 저 사람을 붙잡고 가습기살균제 문제에 대해 역설하기 시작하신다. 피부질환으로 고생을 하시면서도,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등급 산정에서부터 의료비 지원, 소송 등에 이르기까지 각종 부당한 것이 많다고 목소리를 높이신다.

그 와중에 난 환경부 실무자를 잠깐 만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규 재심 신청일(피해 조사신청서를 접수받고 있는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규 재심 신청일을 10월 10일까지 정했다)을 왜 이리 빨리 끝내느냐고 항의도 해본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는 잠복기가 길고, 언제 발병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 작년에 편성된 예산 중 대부분이 불용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따지듯 묻기도 한다. 원론적인 무책임한 답변들을 뒤로 하고 다시 열린 오후 국감장 방청을 시작한다.

원론적인 답변에 답답해진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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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8월 28일 낮 12시경 서울역 광장. 가습기살균제 피해 가족들이 모였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오후 2시]
증인과 참고인 심문이 진행되며, 의원들의 추가 질의가 이어졌다. 드디어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환노위 위원장이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규 신청기간을 연장하고, 불용될 처지에 있는 예산을 피해자들을 위해 쓰일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이에 환경부장관은 "관련 전문가와 상의하여 생각해보겠다"는 원론적인 대답만 내놓을 뿐이다. 마음이 또 답답해진다.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무엇이던가! 현재 500여 명이 넘는 피해자와 144명의 사망(그중 절반이 유아사망)이 발생한 대한민국 초유의 환경재난 사고가 아니던가. 2000년대 중반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폐질환으로 수백명이 죽어가고 아파하다가 2011년 8월 정부 발표로 가습기살균제 유해성이 확인된 지 벌써 3년.

그러나 살인제품을 제조한 회사도,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판매한 대형마트도, 또 그것을 관리감독하는 정부도 이 문제를 빠르게 분석하고 피해를 보상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하지 못했다. 제조사는 아직도 정부의 유해발표를 믿지 못하며 대형로펌 등 뒤에 숨어 소송을 계속하고 있다.

애초에 관리감독을 하지 못한 정부는(당시에는 몰랐다고 백 번 양보해 생각한다고 해도)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을 발표하고 모든 제품을 전량 회수할 뿐 그후 담당부서만 '보건복지부→환경부'로 바꾸면서 폭탄 피하기에만 급급했다. 그러다 국회에서 관련 법령(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 특별법)을 제정하려고 하자 이제 와서 아주 제한적으로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기업에 구상권을 전제로 한 쥐꼬리만한 지원을.

그 사이에 아이를 잃고 아내를 잃고 가족을 잃거나 폐이식 등으로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피해자들은 제조사로부터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했다. 정부로부터도 공식적인 사과를 받지 못한 채, 경제적·정신적 어려움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오후 6시] 여러가지 이슈들로 국감장은 여전히 분주하다. 예년에 비해 큰소리는 많이 나지 않았지만, 따질 것은 많아 보인다. 4대강 습지 문제나, 저탄소 차량 지원 문제 등도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지만, 내 눈엔 어린이 용품 유해물질 문제나 생활화학용품 관리체계 문제가 더 들어온다. 작지만 생활 속에서 충분히 조심하고 준비했다면 사랑하는 내 딸도 하늘나라에 가 있진 않을 건데,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본다.

[오후 9시 반] 벌써 밤이 깊어가고 있다. 간단한 저녁식사 후에도 의원들의 추가질의와 답변들이 계속 오간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등급 산정이 올바르냐?"고 질의한다. 피곤한 몸이지만 절로 박수가 나왔다. 현재 피해자들이 지난 3월 1차로 판정받은 4단계는 '①가능성 확실 ②가능성 높음 ③가능성 희박④가능성 없음'이다.

이 판정의 임상학적 기준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라도 한 가정을, 한 생명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거나 고통을 받는 피해자에게 등급을 매겼으니, 그런 줄 알아라라는 식의 행정태도는 참을 수 없다. 그들의 입장에서 우리는 그저 대기업에서 제조하고, 나라에서 허가한 제품을 사서 쓰다가 병에 걸리고 죽음에 이른 '재수없는 국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재수없음을 몇 개의 등급으로 나눠 일괄적으로 재단하는 이 모양새가 너무도 비상식적으로 느껴지는 밤이다.

[오후 10시] 국회에서 걸어나오며 하늘을 바라본다. '아빠, 오늘도 수고했어요'라고 말하는 큰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좁은 회의장에서 웅크리며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고 들으려고 힘들었던 나에게 위안이 된다. 오늘 하루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했던 그대들. 다른 건 다 몰라도 그 최선이 가습기살균제문제를 가장 상식적인 선에서 해결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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